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킹 목사 연설… 흑인 혐오범죄로 또 3명 희생

킹 목사 "나에겐 꿈이 있다" 연설 60주년 당일
플로리다주 가게서 총기난사... "흑인 혐오"
범인은 20대 백인 남성... 현장서 극단적 선택

26일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달러 제너럴 매장. ⓒ AFP/연합뉴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인종차별 철폐를 외치며 주도했던 '워싱턴 행진' 6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날에 '흑인 혐오범죄'로 또 고귀한 생명들이 희생됐다.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총격난사 사건이 발생해 흑인 3명이 숨지고 용의자인 20대 백인 남성도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로이터·AP통신 등에 따르면 총기난사 사건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오후 2시쯤 잭슨빌의 ‘미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달러 제너럴’ 매장에서 20대 백인 남성이 총격을 가해 흑인 남성 2명과 흑인 여성 1명이 사망했다. 용의자도 범행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총기난사를 인종 혐오에 따른 범죄로 판단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총격난사범이 사용한 총기는 나치문양 ‘스와스티카’(하켄크로이츠·갈고리십자가)로 추정되는 그림이 새겨진 ‘AR-15’ 스타일의 소총, 글록 권총 등이었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AR-15는 총격 사건에서 자주 사용되는 경량의 반자동 소총이다.

용의자는 범행 당시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다. T.K. 워터스 잭슨빌 보안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총격은 인종과 관련한 동기에서 발생했다”며 “그는 흑인들을 증오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범행에 나서기 전 언론과 부모, 사법당국을 상대로 흑인에 대한 증오심을 상세히 써 내려간 여러 성명서를 작성해둔 것으로 조사됐다.

워터스 보안관은 다만 “총기난사범이 큰 단체에 속해있었다는 정황은 없다”며 이번 사건이 워터스의 단독 범행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6일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 링컨기념관 앞에서 열린 '워싱턴 행진' 60주년 기념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시민 수천 명이 모여 있다. ⓒ AP/연합뉴스

총기난사범은 인근 클레이 카운티에서 차를 몰고왔으며, 범행 현장으로 가기 전 인근 흑인 명문대로 꼽히는 에드워드 워터스 대학 교정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이날 총격으로 대학가에는 외출 자제령이 내려졌고, 학생들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같은 날 워싱턴 링컨기념관에는 '워싱턴 행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민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킹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당시 25만 명 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을 통해 인종차별 철폐의 불씨를 댕긴 곳이다.

이날 연사로 나선 킹 목사의 장남 마틴 루서 킹 3세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우리나라가 나아가는 방향이 매우 우려된다"고 현실을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