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 맞다 호흡곤란 환자 응급조치 후 전원조치… 대법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 아냐"

최석진 2023. 8. 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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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액 투여 중 호흡곤란 증세가 온 환자에게 의사가 응급조치를 한 뒤 전원 조치를 했다면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씨의 유족들이 의사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판단에는 의료사고의 과실과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B씨가 운영하는 내과의원에서 2003년부터 수시로 진료를 받아온 A씨(사망 당시 66세·여)는 2018년 2월21일 감기몸살 증상이 있어 남편 C씨와 함께 B씨의 병원을 찾았다.

오전 11시10분경부터 아미노산 영양제 주사를 맞으며 항생제와 기관지염 및 천식 치료제를 함께 주사로 투여받은 A씨는 오전 11시40분경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켜 수액 투여가 중단됐다. B씨는 청진기 등을 이용해 A에게 일어난 호흡곤란의 원인을 천식으로 파악하고, 치료약을 주사로 투여했다. 이후에도 A씨가 계속 가슴이 답답함을 호소하자 B씨는 A씨와 남편 C씨에게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전원을 권고했다.

B씨로부터 전원을 권고 받은 후 환자대기실에 앉아 있던 A씨는 옆으로 쓰러지듯 눕고 10초 후 다시 일어나 앉았다가 옆에 있던 남편의 부축을 받고 병원에서 걸어나왔다. A씨는 병원에서 나온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병원 건물 앞에서 주저앉아 쓰러졌고, 주변에 있던 사람의 신고로 119 구급차로 다른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심정지가 발생했다. 이후 의식불명 상태에서 치료를 받던 A씨는 2019년 12월20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A씨의 남편 C씨와 두 자녀는 의사 B씨를 상대로 각각 1억2140여만원과 3300여만원씩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유족들은 B씨가 의료인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과실로 A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고령인 데다가 신장병, 폐질환, 중증 심장병 등 병력이 있어 생리기능이 저하돼 있는 A씨에게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수액을 주사해 쇼크와 심정지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또 B씨의 미흡한 사후조치가 사망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B씨의 의료상 과실로 인해 A씨가 사망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수액 투여 중 호흡곤란을 일으킨 A씨에게 치료 주사액만 투여한 뒤 걸어나가 택시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가도록 한 B씨의 조치에 대해 "의료진이 환자의 치료에 전력을 다하지 아니한 것이고, 그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봐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했을 때 B씨가 A씨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혈압, 맥박, 호흡수 등을 측정하지 않은 점 ▲B씨나 B씨 병원의 의료진들이 환자대기실에서 앉아 있다가 쓰러지듯이 눕기도 했던 A씨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지 않은 점 ▲즉시 탑승할 수 있는 택시를 불러 A씨가 탑승할 수 있게 하거나 구급차를 호출하는 등 이송 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결국 재판부는 "이와 같은 피고의 조치로 인해 망인이나 그 가족들인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피고는 위자료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남편에게 1140여만원, 두 자녀에게 각각 528만원씩 약 2200만원의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임상의학 분야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부합하는 진료를 한 경우 불성실한 진료를 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는 의료진에게 현저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로 인한 위자료는, 환자에게 발생한 신체상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실한 진료 그 자체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불성실한 진료로 인해 이미 발생한 정신적 고통이 중대해 진료 후 신체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마땅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망인이 피고 의원에 내원했다가 주사를 투여 받은 후 전원 권고를 받고 피고 의원을 부축 받아 걸어 나왔다면, 원심이 들고 있는 것처럼 망인의 혈압 등을 측정하지 않았다거나, 이송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행위만으로 피고가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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