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 요양원' 우려 목소리 커져...정부 "시장에만 맡기지 않겠다"

남수현 2023. 8. 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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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노인요양시설 임차제도의 도입과 장기요양시장 금융화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남수현 기자


정부가 '임차 요양원' 허용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정책 토론회에서 난립과 영리화에 대한 학계의 우려가 쏟아졌다. 도심지역에 한해 개인이 아닌 비영리법인의 운영만 허용하는 식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제도화까지 적지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는 한국노인복지학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주관으로 ‘노인요양시설 임차제도의 도입과 장기요양시장 금융화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정부가 이른바 ‘임차 요양원’ 설립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사회복지 학자들이 우려를 표하고 나서면서 관련 쟁점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현재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사업자가 토지·건물을 소유해야만 10인 이상의 노인요양시설을 설립할 수 있는데, 보건복지부는 도심 등에 부족한 요양시설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임차만 해도 가능하도록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토론 발제자로 나선 이미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국에서 750여개 요양시설을 운영하다 2012년 갑작스레 폐업한 서던 크로스(Southern Cross) 사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런 사모펀드가 운영하는 시설은 임차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적자 운영을 한다. 재정 압박을 받는 탓에 직원도 제대로 뽑지 못했다”며 “그러는 사이 총 27명의 학대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소유구조 및 관리체계가 복잡해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현재 9인 이하 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의 경우 임차가 허용되는데, 갑자기 시설이 망하거나 전세업자가 도주하면 시설에 있던 분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임차로 운영되는 시설을 (도심 등) 땅값이 비싼 곳에 허용해주겠다는 것이니 임대료가 당연히 비쌀 텐데, 운영에 압박을 느끼고 파산하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요양시장에 금융자본이 들어오는 것의 영향을 분석한 권현정 영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신규 수요를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서 서비스를 생산하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권 교수가 이미 벤처캐피탈(VC), 프랜차이즈 자본이 진출해있는 재가 방문요양기관과 공공·사회복지법인 요양기관의 데이터를 교차사례 분석한 결과, VC 기관은 인건비 지출이 낮아 종사자들의 이직률이 높고, 서비스 평가점수도 가장 낮게 나타났다. 권 교수는 “한 영리기관의 경우 15개 시설을 갖고 있다가 영업 실적이 좋지 않으면 7개를 팔거나 폐업시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등 요양시설 임대허용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노년층을 위한 요양시설 서비스 활성화 방안마련 정책연구 공청회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스1


토론회에서는 요양보호사, 간호사 등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의 우려도 나왔다. 정찬미 전국요양보호사총연합회 공동대표는 “지금도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 사정에 따라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기도 하는데, (임차 요양원이 허용되면) 더 불안정해진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을 옮기게 되면 최소한의 장기근속수당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요양시설의 질이 문제라면 이런 부분에서 요양보호사들의 권리를 보장해 노인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숙랑 중앙대 간호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대규모 사모펀드 회사가 운영하는 요양시설에서 다른 시설에 비해 응급실 방문율, 병원 입원율이 높게 나타났다. 예측하지 못한 증상이나 감염이 발생했을 때 방치했거나 지연된 서비스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며 “이런 연구 결과들이 나온 뒤 미국에서는 규제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규제를 풀어 자본이 들어오면 질적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임차 방식을 허용한다고 해서 해외 사례처럼 영리 자본이 무분별하게 유입될 가능성은 낮으며, 현재 영세한 개인업자 중심인 한국의 노인요양시장에 일정 수준의 규모화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임동민 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장은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 한국처럼 보편화된 요양 서비스 체계는 아니며, 시장에 맡겨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어난 상황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그런 사태를 예방하고 좀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검토되는 내용도 도심 지역, 비영리법인으로 한다는 내용밖에 없으며 그것도 이제 검토를 시작하는 단계”라며 “금융화에 대한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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