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나와 퓨마의 나날들

서믿음 2023. 8.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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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이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인간의 성장기다. 저자인 로라 콜먼은 20대에 직장을 그만두고 남아메리카에서 배낭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야생동물 보호구역 자원봉사자가 된다. 그곳에서 그는 불법 밀매로 학대당하다 구조된 퓨마 ‘와이라’를 돌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야생을 두려워하는 퓨마, 삶이 두려워 도망친 한 여성이 서로를 믿으며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아슬아슬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내,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와이라는 어디에서 왔죠?”

(…) “새끼일 때 어미와 헤어졌어요.” 마침내 말문을 연 제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다. 몇 번이고, 수도 없이 되풀이한 이야기라는 것처럼. 나와 같은 봉사자들을 얼마나 많이 가르쳐야 했을까. “사냥꾼들이 어미를 총으로 쏘고 와이라를 도시로 몰래 들여왔을 거예요. 암시장에서 팔아넘기려고요. 한 거리 예술가가 와이라를 사와서 작은 상자에 가둬놓고 시끄럽고 더러운 곳에 방치했어요. 그다음에 재주를 부리도록 만들었죠. 그 어린아이를요. 이건 정말……” 제인이 이를 악무는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 “야생에서 살았더라면 두 살이 될 때까지 어미와 지냈을 거예요. 그런데 사슬에 묶여서 채찍질을 당하고 영양 불량에도 시달렸죠.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전혀 배우지 못했어요. 자라서 난폭해진 뒤에야 이곳에 버려졌어요. 태어난 지 열 달쯤 됐을 때예요.” - p.70-71

처음으로 나를 핥는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핥고 있어!” 목소리를 낮춰 감탄한다.

문 반대편에서 무릎을 감싼 채 쭈그려 앉아 있던 제인이 웃는다.

“너무 들뜨지는 마. 소금기 때문일 거니까.”

와이라는 도도하게 이마를 들이밀어 나의 팔을 뒤집더니 다른 쪽까지 핥기 시작한다. 하마터면, 정말이지 하마터면 와이라는 케이지 안에, 나는 바깥에 있다는 것조차 망각할 뻔했다. (...) 할짝, 할짝, 할짝. 살갗이 벌게진다. 나머지 몸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오직 와이라와 접촉한 이 좁은 살갗만이 감각의 대상이 된다. 그저 그 부분만이 나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 이를테면 놓친 버스, 마을을 구경할 기회, 이전의 생활 전체가 흐릿해져간다. 와이라는 케이지가 실재하지 않는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처음 만난 날 하악거리던 고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똑같이 생겼지만, 결코 똑같지 않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워낙 활짝 웃고 있어서 또다시 우스꽝스런 순간에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 p.73

와이라와 같은 처지의 또 다른 동물들, 사람들의 공동체, 나무와 강과 호수와 산이 제각기 모여 이룬 세상이 모조리 다 죽어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덟 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동물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운 동물들이 떼 지어 밀려들고 돌보던 동물들이 끌려가는 광경을 하염없이 지켜본다. 그러는 동안 나는 오솔길을 따라 뛰어다니고, 와이라의 털을 다듬어주고, 함께 헤엄을 치고, 나의 찬란한 존재 이유를 전부 와이라에게 돌린다. 정글이 산산조각 나는 와중에 침수와 화재가 갈수록 심해지고 도로가 더욱더 많이 만들어진다.

떠난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을 하기로 선택한다면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선택할 수 있다. 특권이 남긴 선물이다. 와이라는 선택조차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결코 부서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품기로 선택했다. 결혼 그리고 성공의 의미.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자본주의, 종차별주의를 비롯한 ‘주의’들. 이러한 파멸을 떠받치는 것들. 나 자신과 나의 욕망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만든 모든 것들. 수많은 사람을, 수많은 집을, 수많은 동물을 다치게 한 모든 것들. 그것들에 의문을 품고 맞서 싸우기로 선택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떻게 와이라의 얼굴을 볼 수가 있겠는가? - p.351

불법 야생동물 거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야생동물 거래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인데,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성장만을 거듭하고 있다. ‘귀여운’ 새끼 퓨마가 ‘귀여운’ 짓을 하는 사진은 올라오는 즉시 퍼져 나간다. 전 세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볼리비아의 수많은 동물과 사람이 집을 잃었다. 혹은 집이 있더라도 끔찍한 악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 p.438

나와 퓨마의 나날들 | 로라 콜먼 지음 | 푸른숲 | 448쪽 | 2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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