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태블릿 피시가 교실에 불러올 변화, 두렵습니다

서부원 2023. 8. 2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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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스마트 기기 무료 보급에 나선 광주광역시교육청... 관리·감독은 어떻게 하나

[서부원 기자]

 태블릿 피시.
ⓒ unsplash
 
교육청으로부터 아이들 모두가 노트북과 태블릿 피시를 '선물'로 받게 됐다. 이정선 광주광역시 교육감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공약한 대로 스마트 기기의 전면 보급에 나선 것이다. 가정 형편 등에 따른 아이들의 정보 격차를 줄인다는 취지다. 관내 모든 중학생에게는 노트북이, 고등학생에게는 태블릿 피시가 대여 형식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학교마다 개인 정보 수집과 이용, 제3자 제공 동의를 겸한 신청서를 받고 있다. 공공 자산으로 타인에게 양도와 대여, 교환, 판매 등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고의 또는 과실로 고장을 내거나 분실한 경우, 수리 및 구매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항목도 있다. 타 시도로 전출하거나 학업 중단, 졸업 시에는 학교에 반납하도록 하는 규정도 적시했다.

사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개인용 노트북과 태블릿 피시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브랜드가 LG냐 삼성이냐, 아이패드냐 갤럭시 탭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아이폰 사용자라면 아이패드와 애플워치를 마치 기본 옵션처럼 갖추고 있다. 구색을 갖추는 데는 갤럭시 사용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감의 선거 공약이었다는 걸 빼면, 그리 시급하고 절실한 사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피시가 없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만 따로 제공하면 될 일이다. 기실 이는 오래전부터 지속해 온 일인 데다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원격수업이 불가피해지면서 학교마다 보편화한 사업이다.

더욱이 웬만한 학교마다 정보검색실이 갖춰져 있고, 무선 공유기가 교실마다 설치되어 있어서 기존의 스마트폰으로도 웹 기반 수업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태블릿 피시의 경우엔 스마트폰과 화면의 크기만 다를 뿐, 기능에 있어서는 큰 차이도 없다. 투입되는 막대한 세금에 견줘 효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교는 정말 할 일이 없을까 

스마트 기기의 전면 보급과 관리는 일선 학교에 상당한 업무 부담이 될 것이다. 전에 없던 일이어서 업무 부서의 전담 교사든 학년의 담임교사든 누군가는 떠맡아야 한다. 당장 아이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동의서를 수합하는 것부터 무척 번거로운 일이다.

그것만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관리 소홀로 인한 파손과 분실 사고가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리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와 연동되는 무선 이어폰의 경우, 교무실에 단 하루도 분실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 없다. 그나마 담임교사가 스마트폰을 등교할 때 걷어서 하교할 때 분출하니 망정이지, 그러잖으면 스마트폰도 무탈하진 못할 것이다.

일선 학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교육청의 배려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교육청 스스로 스마트 기기의 관리 책임을 담당하겠다고 했다. 분실하면 개별 배상하도록 하고, 파손되거나 고장 난 경우 교육청이 위탁 계약한 서비스센터에서 수리해준다는 복안이다. 학교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서비스센터를 찾아가면 된다고 한다. 곧, 아이들과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 처음 배부하고, 전출과 졸업 등 학적 변동 때 반납받는 것 말고는 학교가 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일례로, 사물함이나 책상 속에 넣어뒀는데 누군가 훔쳐 갔다고 하면 교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에게 동의서를 보여주며 '분실한 사람이 변상하는 게 원칙'이라는 말은 교사로서 차마 못 한다. 교실의 가방까지 뒤져 지갑을 훔치는 사건마저 왕왕 벌어지는데, 담임교사는 매 순간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는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공짜' 태블릿 피시가 몰고 올 고등학교 교실의 어수선한 풍경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차라리 제 것인 양 집에 두고 오면 큰 문제는 없을 테지만, 만약 대여 형식일지언정 태블릿 피시가 한 대씩 생기는 걸 아이들이 일과 중에 사용해도 된다는 교육청의 승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낭패다. 동의서를 받기도 전인데, "스마트폰은 안 되고 태블릿 피시는 허용되는 거냐"고 묻는 아이가 나오고 있다.

현재 대다수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일과 중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수업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때까지도 통제하는 학교가 드물지 않다. 일과 중 스마트폰의 무분별한 사용이 가져온 폐해가 극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활용한 수업이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교사도 적지 않다.

교사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한 아이들의 자발적인 통제를 기대하는 건 경험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엄격한 처벌 조항을 마련해도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된 갈등은 되레 늘어만 간다. 압수라도 할라치면 대들기 일쑤고, 학부모까지 나서서 항의하기도 한다. 들켰을 때를 대비해 '공기계'를 한두 개 더 챙겨오는 아이들도 많다.

수업 중 몰래 음악을 듣는 건 차라리 애교다. SNS를 접속한 뒤 종일 친구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아이도 있다. 교과서 아래에 스마트폰을 감춰놓고 소리를 죽인 다음 게임을 즐기는 경우도 흔하다. 드물게는 수업 내용을 녹음하거나 교사가 수업하는 장면을 '도촬'하는 되바라진 아이도 있다. 시나브로 교사도 어찌 손써볼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자신과 한 몸이다. 수업 시간이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강제로라도 분리해놓지 않으면, 수업은 물론, 학교생활 자체가 엉망이 된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교실을 일순간에 조용하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아이들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준 뒤 SNS나 게임을 해도 좋다고 허락하면 교실은 단숨에 적막강산으로 변한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지 않을 교육청이 무언가에 쫓기듯 황급히 태블릿 피시의 전면 보급에 나서는 걸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보급은 교육청이 하고, 활용은 학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면, 스마트폰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다. 등교하면 학급별로 수합하고, 필요할 때 꺼내 사용했다가 하교할 때 분출하는 방식 말이다. 그러자면, 학급별로 수십 대의 태블릿 피시를 한꺼번에 보관할 수 있는 큼지막한 가방이나 캐비닛이 필요할 테다. 대체 이게 뭐 하자는 짓인가.

'물음표'만 찍히는 사업... 거둬들여야 
 
 교실.
ⓒ 픽사베이
 
설마 태블릿 피시가 전면 보급되면 어떻게든 자주 활용하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수업 개선이 이루어질 거라고 여긴 걸까. 이는 순진한 생각이며 허무맹랑한 기대다. 학교와 아이들에게 스마트 기기가 없거나 부족해서 수업 방식이 변하지 않은 게 아니다. 현행 대입 제도 아래에서는 굳이 수업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도 답답해 교육청의 사업 추진 부서에 부러 전화를 걸어 여쭤봤다. 관내 모든 중고등학교와 아이들 개개인에게 노트북과 태블릿 피시만 보급하면, 진정 정보 활용 능력이 향상되고, 정보 격차가 줄어들며, 교실 수업 개선이 이루어질 거라고 여기시는지를. 그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정작 정책 담당자로서의 당신의 생각은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선거 공약이라 해도 실현하기 위해선 우선순위를 매기고 시의적절한 때를 살펴야 한다. 주변 여건과 상황이 변하거나 공약의 허점이 발견되면, 그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판단력과 순발력이 필요한 법이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선 교사들에게 설득력 있는 설명조차 내놓지 못하는 사업이라면 거둬들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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