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中 경제 추락에 멀어지는 ‘글로벌 중화’의 꿈
40년간 고도성장을 거듭해 온 중국 경제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세계 1위 패권국이 되겠다는 ‘글로벌 중화’의 꿈도 멀어지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단일 패권국으로 미국이 가진 힘을 와해시키기 위해 반미 전선 구축에 총력을 기울여왔지만, 최근 경제 위기론이 급속히 번지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반미 진영의 응집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짙어지고 있다.
"中 좋은 날은 갔다"…美 GDP 추월 야망 더 멀어져
2010년 미국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미국을 추월하는 시점이 2020년대 후반, 빠르면 2019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초 전망(2040년대 초반)에서 무려 20년가량 추월 시점을 앞당긴 전망이었다. 당시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의 45%에 불과했지만, 중국의 GDP 성장률은 10%를 웃돌던 고도성장 시대였다. 다른 예측 기관들도 수십년 안에 양적으로 중국 경제가 미국에 버금가거나 미국을 역전할 수 있다는 관측을 앞다퉈 내놨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중국의 GDP는 17조9600억달러(약 2경3790조원)로, 미국(25조4600억달러)의 70.5% 수준까지 치고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최근 닥친 경제 위기로 빛이 바랬다. 위기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은 중국 부동산 시장이다. 2년 전 중국 제2의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를 시작으로 매출 기준 업계 1위 비구이위안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졌다. 이어 완다, 위안양 등 대형 부동산 업체들도 도미노 디폴트 위기에 처하면서 거품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영국 패덤컨설팅의 중국 경제학자 후안 오츠는 "오늘날 중국은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일본과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종위안 연구원은 "이번 경제 위기는 수년간 쌓아온 중국의 경제 성장 모델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은 GDP의 30%를 차지할 만큼 중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막대한 빚을 굴려 투자와 부동산 거품으로 지탱해온 시장이 한계에 도달하자,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고 있던 금융권까지 위기가 전이되면서 중국 경제 전반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GDP 대비 부채비율은 중국이 295%로, 미국(257%)보다 높았다.
부동산 시장의 위기 외에 중국의 수출 비중이 줄고 있다는 점도 중국 경제 성장세에 좋지 않은 신호로 꼽힌다. 중국은 2010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수출 경제국이 됐고 같은 해 GDP 대비 수출 비중은 약 30%를 차지했다. 하지만 현재 이 비중은 20%까지 줄어든 상태다. 미국외교협회(CFR)의 국제경제 연구원인 종위안 조 리우는 "중국의 경제 성장은 이미 정점을 지났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부각된 중국발(發) 공급망 리스크를 피해 인도 등지로 이탈하는 탈(脫)중국 행보도 중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들의 탈중국 흐름에 중국의 ‘세계의 공장’ 지위는 이미 인도로 넘어갔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투자자들도 외면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지난해 1800억달러로, 전년 대비 48%나 급감했다. 이에 따라 GDP에서 FDI가 차지하는 비중은 2% 미만으로 떨어졌다.
중국의 수출과 물가, 고용, 소비, 생산 등 주요 경제 지표가 악화 일로를 걷자,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낮추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4%에서 4.8%로, 바클리스는 4.9%에서 4.5%로 각각 낮추며, 중국 정부가 설정한 ‘5%’ 수성도 힘겨워졌다.
브릭스 ‘반미 진영’ 아닌 ‘경제적 이해관계’
이 같은 경제 파고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지에도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주요 7개국(G7)에 대항하는 중국 주도의 경제 블록 ‘브릭스(BRICS)’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지난 24일 끝난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자국에 우호적인 국가들을 새 회원국으로 최대한 받아들여 세를 불릴 계획이었으나, 인도·브라질 등 기존 회원국들의 반대에 부딪혀 총 22개 신청국 중 6개국만 영입하는 데 그쳤다. 내년 10월 열릴 차기 회의에서도 중국의 목표 달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존 회원국들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중간국 외교’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력을 잃어가는 중국 편에 줄을 댈 가능성은 낮다. 포린폴리시는 "인도와 브라질은 미국 중심의 질서에 대립하는 정책을 뚜렷하게 보여줬던 국가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고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며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중국이 경기 침체에 직면하면서 브릭스 가입의 이점이 줄고 있다는 점에서 신규 회원국 유치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릭스의 목표도 당초 중국의 의도와 달리, ‘반미’가 아닌 ‘경제적 이해관계’로 다져지고 있다. 신흥국으로 구성된 회원국들은 브릭스 결집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나, 중국의 반미 노선에 대해서는 큰 틀의 합의가 없는 상황이다. 친중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마저도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 개막일에 "브릭스가 G7 대항마가 아니며 미국과 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외신들은 같은 맥락에서 ‘브릭스 공동통화’ 도입에 대한 논의도 이번 회의에서 이뤄지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브릭스는 2011년 4월 싼야 선언을 통해 ‘탈달러’ 움직임을 공식화했지만,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올해 의장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재무장관인 에녹 고동과나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비공식 회의에서도 브릭스 공동통화 문제는 거론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통화를 설정하려면 중앙은행을 설립해야 하고 이는 통화정책에 대한 독립성을 잃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어떤 국가도 이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전했다. 포린폴리시는 "브릭스 공동통화가 결실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매우 회의적"이라고 평했다.
중국이 야심차게 끌고 온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서도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중국과 밀착하며 G7 국가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에 참여한 이탈리아는 최근 탈퇴 의사를 밝혔다.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윤 선 중국 책임자는 "2019년 미·중 대결 구도 속 G7 회원국인 이탈리아가 일대일로에 동참하자 중국은 ‘정치적 큰 승리’라며 자축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탈퇴는 중국의 자부심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했을 것이며, 이는 중국에 큰 굴욕"이라고 꼬집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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