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5세의 저주'…"명문대 나왔지만 승려도 떨어졌다" [세계 한 잔]
#중국인 한 모(34)는 베이징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로 일하다 지난 2월 직장을 잃었다. 10년여간의 업무 경험을 무기로 그는 회사 수백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면접이 잡힌 건 4곳이었다. 그는 취업이 어려운 이유가 나이 탓이라고 여긴다.
#"저는 철학석사 학위가 있는 38세 전직 배달원입니다" 콘텐트 크리에이터로 생계를 잇고 있는 천타오(陳濤)는 최근 중국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유명인이 됐다. '35세 나이 제한'에 걸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다. 그는 2011년 지역 명문대인 쓰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기자로 수년간 일했다.
그러나 언론계를 떠나 시작한 사업이 지난해 망하면서 취준생이 됐다. 한때 음식 배달도 했지만 사고로 무릎까지 다쳐가며 하루 종일 번 돈이 고작 26위안(약 4700원)인 걸 알고 접었다고 밝혔다. 천은 SNS에 "35세 이후엔 이력서를 보내도 98%는 회신조차 없다"면서 "도교 발원지인 칭청산(靑城山) 사원에서 일할 도사(불교의 승려격)를 신규 채용하는데 지원했지만 '35세 이하' 제한에 걸려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CNN은 이처럼 중국에서 35세를 전후로 새 직장을 구할 수 없거나 기존 직장에서 해고되는 '35세의 저주' 현상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신입사원보다 임금을 더 줘야 하고, 육아 등 때문에 초과 근무를 시키기 어려운 35세 전후 근로자를 기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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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회복 더뎌 고용에 소극적…30대 중반 택시·배달기사 흔해
이렇게 '35세의 저주'가 확산된 배경엔 예상보다 더딘 중국 경제의 회복세가 있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 기업들도 채용에 소극적이다. 중국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각각 수천~수만 명을 감원했다.
중국의 심각한 취업난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중국의 16~24세 청년 실업률은 지난 6월 사상 최고치인 21.3%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을 제외한 것이며 실제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인 장단단(張丹丹)은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에 "해당 실업률은 1600만 명의 취업 포기 청년들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로 실제 실업률은 46.5%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지금도 일자리가 부족한데 구직자는 쏟아질 것이란 점이다. 올해 중국 대졸 예정자는 지난해보다 82만 명 증가한 1158만 명으로 역대 최대다.
CNN은 남보다 나은 스펙을 위해 가방끈을 늘리다가 취업 시장에서 도태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취업 시장에서 우위에 서려고 석·박사 학위를 따려는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중국 청년들의 취업 시장 진입을 늦추고 취업을 어렵게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신규 채용도 빠듯한데 30대가 넘어 새 일자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CNN은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30대 중반 중국 청년층이 택시기사나 배달기사가 되는 일은 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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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오면 자리 사라져"…中 출산장려 '그림의 떡'
특히 35세의 저주에 타격 입는 건 여성 근로자다. 선전의 한 바이오 기업에서 일하던 류 모(35)는 출산 휴가를 다녀온 사이 일자리를 잃었다. 류는 CNN에 "회사가 비용 효율성을 고려해서 (해고)결정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출산 장려 등 정책을 내놔봤자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취업난이 극심해지자 중국에선 아예 부모와 함께 살며 집안일을 하고 부모로부터 월급을 받는 '전업 자녀'도 생겨났다.
장이란 코넬대 법학과 조교수는 CNN에 "중국 노동법은 직장 내에서 민족·종교에 따른 차별은 금지하지만, 연령과 관련해선 마땅한 규정이 없다"면서 법 제도를 통해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공무원의 취업 연령 기준을 35세에서 40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CNN이 전했다. 한편 홍콩 명보는 중국 내에서 법정 결혼 가능 연령(남성 22세, 여성 20세)을 낮춰서 취업·결혼·출산 등을 앞당기자는 주장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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