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 수도’마저 무너졌다...청년 일자리 초토화된 지방
울산에 사는 취업준비생 A씨는 주요 대기업 채용 홈페이지의 ‘새로고침’ 버튼을 수시로 누르는 것이 일상이다. ‘울산 하면 대기업’이라는 기대 속에 졸업까지 미루고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탈락을 맛봤다. 집 근처에 현대자동차·HD현대중공업·SK이노베이션 같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있지만, 이들 기업은 이미 대규모 정기 공채를 멈춘 지 오래다. A씨는 “어릴 때는 생각도 안 했던 현대차 생산직 공개 채용에도 지원해봤는데 경쟁률은 오히려 더 높았다”며 “지방에는 갈 곳이 없다. 하반기부터는 수도권에 있는 중소·중견기업에도 적극적으로 원서를 낼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도권과 지역 청년 사이 ‘취업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서울·인천·경기는 지난해 지역별 청년고용률 상위권을 싹쓸이했지만,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청년 고용률은 급격히 추락했다. 한때 제조업의 메카로 통했던 부산·울산·경남 지역마저 사실상 청년 고용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수도권·제주, 청년고용률 선두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8일 발표한 ‘2022년 지역별 청년(15∼29세) 고용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하반기 청년고용률 1위를 기록한 지역은 서울과 제주였다. 해당 조사는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 자료를 기초로 했다.
지난해 상반기 청년고용률 1~3위는 모두 수도권 지역이 차지했다. 하반기엔 제주가 52.1%로 선두를 차지했고 인천(51.7%), 서울(50.2%)이 뒤를 이었다. 전국 평균 청년고용률은 46.6%였다.
최근 5년 동안 수도권 지역은 지역별 청년고용률 상위권을 독식했다. 기업 수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많아 청년들에게 제공한 일자리 기회 자체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청년고용률 상위권 지역이었던 제주는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여행‧관광 수요가 다시 살아나면서 지난해 하반기 다시 고용률 선두 자리에 올랐다.
반면 청년실업률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전남(10.3%), 강원(9.5%), 울산(9.4%) 순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반기엔 울산(10.9%), 부산(7.6%), 강원(7.0%)이 실업률 상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산업수도’의 몰락...청년실업률 전국 1위
특히 ‘대한민국 산업 수도’로 불리는 울산의 지난해 하반기 청년실업률은 (10.9%) 전국 평균(5.6%)의 2배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울산의 20대 초반(20~24세) 실업률도 20%에 육박했다. 경총은 “지역 내 청년 최다 취업업종인 조선업이 지난해 실적 부진에 빠지면서 고용의 질이 나빠졌고, 청년층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도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자동차·석유화학·조선 등 주력산업의 성장이 둔화한 데다 지역 청년들이 선호하는 금융·정보통신기술·교육·문화콘텐트 일자리 기반이 부족해 고용 위기가 계속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2020년 울산의 청년인구 순이동률은 -2.7%로 전국 7대 특·광역시 중 인구유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결국 일자리 부족이 역내 인구 감소로 이어져 결국 지방 붕괴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명백한 신호"라고 지적했다.
강원 지역 역시 지난해 상반기 20대 초반 실업률이 전국 평균(8.1%)의 2배를 넘는 17.5%를 기록했다. 지역 내 도소매업과 숙박 및 음식관련 기업 비중이 높아 해외여행 재개에 따른 국내여행 수요가 줄면서 청년실업자가 늘어난 것이란 분석이다.
세종·전북,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비중 평균보다 10%P 이상 높아
비경제활동인구 비중 역시 지방으로 갈수록 높아졌다. 통계청은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실업자로 분류하는데 아예 취업 의사마저 잃거나 별다른 활동이 없는 청년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해 실업률 집계에 포함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산업 기반이 취약한 세종과 전북은 최근 5년 동안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이 평균 60%를 넘어 전국 평균 대비 약 10%포인트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전북 역시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이 지난해 하반기 58%를 넘었다. 전국 평균은 50.8%였다. 이와 관련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지역별로 처한 청년고용 상황이 제각각인 만큼 지역 맞춤형 청년고용 지원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수도권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을 위해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역 청년과 지방 기업 간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가 수도권보다 더 심각하다”며 “지역 내에서 일정 부분 취업 수요가 해결될 수 있도록 취업 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 기업 등을 중점적으로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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