밤만 되면 달라지는 남편... 불안에 시달리는 아내
[김준모 기자]
▲ <잠>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컨저링>의 유행 이후 공포영화계에는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무서운 영화'라는 문구를 내세운 양산형 작품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무서운 장면이 없는 만큼 공포의 장르적 매력을 살리지 못하며 아쉬움을 자아냈다. <잠>은 이런 양산형 영화들 사이에서 오컬트와 심리공포 사이의 줄다리기를 통해 독창적인 매력을 자아낸다. 총 3장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각 파트에 맞춰 새로운 색깔을 기존의 색에 덧칠하며 높은 밀도를 보여준다.
1장은 세상 가장 행복해 보였던 부부의 위기를 그린다. 수진-현수 부부는 수많은 이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수진은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며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남편 현수 역시 작은 역할이지만 연극계에서 드라마로 진출하며 성장 중이다. 이해심 많고 따뜻한 남편과 귀엽고 배려심 많은 아내는 낮이면 태양처럼 찬란한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 <잠>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미래를 그려나가는 낮은 희극으로, 가까운 현실과 마주하는 밤은 비극의 모양을 취한다. 특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층간소음을 통해 사운드 호러의 요소를 추가하며 심리적인 압박감을 더한다. 이에 따라 바뀌는 배우들의 얼굴은 그 디테일한 표현력과 이선균과 정유미의 캐릭터 소화력이 더해져 높은 시너지를 낸다.
심리공포가 주를 이룬 1장 이후 2장에 새로 추가된 무기는 오컬트다. 부부니까 함께 모든 일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던 수진은 출산 이후 현수가 아기를 해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이 감정을 고조시키는 건 의사와 수진의 엄마다. 의사는 어쩌면 병을 영원히 안고 살아갈지 모른다며 깰 수 없는 악몽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속신앙에 빠진 수진 엄마는 집에 무당을 데려오면서 문제를 더 키운다.
▲ <잠>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3장은 낮과 밤, 믿음과 불신, 의학과 종교, 애정과 증오라는 상반된 요소들의 갈등이 막을 내리는 대단원에 주력한다. 1장이 심리, 2장이 오컬트에 주력했다면 3장은 시각적인 공포를 극대화 시키며 스릴러 장르가 지닌 서스펜스를 앞세운다. 이런 장르 매력의 극대화는 대중성 확보와도 연결된다. 소재만 보았을 때 <잠>은 불쾌하고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호러의 인상이 강하게 느껴졌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면 불면증에 시달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깔끔한 마무리로 개운한 뒷맛을 선사한다. 그간 공포 장르가 마니아층에 한정되는 매력을 보여줬다면 <잠>은 이보다는 더 넓은 대중성을 통해 흥행력 역시 갖춘 모양새다. 귀신, 피칠갑, 스스로 악령을 불러오는 답답한 캐릭터라는 클리셰 3요소 없이 공포의 장르적인 힘을 보여준다는 점이 특히 고무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귀신과 살인마 없이 공포영화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공식에서 벗어나 오직 부부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으로 어두운 에너지를 뿜어낸다. 여기에 노 스포일러 캠페인을 벌일 만큼 영화 전체의 골격과 관련된 결말은 올해 가장 열띤 토론을 가져오지 않을까 싶다. 공포영화만 보면 잔상이 남아서 밤에 잠을 청할 수 없는 분들에게 <잠>은 제목처럼 꿀잠을 가져오는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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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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