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그림자 금융’ 부실…‘셀다운’ 주의보
“장부서 부동산 털어라” 기관 엑소더스
중순위 ‘악성 셀다운’ 개인 ‘큰손’에게
최근 수년간 이어진 저금리 국면에서 우리 금융사는 국내외 대체투자를 빠른 속도로 늘려왔다. 주로 초대형 IB를 중심으로 부동산 금융 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대형 증권사는 자기자본 규모를 잔뜩 키워 국내외 부동산을 쇼핑하듯 쓸어 담았다. 자기자본 규모가 커진 만큼 당장 재무건전성 우려가 두드러지진 않지만 금리 급등과 부동산 침체로 시간이 갈수록 잠재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부동산 자산을 또 다른 투자자에게 되파는 ‘셀다운(Sell Down·인수 후 재매각)’을 거치면서 기관 투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실 대응 능력이 취약한 개인 투자자에게 관련 위험이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부동산 자산은 공모보다는 사모 형태로 고도의 구조화 금융 기법을 거쳐 판매되므로 정확한 부실 규모를 관리, 추적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점에서 ‘그림자 금융’이라고도 불린다. 국내외 부동산 셀다운 관련 위험성과 부실 확산 메커니즘을 집중 분석한 배경이다.
사정이 이렇자 금융권에서는 ‘셀다운’ 러시가 펼쳐지고 있다.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비유동성 자산이므로, 이를 매입한 금융사는 자산을 유동화시켜 채권과 지분을 펀드나 국내 기관, 개인 투자자 등에 되판다. 특히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부동산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자 기관 투자자가 등 돌린 중순위(메자닌) ‘악성 셀다운’ 물량은 리테일 창구를 경유해 개인 투자자에게 팔려 간다. 금융사가 떠안았어야 할 부실 위험이 개인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셀다운’ 상품이 우리 금융 시스템 곳곳에 퍼져 있다. 셀다운에서 파생되는 부동산 금융 리스크를 집중 분석한다.
쌓여가는 셀다운 미매각
해외만 6조원 육박
대체투자업계에 따르면, 셀다운은 크게 두 가지 행태를 보인다.
첫째, 자체 북(Book·자금운용한도)에 잠시 편입한 후 대출채권을 유동화해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 등 트렌치 상품으로 재매각·재판매하는 경우다. 둘째, 자체 북에 편입하지 않았더라도 적격 전문 투자자를 모아 사모대출채권을 재판매하는 ‘리테일 셀다운’이다. 대체투자업계에서는 대체로 두 가지 경우에 속하는 경우를 ‘셀다운’이라는 용어로 통칭한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셀다운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대부분 증권사는 자기자본을 활용한 선순위·지분 투자보다는 잠시 자체 북에 편입했다가 이를 다시 되파는 셀다운 목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KB증권은 대체투자 관련 셀다운 전담 조직인 ‘대체신디팀’도 신설했다. 초대형 IB 관계자는 “올 초부터 셀다운 기간을 최대한 줄이라는 것이 경영진이 내린 특명”이라며 “자산을 특성별로 구분해 셀다운 처리에 차질이 없도록 각별히 관리 중”이라고 전했다.
첫째는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에 되파는 셀다운이다. 주로 투자 규모가 조 단위에 달하는 해외 주요 상업지구 오피스빌딩 투자가 이런 경우다. 규모가 워낙 커 연기금, 공제회를 비롯한 기관 투자자들이 셀다운 물량을 주로 받아 간다. 둘째는 리테일 셀다운이다. 주로 국내 부동산 PF 관련 사모대출채권이 리테일 셀다운으로 팔려 나간다.
