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100주년... "일본 시민사회도 나서는데 한국 왜 침묵하나"

심규상 2023. 8. 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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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출간... "한국사회 100년의 잠에서 깨어나야"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숨진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책이 출간됐다. 민병래 작가가 쓴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출판사 원더박스)다.
ⓒ 원더박스
 
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숨진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책이 출간됐다. 민병래 작가가 쓴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출판사 원더박스)다.

100년 전인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44초. 일본 간토 지역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10만 명, 행방불명자도 4만이 넘었다. 주택 45만 채가 불탔고 이재민은 340만 명에 달했다. 여기까지가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다.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일본정부는 계엄령을 발동했다. 그런데 계엄령 발동 이유가 '조선인 습격설'이었다. 조선인들이 지진을 틈타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탄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렸고, 수백만의 이재민이 반정부 투쟁에 나설 것을 우려한 일본정부가 '조선인 폭동설' 등을 내세워 군대를 출동시켰다.

군대는 이재민 구호나 시설 복구가 아닌 조선인 공격에 나섰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 민중은 자경단(재향군인회)을 만들어 조선인 사냥에 나섰고 경찰이 합세했다.
   
"계엄군은 조선인을 참살했다... 조선인 부인들의 발을 잡아당겨 가랑이를 찢었으며 혹은 철삿줄로 목을 묶어 연못에 던져 넣었다. 일본군은 조선인인 시체 위로 차를 몰게 했다. 자경단은 칼과 죽창, 갈고리를 휘두르며 조선인을 마구 죽였다.

일본정부는 유언비어를 만들고 퍼트리는 데 핵심역할을 했고, 조선인학살은 자경단원의 한 일이라며 책임을 비껴갔다. 오죽하면 주일미국대사조차 '무시무시한 대학살이 대낮에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세계에서도 가장 야만스러운 정부다'라고 했을까" (본문 중에서)

재난 피해와 무관하게 이렇게 참살된 조선인만 6661명에 달했다. 일본은 100년이 된 지금까지 사죄와 배상을 커녕 진상규명조차 거부하고 있다. 

민병래 작가는 이 책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간토의 진상을 찾아 알리는 일에 힘쓴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강덕상(재일사학자), 니시자키 마사오(시민운동가), 오충공 다큐멘터리 감독, 야모모토 스미코, 김종수, 사토 나오키, 이이야마 유키, 천승환 그리고 칸토 유가족들이다.

민 작가는 강덕상 재일사학자에 대해 '한평생 간토의 진실을 연구해 학문으로 일본국가를 인류의 법정,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공소장을 썼다'고 소개했다. 실제 그는 사건의 진상은 물론 갑오농민전쟁과 의병 전쟁, 간도 참변, 3.1운동에서 조선을 탄압한 자들이 참살 당시 일본 내각과 군부의 주요자리를 차지해 주도한 점도 밝혀냈다.
 
"강덕상은 간토 조선인 대학살의 뿌리를 규명했다. 조선인에 대한 몰살선언으로, 조선의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적개감에서 비롯된 식민지 전쟁으로,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전쟁, 경신 간도 참변과 3.1운동의 뒤를 잇는 학살사건으로 바라보았다. 강덕상이 연구로 내놓은 결론이다." (본문 중에서)

민 작가는 나시자키 마사오 시민운동가는 '조선인 유골을 발굴하는 모임에 참여한 이래 40여 년 동안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분투'한 사람으로, 오충공 감독은 '간토의 비극을 다른 <감춰진 손톱자국>과 <불하된 조선인> 작품을 통해 간토의 비극을 알린 인물'로, 야마모토 스미코는 '조선인 차별 문제를 깨닫고 이를 고치기 위해, 학살 실태를 알리기 위해 일생을 애써온 사람'이라며 이들의 삶으로 안내하고 있다. 

또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다크투어 안내서를 부록으로 실었다. 특히 지도 링크의 큐알(QR)코드를 첨부해 누구나 찾아 갈 수 있도록 했다. 

"간토 조선인 대학살은 극우로 향하는 일본의 급소"
 
 우시고메카구라자카 경찰서에서 압수한 자경단의 흉기들. 자경단은 일본도, 쇠갈고리가 달린 소방용구, 죽창 등으로 조선인을 무참히 학살했다.
ⓒ 민족문제연구소제공
  
300쪽 가까운 글을 통해 민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의 머리 글에 실려있다.

민 작가는 "일본은 3대 안보문서 개정과 방위비 증액으로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가는 나쁜 결정을 하고 대놓고 과거사를 부정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토 조선인 대학살은 극우로 향하는 일본의 급소가 아닐까" 반문했다. 그는 "일본 시민사회는 각 지역에 20여 기의 추도비를 세운 반면 우리 땅 어디에도 추도물이 하나도 없다"며 "일본이 나쁜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사회가 100년의 잠에서 깨어나 간토대학살 문제를 끌어 안아야 한다"고 썼다.

김성재 목사(일본기독교협의회 총간사)는 추천글을 통해 "이 책은 지금 왜 '간토대학살'을 기억해야 하는지, 왜 마주 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우고 있다"며 "100주기를 맞아 한일이 평화와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만나야 할 책"이라고 강조했다.

민 작가는 1998년부터 한글을 모르는 노인과 이주민을 상대로 문해교실과 다문화도서관을 운영하는 시민단체 '푸른'의 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는 <오마이뉴스>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호암미술관에 있는 아름다운우리 문화재>, <민병래의 사수만보>, <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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