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은 본능 아닌 경험' 나혜석 문제의식 지금도 큰 울림"
오늘도 대학로에서는 수많은 연극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연극을 준비해가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편집자말>
[차원 기자]
▲ 연극 <혜석의 이름>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는 (왼쪽부터) 김영준, 양동진, 이민하, 박기림, 최유리 배우 |
ⓒ 차원 |
지난 23일, 대학로 수컴퍼니 연습실에서 9월 13일부터 시작하는 연극 <혜석의 이름>(작가 황수아, 연출 방혜영)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최유리 배우와 방혜영 연출을 만나 인터뷰했다. 최유리, 이민하, 박기림, 양동진, 김영준 모든 출연진이 함께한 공연 연습도 참관했다. 연극은 8월 30일 개막하는 제8회 여성연극제의 작가전 선정작이다.
연극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 그리고 페미니스트였던 나혜석을 주제로 한다. 배우들은 나혜석을 무대화하려고 하는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 회원들을 연기한다. 배우와 연출은 "1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여성에 대한 시선들은 비슷한 것 같다"라며 "나혜석의 문제의식이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먼저 최유리 배우의 이야기다.
"언론에 재갈 물리려는 지금... 당시 나혜석 글 실어준 잡지 보며 놀라"
- 먼저, 맡은 역할에 관해 설명해달라.
"나혜석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역할을 연기한다. 마트에서 동그랑땡을 기가 막히게 잘 굽지만, 자기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소망이 있는 50대 여성 '나룻배' 역할이다."
- 등장인물들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존재감에 대한 불안을 가진 다양한 세대의 인물들이 나온다. 20대인데 아직 아르바이트만 하는 '카라멜 마끼야또', 말수도 적고 소극적인 30대 '노네임', 한때 대학로에서 잘 나가던 연출이었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지금은 다른 일을 하는 40대 '연출', 그리고 50대인 저 '나룻배'와 퇴직을 앞둔 은행원 60대 '마이웨이' 등 정말 다양하다."
- 연극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뭔가.
"'작가가 나혜석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가 가장 큰 관심이다. 작가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으로서, 관객의 가슴에 뭔가를 콱 꽂으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객과 나는 무엇으로 소통해야 할지 항상 생각한다. 나혜석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에 많은 관객들이 공감했으면 한다. '아 나도 저런 생각을 하는데, 저런 모습이 공감되네', '저 인물도 나랑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이런 것들을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다."
- 작가는 나혜석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회에서 여성들이 받는 시선들이 있지 않나. 여자라면 모성애가 있어야 한다, 정조를 지켜야 한다 등등. 그것이 나혜석이 살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간다는 고충은 크다. 이러한 점들이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함께 해나가야 할 문제를 오로지 여자들만이 책임질 문제라고 해버리니, 답답하다."
"그렇다. 그런 고민과 노력이 모여 세상이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는 것 아닌가. 100년 전 나혜석의 그 엄청난 생각들을 잡지에서 실어주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특히 지금처럼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태를 보니 더더욱 그러하다. 생각은 전파를 통해 힘을 키워나간다. 연극도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 즉 관객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방혜영 연출(왼쪽)과 최유리 배우(오른쪽) |
ⓒ 차원 |
다음은 방혜영 연출의 이야기다.
"라면 끓여주는 아빠는 다정한 아빠, 엄마는 형편없는 엄마"
- <혜석의 이름>은 어떤 연극인가.
"나혜석이라는 인물을 동시대적으로 풀어나가려는 작품이다. 그냥 사극이 아니라, 그 극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혜석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가, 조금은 바뀌기도 하고. 어떤 지점은 변하지는 않지만, 차이의 각도가 좁혀지는. 배우들이 일인다역의 연기를 펼치는 것도 특징이다."
- 제목의 이유가 궁금하다.
"나혜석은 자기 이름을 직접 짓지 않았나. 황수아 작가가 주목한 것도 이 지점이다. 어렸을 때는 여성이었기에 정식 이름이 없이 그냥 '아기' 등의 이름으로 불렸고, 나중에 본인의 이름을 직접 지은 것이다. 그래서 연극의 제목도 <혜석의 이름>으로 지었다."
- 나혜석은 흔히 이야기하는 '모성애'의 개념에 반기를 든 인물로도 유명하다.
"나혜석의 선언 중 하나인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요,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경험에 의한다'(나혜석 <모된 감상기> 중)라는 말도 우리 연극에 나온다. 우리는 너무 모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모성애가 없는 여자들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이게 이렇게 당연해지게 되면, 여성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감사를 받지 못한다.
남성에게도 여성과 같은 것을 요구하느냐 하면 아니지 않나. 아빠가 라면 끓여주면 다정한 아빠, 엄마가 라면 끓여주면 형편없는 엄마가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아빠는 그냥 잠깐 놀아만 줘도 칭찬받는데, 엄마에게는 훨씬 요구되는 것이 많다. 나혜석의 문제의식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다.
물론 나혜석이 본인이 주장하고 추구한 것을 다 잘하지 못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메시지에 주목했으면 한다."
- 무대 전환이 잦다고 들었는데.
"사실 우리가 무대에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기둥 3개를 통해 여러 장면과 공간들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무대 전환에 따라 시간과 장소가 바뀌어 가며 진행되는 극을 보시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 연극 <혜석의 이름>,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나.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사실 여성연극제이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이 오실 것 같긴 하다(웃음). 그래도 관심 없는 분들이 오셔서 한 번 보셨으면 하는 생각이다. '나혜석이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일도 했었구나'라는 걸 새롭게 아실 수도 있을 거다."
▲ 공연 포스터 |
ⓒ 연극집단 공외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 공연정보 연극 <혜석의 이름> 대학로 민송아트홀 2관 2023.9.13(수)~9.17(일) 평일 오후 8시/주말 오후 3시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다이나믹 듀오의 9년 전 노래, 왜 지금 역주행할까?
-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의 '무계획' 친모 찾기 여정
- "교육 바꾸려는 다른 나라들... 한국은 준비 안 하고 있어"
- "쿠팡 물류센터, 3층 구조 숨이 턱 막히더라"
- "모차르트 떠나는 아내 연기, 그래도 실패한 사랑은 아니죠"
- '오염수 방류' 비판한 김윤아, 이토록 비난받아야 하나
- 거기서 왜 나와... 걸그룹 MV에 깜짝 등장한 홍진경
- "서이초 교사의 죽음, 미국 사례 참고했더라면..."
- 2023년 당신에게 단 한 편의 영화만 추천할 수 있다면
- 뉴진스부터 리암 갤러거까지... 폭염에도 춤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