두 가지 유형 가운데 규모가 두드러지는 쪽은 해외 부동산 셀다운이다. 해외 셀다운에 묶인 증권사 자금은 지난해 말 기준 6조원 정도다. 금융감독원이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증권사가 셀다운 목적으로 투자한 뒤 매각하지 못하고 보유하고 있는 미매각분 잔액은 5조9398억원으로, 전체 해외 대체투자 잔액의 약 25%로 나타났다. 절대 규모 자체는 2020년(6조7914억원), 2021년(6조4032억원)보다는 줄었다. 이는 부동산 부실을 우려한 금융권에서 보유 자산을 일정 수준 할인해서라도 셀다운 물량 털어내기에 적극 나선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남은 잔액이 6조원에 달하고 셀다운 목적의 신규 투자는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 한 해 셀다운 목적 신규 투자는 1조9258억원으로 2조원에 육박했다. 이는 2021년 한 해 1조5871억원보다 20%가량 늘어난 것이다.
셀다운 ‘모럴 해저드’ 논란
추적, 관리 힘들어
셀다운 관련 리스크는 크게 세 가지가 지목된다.
첫째, 셀다운 미매각분을 떠안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악화다. 자체 북에 잠시 편입한 부동산 자산을 외부 투자자에게 되팔지 못하면 이는 고스란히 증권사의 잠재 부실로 전락할 수 있다.
가령, 기관 투자자 대상으로 셀다운에 실패한 부동산 자산은 증권사가 만기 보유 후 매각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 보유 기간 동안 거시경제 여건이 개선돼 부동산 자산 가치가 회복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만기를 연장하는 과정에서 금리가 급등하고 자칫 현금흐름이 부채비용을 커버하지 못하는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이는 상각·대손충당금 확충 등 금융사의 재무건전성 우려로 이어진다. 매우 낮은 가능성이지만, 셀다운 실패 사례가 확산하고 금융사가 줄줄이 관련 자산을 떠안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수 있다.
특히 국내 금융사가 투자한 해외 부동산은 선순위보다는 중순위(메자닌) 등급 대출채권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체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들은 가급적 억지로라도 만기를 연장하려 하지만, 해외 금융사는 IRR(내부수익률)을 방어하기 위해 손실을 선제적으로 줄이는 의사 결정을 선호한다”며 “중순위는 선순위 투자자보다 의사 결정 협상력이 떨어지다 보니 저금리 때 투자했던 메자닌이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돌아봤다.
두 번째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가능성이다. 고금리 충격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금융사는 서둘러 셀다운 미매각 물량을 털어내야 하지만 기관 투자자 눈높이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관 투자자가 등을 돌린 셀다운 미매각분 일부는 강남권 광역지점 PB 등을 통해 ‘사실상 확정금리’로 포장돼 개인 투자자에게 팔리고 있다. 리테일 창구로 판매되는 사모대출채권은 거의 대부분 리스크가 높은 중순위 트렌치다.
국내 운용사의 대체투자 부문 A대표는 “회사 자체 북으로 투자한 부동산 자산이라면 경영진은 해당 부서 직원을 대상으로 셀다운을 서두르라고 압박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셀다운 미매각분을 기관 투자자에게 들고 가면 대부분 ‘갑자기 왜 셀다운을 할까’ 의구심을 갖고 받아 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며 결국 사모 형태로 리테일 창구로 흘러 들어간다”고 털어놨다. A대표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런 판매 행태에는 내심 본사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리테일 시장에 전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정보 비대칭성에 기댄 모럴 해저드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고 털어놨다.
세 번째 리스크는 이렇게 리테일로 풀린 셀다운 자산은 리스크 전염성이 매우 높고 추적,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셀다운에 성공했더라도 리스크를 떠안는 주체가 달라졌을 뿐 부실 우려가 완화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부동산 금융 셀다운은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펀드, 특정금전신탁, 파생결합증권(DLS) 등 고도의 유동화, 구조화 과정을 거쳐 공모가 아닌 사모 형태로 우리 금융 시스템 곳곳에 퍼지기 때문이다.
