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밭에 나타난 도둑의 변명, 너무 화가 납니다
가족이지만 아주 다른 사람들, 농사 짓는 부모님 vs. 마케터 딸이 함께 농사일 하는 이야기. <기자말>
[최새롬 기자]
6월 말, 드디어 감자를 수확할 때가 왔다. 감자 농사를 오래 해오셨기 때문에 부모님은 일사불란하다. 감자는 크기에 따라 특이나 왕, 상으로 선별하고, 10kg와 20kg 박스로 나간다.
대량으로 매입할 수 있는 수매처가 필요한 양파와 다르게, 감자는 농가에서 바로 판매할 수 있다. 말하자면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상품인 것이다. 양파를 20kg씩 사는 개인은 드물지만, 감자는 몇 박스도 살 수 있다. 그야말로 밭작물의 인기 상품. 가격도 이미 다 정해 놓으셨다.
감자는 어떻게 수확할까? 보통 떠올리기론 아마 호미 같은 도구로 감자를 '캔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농가에서 감자를 캐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과정이 기계화되면서 감자 수확에 새로운 동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턴다'이다.
▲ 감자 수확 중인 모습. 기계가 지나간 뒤. |
ⓒ 최새롬 |
우선 감자 줄기를 뽑고 비닐을 벗긴 고랑에 감자를 턴다. 농가 대부분이 기계를 사용해 감자가 자라는 깊이까지 땅을 훑어 땅의 층위를 뒤집는다.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는 것과 유사하다. 감자를 드러나게 하기.
감자 수확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털린 감자를 발견하고 주워 담는 일이다. 이 기계는 '눈 깜짝할 새'는 아니지만, 사람이 감자를 캐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감자를 '턴다'. 그러나 지형상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사람이 직접 캔다.
기계로 작업하면 몇몇 감자에 상처가 나는 일이 있지만, 감자밭 전체로 따졌을 때는 생각보다 미약한(?) 피해다. 더구나 호미로 감자를 캐는 노동력, 인간의 속도에는 비교할 수 없으므로 이 정도 피해는 감수할 만하다. 감자를 수확할 때 통상 호미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두 손으로 작업하는 것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평수에 대한 감각은 아직도 없지만, 감자밭도 양파밭처럼 600평이다. 양파밭처럼 윗밭 아랫밭 나뉘어 있어, 300평쯤 되는 밭에 저마다 앉아 땅바닥을 깊숙한 곳을 쳐다보고 있다. 밭작물 수확의 기본은 땅 바라보기와 '오리걸음'이다. 농부가 땅을 가까이하지 않고 닿을 수 있는 작물은 하나도 없으며, 그중에서 땅속에 있는 감자는 말할 것도 없다.
기계가 있으니 좀 수월하겠다는 생각은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산이다. 우선 기계의 빠름과 도무지 맞을 생각이 없는 농사의 '박자' 때문이다. 기계는 매우 빠르게 감자를 털 수 있지만,
이것은 햇빛을 봐서는 안 되는 감자의 특성과 충돌한다.
▲ 고랑에 몰아주기 작업 |
ⓒ 최새롬 |
'빠른 기계'는 사람이 담는 '느린 속도'와 한 번 더 충돌한다. 기계의 도입은 감자를 캐는 시간을 크게 단축했지만 기계가 빠르거나 말거나 그 밖의 작업은 여전히 시간을 많이 요구한다. 고루 맞지 않는 삼박자가 덜컹거리면서 감자밭에서 돌아간다.
이렇듯 밭에 있으면 땅 이외의 일은 신경 쓰기 어렵다. 그러다 불현듯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자와 장화를 갖추고 작업복을 입은 이가 저쪽에 있었다. 일하는 분이신가 생각하려던 차, 그는 호미를 들고 있었다. 감자를 담는 사람들은 아무도 호미를 쓰지 않는데, 혼자 호미를 들고 감자를 한 번 훑고 간 옆옆 고랑에 앉아 있는 것이다.
호미를 든 낯선 사람의 등장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왜 남의 밭에 들어와 호미를 들고 있는 것일까? 나는 모르지만 혹시 부모님이 아시는 분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인사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정체에 대해 들은 적이 없으므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묻는다. 그렇게 이상한 문장이 완성됐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조용한 감자밭에 목소리가 울렸다. 부모님을 포함해 밭에 있는 사람들이 그제야 밭에서 뒤를 돌아보기 시작하셨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주저주저하며 뭐라고 했으나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나이가 든 할아버지였다. 설명하기를 꺼리는 것 같았고, 왜 자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인지 의아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감자 밭에서 나가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도둑이다. 남의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다. 그것도 우리가 수확하는 중에 말이다. 더 화가 나는 건 그가 자신을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점이었다. 그는 도둑 같은데도 도망가거나 숨지 않고, 혹은 몰래 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믿고 있으며, 그게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제스처를 보였다. 호미질을 멈추지 않았다. 적반하장이다. 이상한 도둑이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뜸을 들여 그가 대답했다.
"이삭줍기…"
▲ 이삭줍기(The Gleaners), 장 프랑수아 밀레 1857년작, 캔버스에 유채, 83.5×110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중. |
ⓒ 밀레, 오르세 미술관 |
일하던 누나가 저쪽에 서서 모르는 사람과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자, 남동생이 뛰어와 앞을 가로막는다. 다년간의 헬스로 다져진 동생의 두꺼운 팔뚝이 앞을 가린다. 땀에 절은 큰 가슴의 들숨 날숨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 남동생도, 작업복에 챙이 있는 모자까지 쓰고 와서 호미를 들고 있는 상대를 보자 어안이 벙벙해진다.
"지금 수확 중인 밭에서, 이건 너무 하시는 거 아닌가요. 일하고 있는 밭이니 어서 가셔요."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말
그러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주워담은 감자를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섰다. 마치 자기가 지은 노동의 수확물을 가져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리곤 비적비적 자신의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갔다.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밭의 상황은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았지만, 내 쪽에선 전혀 아니었다.
잃어버린 것은 겨우 감자 십수 개 뿐이다. 크게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뭐가 대수인가,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설명하기 어려운 허탈함이 몰려왔다. 이윽고 참시간이 다 되어 또 한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였다.
"어른들 계신 밭에서 어디 큰 소리냐."
엄니와 아부지가 밭이 털리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아서, 밭을 잘 지켜보려고 했던 일로 혼이 났다. 자신을 이삭줍는 사람으로 명명한,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감자도둑'인 사람을 막아보려고 했던 일인데 말이다. 가슴인지 목인지가 답답해졌다.
그런데 왜 저 노인이 아니라 나를 혼내는 건지 의아하기만 했던 어머니의 말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 감자 도둑 이야기는 다음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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