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러다이트 운동"…자율주행차에 고깔 씌우는 이유는?
美 캘리포니아 자율주행차 누적 사고 637건
자율주행차 소방차와 충돌…통신 두절 시 무용지물
시험·상용화 본격화로 개발자들 고민거리 늘어
국내선 운전습관 반영한 시스템 개발 주력
미국 샌프란시스코 거리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GM 크루즈 로보택시(Robotaxi) 보닛 위에 삼각뿔 모양의 안전 고깔을 씌우고 있다. 자율주행 센서가 장착된 보닛 부분에 주황색 고깔을 씌우자 로보택시는 옴짝달싹 못 한다. 운전자가 있다면 차에서 내려 고깔을 치워버리면 그만이지만, 무인 로보택시는 고깔 하나를 씌우는 것만으로도 깡통으로 변한다. 첨단 기술의 집약체가 한순간에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자율주행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도입되는 도시다. 최근 이곳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의 맹점을 지적하는 시위가 도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첨단 기술을 한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 발전의 단계나 속도도 중요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수용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신기술 도입 과도기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자율주행 차량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람들은 이들을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운동(신기술 저항운동)'과 비교해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승객을 태우고 이동하던 크루즈 로보택시와 소방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늦은 밤 비상 신고를 받고 갑작스럽게 이동하던 소방차의 움직임을 무인택시가 완전히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소방·경찰당국은 공식적으로 로보택시 도입을 꾸준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방당국은 올해 4월 이후 로보택시가 소방관의 긴급 출동을 방해하는 사례가 55건 이상 보고됐다고 했다.
긴급 출동 중인 소방차 앞을 먹통이 된 로보택시가 막아 세우는 사례도 다수 발생했다. 로보택시를 수동운전 모드로 바꾸는 데는 몇분이 걸리지 않지만, 긴급 상황에서 소방당국이 얘기하는 '즉시'와 자율주행 업체들이 말하는 '가능한 한 빨리'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 소방관들은 주장한다. 1~2분에 한 사람의 생사가 달린 상황에서 '가능한 한 빨리'는 사람 하나를 죽이기 충분한 시간이란 말이다.
지난 11일에는 크루즈 로보택시 10대가 해변의 한 거리에 멈춰서서 교통 혼잡을 일으켰다. 인근 지역에서 열린 콘서트로 대규모 인파가 한꺼번에 몰렸고 이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늘면서 주변 통신 시스템을 교란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15일에는 로보택시 한 대가 주변 공사장으로 난입해 굳지 않은 콘크리트 속으로 들어가는 사고가 있었다. 또한 로보택시 안에서 성관계를 갖는 커플들이 생겨나면서 무인 자율주행차가 '움직이는 러브 호텔'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기도 했다.
이같은 사례들은 모두 미국 교통당국이 구글 웨이모와 GM 크루즈에 샌프란시스코 24시간 유료 로보택시 운행 허가를 내준 지 일주일도 안 돼 벌어진 일들이다. 결국 미국 캘리포니아 차량관리국(DMV)은 크루즈 로보택시 운행 대수를 기존 계획의 절반(200대)으로 줄여 운영할 것을 권고했다. 2014년 9월 공공도로에서 자율주행차 테스트를 허용한 이후 이달 16일까지 DMV에 누적 신고된 자율주행 차량 관련 사고는 637건이다.
첨단 기술 수용의 과정에서 사회적 부작용은 엔지니어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하나씩 제거하고 기술적 완성을 이뤄가는 것이 엔지니어의 궁극적 목표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기술 수용 과정에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적절한 제도와 규범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과제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 초기 단계에서 엔지니어들이 당면한 과제는 비교적 단순했다. 초기 엔지니어들은 승객이 문을 닫지 않고 그냥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승객이 문을 열어둔 로보택시들은 새로운 변수를 해결하지 못한 채 도로 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런 문제는 비교적 해결이 쉽다. 택시 문을 자동으로 여닫는 기술만 추가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 도로에서 시험 운행이 늘면서 고민해야 할 과제는 점점 어려워졌다. ▲만일 승객이 가방이나 물건을 두고 내린다면? ▲갑자기 지진이 나서 모든 통신 장비가 먹통이 된다면? ▲심장마비나 쇼크 등 탑승자가 갑자기 안전·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킨다면? ▲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낸다면 차량과 보행자 간 과실 비율은? ▲누군가가 자율주행차를 해킹한다면? 등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질문들이 추가된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 자율주행 차량을 개발·시험할 경우 주행환경이나 한국 운전자만의 운전 습관까지 감안한 과제들이 더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좁은 길에서 보행자들의 무단횡단이 잦다. 운전자들도 보행자 우선으로 양보하기보다는 운전자와 보행자 사이의 상황별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 갑자기 끼어드는 보행자를 파악하고 움직임의 방향을 세밀하게 예측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도심에서는 꼬리물기나 갑작스러운 끼어들기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자율주행 차량의 경우 일정 거리 이상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도록 기본값을 세팅해놓는데 꽉 막힌 서울 도심에서 여유로운 안전거리를 유지하다간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수 있다. 반면 안전거리를 좁히면 사고가 났을 때 안전거리 미확보로 차량 과실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한국 교통 흐름과 주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안전거리를 찾는 것이 개발자들의 숙제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관계자는 "신기술 도입에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는 자율주행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 안전요원 배치, 점진적인 기술 도입 등 과도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자율주행 도입으로 직업으로서 운전기사는 사라지지만 과거의 '차장' 역할을 하는 신개념 직업이 다시 생겨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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