공적자금 보호 못 받아
금융권에서는 부동산 자산 등 대체투자를 통한 유동성 공급을 ‘그림자 금융(Shadow Bank)’이라고도 부른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그림자 금융은 사모펀드 등 비은행 금융기관이 은행 역할을 대신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 것을 일컫는다. 이때, ‘그림자’는 감독당국에 의해 추적, 관리되지 못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림자 금융은 2007년 잭슨홀 미팅에서 처음 사용됐지만 금융 시장에서 시스템 리스크 요인으로 화두가 됐던 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다. 당시 부실 대출채권에 우량 채권을 섞어 등급별로 나눠 증권화한 CDO가 세계 금융 시장에 위기를 확산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자 그림자 금융이 도마에 올랐다.
부동산 PF 사모대출채권 등 그림자 금융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위기가 현실화했을 때 공적자금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저금리 국면에서는 별문제 없이 리스크 관리가 가능했지만 고금리 국면에서는 하나둘 잠재 부실이 현실화하는 중이다. 특히 부동산 같은 비유동성 자산은 먼저 파는 사람이 가장 적게 손실을 보기 때문에 위기 국면에서 누군가 팔기 시작하면 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담보 자산 가치의 급락으로 이어져 연쇄 디폴트(원리금 지급 불이행) 등 시장 전반의 유동성 손상으로 확산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자 금융당국에서는 부동산 금융 연체율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대출채권 부실 정도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평가할 것을 강조한다. 금융사가 보유한 채권은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로 나뉜다. 금융권에서는 실질적으로 회수 가능성이 극히 낮은 자산을 ‘추정손실’로 분류했음에도 상각(손실 반영) 조치를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회계적 착시’ 효과를 최대한 걷어내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강경한 기조다.
박영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정부가 대주단협약을 지원하고, 캠코에서 정상화지원펀드를 가동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시행사나 시공사, 금융기관 모두 일정 부분 서로 어려움을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위기관리를 해 개선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재=배준희 기자)
“부동산 ‘그림자 금융’ 상시적 추적·관리 이뤄져야”
Q. 정치권에서는 국내외 부동산 투자 리스크를 어떻게 파악하나.
A. 올 1분기 미국은 2011년 이후 처음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은 가격 하락폭이 매우 큰 상황이다.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 문제는 외신에서도 보도가 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아직 국회 정무위원회 등 정치권에서는 해외 부동산 리스크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향후 금융권 부실이 확산하면 정치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Q. 셀다운 미매각분 잔액이 증가했는데.
A. 금융감독원이 지난 2021년 3월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대체투자 리스크 관리 모범규준’을 도입했다. 당장 초점은 이런 기준에 따라 제대로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지다. 금리가 낮았던 2017~2019년에 증권사의 해외 대체투자가 급증했다. 최근 문제가 되는 해외 부동산도 대부분 그 당시에 매입된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셀다운 미매각분 잔액은 6조원가량인데, 이는 상당한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무리한 투자를 막기 위해서는 증권사 내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하며 금융당국의 상시 점검도 중요하다. 금융연구원도 “증권사가 셀다운을 염두에 두고 감내 가능한 수준보다 큰 금액의 자산을 인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Q. 부동산 금융 같은 ‘그림자 금융’은 추적, 관리가 까다롭다.
A. 금융감독원의 대체투자 리스크 관리 모범규준에는 ‘부동산 그림자 금융 DB(Database) 구축·관리’도 포함돼 있다. DB를 구축해 관련 통계를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하고, 감독당국은 상시적 관리, 감독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Q. 금융사와 당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A. 아직 신용평가사들은 현 상황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해외 대체투자 부실 위험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높은 증권사들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관련 리스크가 커지면, 이에 비례해 금융기관은 그에 따른 충당금을 쌓는 등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 금융당국이 증권업계를 대상으로 대손충당금을 더 쌓으라고 요구했는데, 적절한 조치로 본다. 금융감독원이 셀다운 리스크를 적극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점 역시 거듭 강조한다.
(인터뷰=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4호 (2023.08.30~2023.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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