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틀리면 장타 소용없다"...尹 연찬회 '이념 발언'은 즉흥연설
지난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3400자 모두발언’은 준비된 원고에 없던 즉흥 연설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며 “국가 정체성에 대해 성찰하고 우리 당정만이라도 국가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확고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국민통합위원회 회의에서 언급한 ‘좌우 날개론’을 재차 거론하며 “협치, 협치 하는데,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딱 정해져 있고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앞으로 가려는데, 뒤로 가겠다고 하면 안 된다”라고도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9일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평소 윤 대통령의 소신과 철학을 그대로 밝힌 것이라 원고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거친 화법과 직설적 표현에 야당은 반발하고 있지만, 여러 대통령실 참모와 국무위원은 “자주 듣는 말”이라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거론한 것이 골프와 이념을 빗댄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중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과거 국무회의에서도 “골프에서 300야드를 칠 수 있는 실력이 있더라도 공이 날아가는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말하는 이념은 국가가 추구하는 철학과 방향성에 가깝다”며 “윤 대통령은 확실한 원칙이 없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가장 멀리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겐 한·미·일 협력도 세 나라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중국도 체제는 다르지만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면 언제든 협력할 수 있다. 그런 것이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이념”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이념을 강조하는 것과 관련해선 최근 정율성ㆍ홍범도 논란과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은 광주광역시가 48억원을 들여 중국 인민군 행진곡과 북한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공원을 만드는 것에 대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우려를 표했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해선 연찬회에선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권 내에서 윤 대통령의 이념론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추석을 앞두고 ‘경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윤 대통령도 지난 28일 주례회동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추석 물가 안정”을 당부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념론’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현장에선 우리 당이 점점 더 오른쪽으로 쏠린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중도층을 잡지 못하면 수도권은 필패”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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