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수집이 빚어낸 향연,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아뜰리에 에르메스 박미나 개인전 #요즘전시

박지우 2023. 8. 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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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 전경 ⓒ 사진 김상태, 에르메스 재단 제공

작년에 이어 서울을 한층 들썩이게 만들 프리즈(Frieze) 위크를 앞두고 수많은 브랜드와 기업에서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때로는 제품 협업의 이름을 앞세워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전시 소식을 알린다. 고등학교 시절 책가방을 한층 무겁게 만들던 수학의 정석처럼 마케팅의 정석이라는 교과서 같은 책이 있었다면, “기업과 예술의 만남”은 제7장 핵심 개념으로 소개될 마냥 어느덧 공식화되었다. 에르메스의 행보는 단연 그 일관성과 지속성 측면에서 손꼽힌다. 외국계 기업이 제정해, 그것도 한글로 명명한 “미술상(Missulsang)”을 앞세워 2000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현대미술을 꾸준히 후원해 온 것이다.

박미나, 2023-오렌지색-소파, 2023, 캔버스 위에 아크릴, 257 x 133cm ⓒ 사진 김상태, 에르메스 재단 제공 / ⓒ Photo Sangtae Kim,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에르메스 재단의 후원으로 박미나 작가의 신작 페인팅 9점을 선보이는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가 서울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최되며, 에르메스의 한국 미술 후원을 이어 나간다. 2000년대 초 신진작가로 주목받던 박미나 작가가 20여 년의 세월 동안 색을 수집하고 탐구하게 된 계기는 한 에피소드에서 비롯됐다. 당시 부동산 과열로 미술품 시장에 붐이 일자, 어느 갤러리스트가 ‘오렌지 페인팅’이 있는지 문의해 왔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오렌지 물감을 수집해 스트라이프 페인팅을 만든 것이 색채를 찾아 나선 기나긴 여정의 실마리가 되었다. 인테리어 트렌드가 반영된 세속적인 에피소드에서 오히려 영감을 받아 색을 크게 아홉 가지 범주로 두고 분류하기 시작했다. 물감은 일정한 두께로 칠해져 이인용 소파 크기에 맞는 가로형 스트라이프 페인팅으로 아파트의 통상적인 천장 높이를 기준 삼아 세로 회화로 완성되었다.

박미나, 2023-파란색-침대, 2023, 캔버스 위에 아크릴, 257 x 229cm ⓒ 사진 김상태, 에르메스 재단 제공 / ⓒ Photo Sangtae Kim,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아뜰리에 에르메스 안소연 아티스틱 디렉터는 신세대 작가의 당찬 방법론으로 여겨졌던 제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21세기와 함께 대두한 뉴미디어가 바꿔 놓은 이미지 패러다임의 시대를 살며, 작가는 회화의 고유성을 어떻게 유지할지 자문하고, 면밀한 조사 연구 활동을 기반으로 시판되는 물감을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일에 몰두한다.

박미나, 2023-노란색-옷장, 2023, 캔버스에아크릴, 257 x 304cm ⓒ 사진 김상태, 에르메스 재단 제공 / ⓒ Photo Sangtae Kim,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이번 전시에서도 여전히 강렬한 색의 향연을 제안한 작가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상품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색을 정의하는 이름이 많아지는 것에 주목했다. 9개의 회화 작업을 위해 수집한 색상은 총 1,134개에 이른다. 각각의 색은 작가가 천착한 분류화를 통해 그 자체로 전시장에 걸려 자태를 뽐낼 뿐 아니라 명칭과 더불어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그것이 상업적인 결과물이든, 마케터의 오랜 고심 끝에 한 단어 한 단어 재단해 세상에 나온 이름이든지 말이다.

박미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 전경 ⓒ 사진 김상태, 에르메스 재단 제공

박미나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한 자료 수집 중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가인 아파트 천장의 높이가 최소 30cm 이상 높아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 257cm 높이에 달하는 9점의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캔버스에 칠해진 물감을 순서대로 기록한 물감 리스트를 함께 목록화해 이 회화가 탄생하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평화로운 흰색’ ‘모네 라일락’ ‘복숭아 한 꼬집’ 등 색상 명을 읽다 보면 이름이 보여주는 사회의 단면과 미술사와의 관계, 문화적 감수성이 더해져 마치 시를 읽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탐구 정신이 축적해 낸 색의 관념이 시대와 욕망의 변화에 따라 문화와 취향을 반영해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 곱씹게 한다.

「 박미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
기간 2023. 7. 28. 금 - 2023. 10. 8. 일

주소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B1F)

관람시간11:00 - 19:00 (목요일 - 화요일, 수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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