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 환초 핵실험 20년 뒤에도…거북이 등딱지에 남은 흔적
1940~50년대 미국 네바다 사막이나 태평양 산호초 섬에서 실시했던 핵 실험 흔적이나 핵무기 제조 과정 때 발생한 방사성 물질 오염이 거북이 등딱지의 각질(케라틴)에서 검출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바다에 들어간 방사성 물질도 비슷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 태평양-북서부 국립 연구소와 뉴멕시코 대학 등 연구팀은 역사적으로 핵과 관련된 장소 인근에서 채집한 거북이의 등딱지 속의 인공 방사성 물질을 분석해 최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넥서스(Nexus·연관성)'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다섯 곳의 거북이 표본 분석
연구팀은 등딱지 전체를 분석하기도 하고, 나무 나이테처럼 생긴 등딱지의 성장 고리에 맞춰 부분부분 정밀 분석하기도 했다.
거북류 등딱지는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성장하는데, 성장 고리 순서에 따라 나눠 분석하면 핵 낙진 또는 오염 이력을 재구성할 수 있는지, 국지적인 오염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방사성 물질은 우라늄(U)-235와 U-236 등 인위적 방사성 물질과 자연계 존재하는 U-238을 정밀한 중금속 분석기로 검출하고, 이들의 비율을 바탕으로 오염 노출 정도를 파악했다.
U-235는 자연계에서 0.7%만 존재하며, 핵무기 제조나 원자로 연료를 위해 20% 이상으로 농축된다. 핵분열 과정에서는 U-236이 대량으로 생산된다.
두 환초에서 67회 핵실험
이곳 에네웨탁과 인근 비키니 환초에서는 1946~1958년 67번의 핵무기 실험이 진행됐고, 해당 거북이가 잡히기 20년 전에 핵실험이 종료됐다.
두 번째 표본은 1959년 4월 미국 유타주 남서부 워싱턴 카운티에서 수집된 모하비 사막거북(Gopherus agassizii)이었다. 1951~1962년 100차례의 대기 핵실험이 진행됐던 네바다 시험장에서 동쪽으로 150마일(약 240㎞) 떨어진 곳이다.
세 번째 표본은 1999년 애리조나 남서부의 배리 M. 골드워터 공군 기지(BMGAFR)에서 수집된 소노라 사막거북(Gopherus morafkai)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특별한 핵 오염이 보고되지는 않았다.
네 번째 표본은 1985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사바나 강 지점에서 수집된 리버쿠터(rivercooter, Pseudemys concinna)였다. 이 지역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우라늄 연료의 제조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이뤄진 곳이다.
다섯 번째 표본은 1962년 테네시 주 동부 오크리지 보호구역(ORR)에서 수집된 이스턴상자거북(Terrapene carolina carolina)이었다. 이곳 역시 1943년부터 중요한 우라늄 생산 및 처리 장소였다.
등딱지에서 인위적 우라늄 검출
에네웨탁 환초의 푸른바다거북 등딱지에서 측정된 우라늄 농도는 g당 20.17ng(나노그램, 1ng=10억분의 1g)으로 낮았지만, 측정된 U-235/U-238 비율은 천연우라늄의 1.35배였다.
연구팀은 "핵실험이 끝난 지 약 20년 후에도 푸른바다거북의 몸에 인위적 우라늄 오염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염된 퇴적물이 교란돼 낙진 생성물이 다시 환경에 재투입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오크리지 보호구역 표본의 경우 등딱지에서 7개의 성장 고리를 확인했고, 1955년에서 1962년 사이에 핵 물질 누출량에 따라 연도별로 등딱지의 U-235/U-238 비율이 오르내리는 것도 확인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도 조사 가능
구소련의 핵실험과 관련해서는 카자흐스탄 대초원 거북이를 사용할 경우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팀은 또 거북이 등딱지 외에도 조개류나 산호, 선인장 가시, 상어·물고기 어안 렌즈나 이석, 새 깃털, 포유류 치아 등도 방사성 오염 노출 기록을 제공할 잠재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과 퇴적토 오염에다 생물학적 시료를 결합하면 정확한 오염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우라늄 외에도 플루토늄-239, 플루토늄-240, 세슘-137, 스트론튬-90 등 다른 인위적 방사성 핵종도 조직에 축적되므로, 향후 이들도 연구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후쿠시마 방류 모니터링엔 미흡
하지만 후쿠시마 모니터링은 사고 직후 바다로 다양한 방사성 핵종이 대량 유입된 경우에만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방류가 시작된 후쿠시마 오염수의 경우는 방사성 핵종이 대체로 삼중수소나 탄소에 한정됐고, 농도도 사고 당시보다는 낮아 논문에서 제시한 수준의 모니터링을 적용할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
다만 에네웨탁 환초의 경우처럼 오염수 방류나 태풍 등으로 퇴적토 교란이 일어날 경우 사고 때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재오염으로 이어지고, 모니터링 과정에서 확인될 여지는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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