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시한폭탄’ 대동맥류, 고위험자도 수술 대신 스텐트로
증상 없는데 터지면 급사 가능성
가슴·배 열어 인조 혈관 교체하지만
복합질환 있는 고령환자엔 위험
새 스텐트 삽입술로 치료 가능해져
‘몸 속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혈관 질환이 있다.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가장 큰 혈관인 대동맥이 풍선처럼 늘어나 점차 커지는 ‘대동맥류’다. 평소 증상이 거의 없어 모르고 지내다가 갑자기 터지면 급사할 위험이 높아 붙여진 별칭이다.
횡경막을 기준으로 위쪽의 흉부 대동맥류와 아래쪽 배 속에 생기는 복부 대동맥류, 두 부위에 걸쳐 있는 흉복부 대동맥류로 나뉜다. 대동맥류의 60~70%는 배에서 발생하며 흉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대동맥말초혈관센터장인 박순철 혈관·이식외과 교수는 28일 “집에서 복부 대동맥류가 파열되면 목숨을 잃을 확률이 90%, 살아서 응급실에 오더라도 사망률은 50%, 응급 수술을 받으면 30%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인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터지기 전에는 수술 후 사망률이 1~3%에 그친다. 파열되기 전에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상 대동맥의 직경은 3㎝ 미만이고, 3㎝를 넘으면 대동맥류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정상 혈관의 1.5배 이상 커질 경우 진단된다. 대동맥 직경이 5㎝ 이상 되면 파열 위험이 높아진다. 박 교수는 “대동맥이 5㎝로 커지면 1년 내 터질 확률이 10%, 6~7㎝면 20%, 8㎝를 넘을 땐 50% 이상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흉부의 경우 직경 5.5㎝, 복부는 5㎝를 넘으면 발견 즉시 수술이나 시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 시 건강보험 적용 기준도 직경 5㎝ 이상이다.
대동맥류의 가장 큰 원인은 고령이다. 나이들수록 혈관도 노화돼 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동맥류 환자는 2011년 1만3942명에서 2021년 3만3553명으로 2.4배 증가했다. 전체 환자의 65% 정도가 65세 이상이고 70~80대가 주로 차지한다. 고령 외에 고혈압과 동맥경화증, 남자, 흡연, 감염, 가족력 등도 위험 요인이다.
대동맥류는 어디든 생길 수 있지만, 주로 대동맥에서 각종 장기로 혈액을 공급하는 분지 혈관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흉부 대동맥에는 뇌나 팔로 가는 것 외에 분지 혈관이 별로 없다. 반면 복부 대동맥에는 간, 비장, 위, 소·대장, 콩팥 등으로 가는 혈관이 많으며 이런 분지 혈관에 대동맥류가 생기면 치료가 매우 어렵다.
대동맥류 치료법에는 가슴이나 배를 열어서(개흉·개복 수술) 병변 부위를 인조 혈관으로 교체하거나 절개하지 않고 혈관 안에 ‘스텐트(금속망) 그라프트’라는 기구를 넣어 대동맥 박리·파열로 인해 혈류가 새지 않도록 막는 ‘혈관 내 시술’이 있다.
박 교수는 “대동맥류는 고령자에게 주로 발생하고 허혈성 심장질환, 만성폐질환, 간질환, 신부전 등 동반 질병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수술을 받으면 사망 위험이 높다”며 “혈관 내 스텐트 시술은 이런 고령의 동반 질환자에서도 비교적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어 근래 국내에서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고 했다. 복부와 흉복부 대동맥류의 50~70%에서 혈관 내 치료가 이뤄지고 있는 걸로 보고돼 있다.
최근에는 수술이 어려운 복합 질환을 가진 고령 환자 등 고위험 대동맥류 환자도 스텐트 시술로 치료하는 사례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70대 남성 A씨는 복부 대동맥류로 수년 전 개복 수술받은 전력이 있었다. 이후 여러 내장 혈관(복강동맥, 상장간막동맥, 양측 콩팥동맥)이 분지하는 곳에 다시 대동맥류가 생겼고 심장과 가까운 흉부에도 대동맥류가 동반돼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혈관 내 치료가 어려워 고식적인 수술을 해야 하는데, 배와 가슴을 모두 열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또 흉·복부와 내장 혈관의 병변을 제거하고 모두 인조 혈관으로 바꿔야 해 장시간 수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령의 환자는 심장·콩팥질환을 갖고 있어 장시간 수술 시 회복이 더디고 자칫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의료진은 해외에서 긴급히 들여온 새로운 형태의 ‘t-Branch 스텐트 그라프트’를 갈아끼워넣는 고난이도 시술을 시도했고 3시간만에 무사히 끝냈다. 환자는 시술 후 합병증 없이 빠르게 회복해 현재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시술을 주도한 박 교수는 “t-Branch 스텐트 삽입 치료는 중요한 복강 내 분지 혈관마다 정밀한 시술이 필요하기에 다른 때 보다 훨씬 더 숙련도가 필요하다”며 “향후 수술이 힘든 고위험 대동맥류도 개흉·개복에 따른 부담없이 환자 맞춤형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국내 처음 시행된 이 스텐트 시술은 현재 몇몇 의료기관에서 10여건 시행됐으며 시술 가능한 의사도 10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스텐트는 필요 시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의 ‘희소-긴급 도입 의료기기’로 신청해야 사용 가능하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진짜 밉상” 주호민 아들 녹음파일, 법정서 전체 공개
- 정유정 “계획 범죄 아니다” 주장…재판 비공개 요청도
- 남녀공용화장실 옆칸 ‘수상한 남성’…물증 없어 무죄
- ‘반품→환불→중고 판매’…30대 주부의 1억 사기 수법
- 오염수 비판 ‘자우림’ 김윤아, 악플 테러에 “우와”
- “가을장마 시작” 태풍 3개 한꺼번에…우리나라 영향은
- 또 흉기 사고…“합석 기분 나빠” 영천 주점서 1명 숨져
- “변기소리 시끄러”… 中유학생, 美 윗집 유독물질 테러
- “경찰, ‘연필사건’ 아닌 사건으로 물타기” 교사노조 주장
- 국힘 선대위원장에 한동훈?…나경원 “큰그림 생각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