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분노하라
전 세계적 K팝 열풍의 진원지가 된 보이그룹 BTS. 이 그룹의 제작자인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의 수장 방시혁씨가 2019년 자신의 모교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남겼는데 그 내용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었다. 그는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오늘의 저를 만든 에너지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화’, 즉 ‘분노’였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음악 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열심히 창작하지만 결국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음악 종사자들의 열악한 현실. 그 가운데 자신 역시 결국 소명 없는 적당함에 젖어 들려 하는 모습에 분노했었음을 전제로 던진 말이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분노’가 무조건적 악덕이 아니라 대상과 방향이 전환되기만 한다면 도리어 세상을 바꿔나갈 동력이 될 수도 있음을 천명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분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문화는 없다. 특히 동양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최악의 악덕이다. 세상의 모든 약함과 악함까지도 포용하려 들었던 겸손하고도 온유한 ‘예수님’의 이미지가 앞서는 우리는 그래서 분노에 분노한다.
쉬이 분노하는 그리스도인은 단언컨대 좋은 신앙적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리네 관점은 보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문제는 화를 너무 많이 내는 게 아니라 어쩌면 너무 적게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참고 인내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미덕이자 신앙이다. 하지만 뒤틀린 세상이 발산하는 악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것, 나아가 그런 세상에 대한 최종적 대안이 돼야 하는 교회가 도리어 헛발질하는 모습에 대해 좀처럼 분노하지 않는 데 분노가 인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진보한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아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면 문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것은 참고 견디는 게 미덕이 아닌 방관이라는 악덕으로 귀결될 뿐이다. 또 교회의 덕을 위해 자신이 안고 간다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진 이들이 많아지면 교회가 오히려 무너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간절한 기도와 인내인 동시에 마주해 버린 악과 불의에 대한 정의로운 분노이다.
예수께서 성전의 좌판을 뒤엎으셨던 것은 단순히 성전에서 이뤄지는 장사치의 상행위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성전 권력에 매몰되어 돌아가는 기존 종교 체제와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권력자들, 심지어 그 악을 부추기고 주관하는 지도자들에 대한 상징적 분노였다. 물론 그것은 결국 기존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겨져 십자가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상관없다. 그것이 구원과 교회의 탄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희생한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그저 덮고 넘어갔던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너무도 착한 그리스도인들. 누가 감히 그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넘어가면 악은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덮고 넘어간 이들을 모함하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그저 덮고 넘어가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여전히 품은 죄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패착이다. 전혀 분노하지 않음에서 비롯된 불의한 순응은 개인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교회적으로는 회개할 수 있는 타이밍의 상실로, 세상에는 대안의 부재로 돌아간다.
곧 교단별 총회 시즌이 도래하기에 다뤄질 안건들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우려가 든다. 저 안건이 옳은가. 옳더라도 꼭 지금 필요한가. 혹시 더 긴급하고 필요한 안건은 없는가. 나아가 저런 자리에서 저런 방식으로 다뤄야 하는가. 좀처럼 납득 안 되는 것이 많다. 분노가 인다. 교회를 사랑하는 목사조차도 그러한데 애정이 식어버린 이들, 심지어 교회 밖 사람들은 어떠할까. 라인홀트 니버의 이 기도문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울린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손성찬 목사(이음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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