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상만 채용, 임금피크 없다"…日기업 정년 없애는 이유 [시니어 고용①]
이 회사엔 '60년 근속' 직원이 있다.
일본 기후(岐阜)현 나카쓰가와(中津川)시에 있는 금속부품 생산 기업 '가토(加藤)제작소'. 지난 10일 사무실 뒤편에 있는 공장에 들어서니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각종 기계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공장 내부,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도, 보호대를 쓰고 용접을 하는 이도, 부품이 가득 실린 카트를 밀고 지나는 직원도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다.
전 직원 90명, 이중 절반인 45명이 60세 이상의 고령자다. 70대 이상도 26명이다. 사자키 다모쓰(佐々木保·75) 씨는 10대에 이 회사에 들어와 60년째 일하고 있다. 각종 기계 가동법 등을 소상히 알고 있어 신입 사원 업무 교육 등을 도맡는다.
가토제작소가 노인 인력을 적극 채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당시 회사가 성장세라 주말에도 공장을 가동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인 나카쓰가와에선 젊은 인력도, 외국인 노동자도 찾기 힘들었다. 4대째 사업을 잇고 있는 가토 케이지(加藤景司) 사장은 은퇴 후 일자리를 찾고 있는 고령자층에 눈을 돌려 이런 모집 공고를 냈다. '의욕 있는 사람 구합니다. 남녀 불문. 경력 불문. 단 나이 제한 있음. 60세 이상인 분만.'
초기엔 불협화음도 있었다. 전혀 다른 일을 하던 노인들이 기계 작동법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멍키(멍키스패너) 가져오세요"라는 말에 "원숭이 말이요?"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령자들의 일에 대한 의지와 숙련도가 빛을 발했다. 가토 시나코(加藤志奈子) 총무부장은 "노년층 사원들은 웬만해선 그만두지 않는다. 회사로서는 인력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이들을 '실버 사원'이라고 불렀지만 나이보다는 경력을 강조하자는 뜻에서 요즘은 '커리어 사원'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신규 채용에선 60대가 1명, 70대가 1명 입사했고 20대 직원도 1명 뽑았다. 커리어 사원들은 건강 등의 이유로 주 2~3회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풀타임이다. 사자키씨는 "내가 회사에 폐가 된다고 판단되는 순간이 은퇴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같은 나카쓰가와에 본사를 둔 식품회사 '사라다 코스모'도 고령자 고용에 적극 나서는 기업이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체험형 농장 겸 레스토랑 '치커리무라(村)'는 스태프 66명 중 41명이 60세 이상이다. 대부분 이 지역 토박이로 관광객들에게 지역의 특산품을 안내하는 역할도 맡는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하다 17년째 치커리무라에서 술 제조·판매를 하고 있는 오구라 요시로(小倉義郎)씨는 올해로 84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몸을 계속 움직여 그런지 아직은 체력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미야가와 신이치(宮川真一) 지배인은 "코로나19로 운영이 축소됐지만 다시 관광이 활성화하면 고령자 신규 채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기업 99%는 사실상 '65세 정년'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이 심각한 일본은 노인 인력 활용에서 답을 찾고 있다. 이미 제도적으로 65~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고, 가토제작소나 치커리무라처럼 아예 고령자만 신규 채용하는 기업도 늘어난다.
일본은 지난 1994년 법적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한 후 2006년에는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기업들에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정년 폐지 ▶정년 연장 ▶계속 고용제 중 하나를 선택해 정년 후 직원들의 고용을 확보해야 한다. 계속 고용제란 정년 이후 근로자들을 계약직 등의 형태로 본사나 관계 기업에 재고용하는 방식이다. 지난 2020년에는 법을 다시 개정해 만 70세까지 일하기를 원하는 근로자의 경우 기업이 계속 고용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여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직원 31인 이상 기업 가운데 99.9%는 원하는 이들이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한 기업이 25.5%, 정년을 아예 폐지한 기업은 3.9%이고, 70.6%의 기업은 비용 상의 문제 등으로 계속 고용제를 선택해 노인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60~64세 고용률(취업률)은 73%, 65~69세는 50.8%로 60세 이후에도 대다수가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대형 가전양판 회사인 노지마는 지난 2021년 정년을 아예 폐지해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 회사는 일찌감치 정년을 65세로 끌어올린 후, 정년 이후에도 80세까지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방식을 도입했다가 2년 전부터 80세라는 한계마저 없앴다. 회사 측은 "판매나 점포 관리 등 고령자 직원이 경험을 살려 활약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엔 현재 80세 이상이 3명, 70세 이상 직원 약 30명이 일한다.
60세 이후에도 임금 삭감 안 한다
고령 인력에 대한 '귀한 대접'의 배경에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이 있다. 일본의 생산 연령 인구(15~64세)는 1995년을 정점으로 줄기 시작해 2050년에는 2021년(7450만 명)보다 29.2%나 감소한 5275만 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 연령 인구 감소로 인력 부족은 물론 국내 수요 감소로 인한 경제 규모 축소 등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부작용이 우려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처음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며 정년 연장에 반대했던 기업들이 최근엔 노동력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고령자 고용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엔 60세가 넘은 직원들의 경우 37.9%가 기존 월급의 60~80%를, 35%는 60% 미만의 급여를 받았지만, 이 월급 차이마저 없애는 회사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 스미토모화학은 내년 4월부터 현역 시절의 40~50% 수준이었던 60세 이상 직원의 임금을 59세에 받던 수준으로 맞춰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정년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끌어올린다. 대형 전자 부품 기업인 무라타제작소도 60세 이상 직원의 임금 체계를 재정비하는 동시에 개인이 자신의 정년을 60~64세 중 고를 수 있는 '선택정년제'를 도입한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도와(TOWA)도 60세 이후 재고용 때도 정사원과 같은 대우를 보장하기로 했다.
"한국도 곧 인력 부족 심화할 것"
고령자 고용의 효용은 부족한 노동력 확충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일하기를 원하는 노인들에게 일거리를 줌으로서 경제적,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사회 보장의 성격도 크다. 일하는 노인들은 세금과 연금을 지속적으로 납부하게 돼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김명중 닛세이 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노인 빈곤률은 20% 정도로 한국(약 40%)보다는 낮지만 선진국 중에선 높은 수준"이라며 "고령자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면 노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보장 비용 감소, 경제 활성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빠른 고령화 속도와 세계 최저 출산율로 생산 가능 인구의 급감이 예상된다. 따라서 고령자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는 "일부 산업에서는 이미 일손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은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와 고령자 고용 문제를 같이 풀어야 하는 이중의 숙제를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경우 60세 이상에게 일할 기회를 주면서도 임금 수준은 확 낮췄던 일본의 초기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나이 든 직원에 대한 고용은 유지하되 노동 비용을 절감해 그만큼 젊은 층의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청년과 고령자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자리나 근무 방식 등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나이와 상관없이 실적에 따라 보상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나카쓰가와(기후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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