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가정교향곡’과 출산율
이달 초 강원도 평창에 다녀왔다. 알펜시아 야외공연장에서 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을 봤다. 최수열 지휘 경기필하모닉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알프스 교향곡’을 연주했다. 교향시란 문학적이거나 회화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관현악에 의한 표제음악이다. 아주 옛날의 뮤직비디오랄까. 장면이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떠오르기에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는 데 좋다. ‘알프스 교향곡’도 마찬가지였다. 일출·등산·폭풍우를 거쳐 일몰까지 자연의 장엄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싱그럽고 달콤했던 평창의 공기와 잘 어울렸다.
내년에 탄생 160주년을 맞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교향시 분야에 걸작을 많이 남겼다. ‘알프스 교향곡’ 외에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돈 후안’ ‘돈키호테’ ‘영웅의 생애’ 등이 유명하다. 음악회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아 전국 각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명곡임에도 실제 연주로 들어보기 힘든 슈트라우스 교향시가 있다. 다름 아닌 ‘가정교향곡(Symphonia Domestica)’이다.
슈트라우스는 1894년 파울리네 데 아나와 결혼했다. 슈트라우스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탄호이저’를 지휘했을 때 엘리자베트 역을 불렀던 소프라노다. 외동아들 프란츠가 태어난 후 가정의 소중함은 슈트라우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오페라 ‘인테르메초’, 그리고 교향시 ‘가정교향곡’이다.
4부로 구성된 ‘가정교향곡’은 각기 주제를 가진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이 낮, 밤과 다음날 아침까지 음악으로 펼치는 이야기다. 1부는 각 인물의 소개, 2부는 장난치다 잠이 드는 아들, 3부는 사랑을 나누는 부부, 4부는 부부싸움과 화해, 아침의 활기참을 그렸다. 낭만적인 해피엔딩이 아닌 ‘부부싸움과 화해’로 곡을 끝냈다는 점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가정교향곡’을 음악회에서 보기 힘든 이유는 뭘까. 어려워서다. 대편성인데다 고난도의 연주 실력이 필요하다. 관악기든 현악기든 모두 연주가 까다롭다. 고음을 연발하는 트럼펫과 호른 주자들의 솜씨가 특히 중요하다. 악장의 정교한 바이올린 연주도 관건이다.
‘가정교향곡’의 어려움은 한국의 상황과 오버랩된다. 얼마 전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한 외국인이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하면서 머리를 감싸 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인 조앤 윌리엄스가 한국의 합계 출산율 0.78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가정의 탄생, 어렵지만 국가의 존망이 달린 문제다. 좋은 지휘자가 훈련시킨 앙상블 같은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음악회 무대에도 출산율에도 ‘가정교향곡’이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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