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재정 지우고 매표 예산 배격… '쓸 곳에 쓰겠다'는 尹 예산(종합)
'매표 정치' 배격 의지 거듭 강조… 약자 복지 두텁게
카르텔 예산 23조원 삭감… 약자·법치·일자리 등 지원
수출·미래산업 투자… 규제 철폐 추가해 경제기반 확충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해 절약한 재원으로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주장하자, 돈으로 유권자를 사는 매표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전 문재인 정부의 예산 기조를 '방만 재정'이라 지적하며 "재정 만능주의를 배격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 내달 정기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회에 제출될 2024년 예산안 편성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예산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래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떠넘기고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이같은 정부의 예산 운용 기조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긴축·건전 재정 유지 방침은 정부 출범 이후 수차례 예고된 바 있다. 전 정부의 무분별한 방만 재정 여파의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660조2000억원이던 국가 채무가 지난해 1068조8000억원으로 408조6000억원 증가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까지 36%에서 역대 최고치인 49.4%로 치솟은 만큼 '미래'를 위한 재정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게 윤 대통령의 판단이다.
前 정부 국가채무 400조원 증가… "방만재정으로 미래세대 부담"
이날 역시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국가채무가 400조원 증가했고 지난해 최초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며 "우리 정부는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히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주요 국제 신용 평가사들이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그 이유는 우리의 건전재정 때문이다. 대외신인도를 지키고 물가안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건전재정 기조를 착실히 이어나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매표 정치' 배격 의지도 거듭 꺼냈다. 윤 대통령은 "일각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예산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국채 발행을 통한 지출 확대는 미래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떠넘기고,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기업활동과 민생경제 전반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인기와 선거를 포기하면서도 국가 예산을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쓰겠다는 것으로 지난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 당시에도 "인기 없는 긴축 재정, 건전 재정을 좋아할 정치권력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치 권력이라면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2024년도 예산의 총지출 규모(656.9조원)를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증가율(2.8%)을 반영해 편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력한 재정 정상화로 전체 지출을 줄이고 채무 비율을 낮춰 미래세대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지출은 줄이되 경제 체질을 시장 중심, 민간 주도로 바꾸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윤 대통령은 "이를 위해 민간투자를 저해하는 킬러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금융시스템을 정비할 것"이라며 "심혈을 기울여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재정을 알뜰히 지키고, 민생을 살뜰히 챙기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 도움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을 챙기고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제출된 200여건의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재입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께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무위원들께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우리 민생과 미래 먹거리를 다루는 주요 법안들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비상한 각오를 갖고 총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권 카르텔 예산 줄여 약자복지 확대… "서민, 취약계층 두텁게 지원하겠다"
이날 윤 대통령은 내년도 정부 예산에 대해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2.8% 증가한 수준"이라며 "정치 보조금 예산, 이권 카르텔 예산을 과감히 삭감해 총 23조원의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총지출에서 법정의무 지출, 경직성 경비와 필수 지출을 제외한 정부의 재량지출 약 120조원의 20%에 가까운 액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진정한 약자복지 실현, 국방·법치 등 국가의 본질 기능 강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동력 확보라는 3대 핵심 분야에 집중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우선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해 절약한 재원으로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예고했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약자복지를 위해 ▲생계급여 지급액 21만3000원 인상 ▲기준중위소득의 30%에서 32%로 완화 ▲노인 일자리 기존보다 103만개 확대·수당 7% 인상 ▲한부모 가족 3만2000명에 양육비 추가 지원 ▲자립준비청년 수당 40만원→ 50만원으로 인상 등이 담겼다.
국방·치안을 위해서는 ▲모든 현장 경찰에 저위험 권총 지급 ▲상황별 대응 제압 훈련, 가상현실(VR)장비 등 모의 훈련시스템 도입 ▲초급간부 노후 숙소 4만2000개 전부 개선 ▲장교·부사관 복무장려금 2배 확대 ▲병 봉급 35만원 추가 지급 ▲얼음정수기·폴리스형 스웨터 지급 ▲보훈 보상금 5% 인상 등에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성장동력 확보에 집중… "수출은 우리 경제의 근간이자 일자리 원천"
삭감한 예산은 수출 활성화, 일자리 확보를 위한 우주·바이오 등 미래산업 생태계 조성에도 쓰인다. 특히 인도태평양·아프리카·우크라이나 등 전략지역에 대한 글로벌 공적개발원조(ODA)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수출은 우리 경제의 근간이자,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라며 "정부는 내년에도 '수출 드라이브 전략'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원전, 방산, 플랜트 분야의 수주 지원을 위한 수출 금융을 대폭 공급하고, 2조원 규모의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를 신설해 청년 창업가들의 자유로운 창업 공간인 '한국형 스테이션 F'를 조성할 방침이다. 이는 윤 대통령이 지난 6월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들른 '파리의 실리콘벨리' 스테이션 F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외국기업, 유턴 기업, 지방 이전 기업에 대한 투자보조금도 2배 수준으로 늘린다, 규제 철폐와 예산 지원을 동시에 단행, 투자를 늘려 경제 기반까지 넓히겠다는 복안이다. 윤 대통령은 "AI(인공지능), 바이오, 사이버 보안,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축 4개 분야에 4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며 "공급망 불안정에 대비해 리튬,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공공 비축을 평균 60일분으로 40% 이상 늘리겠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우주 등 미래 산업 생태계를 선점할 2조5000억원 규모의 전략 프로젝트 추진도 선언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미국 국빈 방문 당시 기반을 닦은 우리 연구기관과 보스턴 연구기관이 협력하는 이른바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의 본격 추진으로 이같은 글로벌 R&D 협력에 1조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린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 복지증진에 투입하는 ODA 규모를 올해보다 2조원 확대한 6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글로벌 연대 확산의 핵심인 인태지역, 아프리카 등 전략 지역에 대한 ODA 투자도 1조4000억 원에서 2조원으로 확대했다. 늘어난 ODA 예산을 우리 기업과 청년의 해외 진출 등에 활용하기 위한 중장기식 투자다. 이밖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관련 예산도 크게 늘렸다. 오염수 방류에 대응해 우리 해역과 수산물에 대한 안전감시체계를 촘촘히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총 7400억원이 쓰일 예정이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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