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훈부 "홍범도·여운형 중복훈장 재정비…상훈법 어긋나"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가 홍범도(1868~1943) 장군·여운형(1886~1947) 선생에 중복으로 서훈된 건국훈장 재정비에 나선다.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을 거듭 수여하지 않는다’는 상훈법 4조에 어긋나고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취지다.
보훈부 고위 관계자는 28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건국훈장은 국민적 합의에 따른 체계와 기준을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며 “두 독립유공자를 격하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다른 독립유공자와 형평성을 맞추고 과거의 잘못된 절차를 바로 잡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를 열어 논의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상훈법 11조)하는 훈장이다.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은 역대 33명이 받았다. 이어 대통령장(2급, 90명)·독립장(3급, 822명)·애국장(4급, 4487명)·애족장(5급, 6278명)이 있다.
총 1만1710명 중 중복 수훈자는 홍범도 장군·여운형 선생을 비롯해 유관순(1902~1920) 열사까지 3명이다. 유관순 열사는 1962년 받은 독립장이 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 여야 정치인의 요구와 국민 청원 등으로 대한민국장이 추가됐다. 보훈부 관계자는 “국민적 합의로 추서된 유관순 열사와 달리, 홍범도 장군·여운형 선생은 정당한 절차를 건너뛰고 일방적으로 추서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1920)를 이끈 홍범도 장군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62년에 처음 대통령장을 받았다. 공적란엔 ‘만주에서 독립군 지도자 김좌진 장군과 호응하여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고 적혔다. 그런데 2021년 문재인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송환한 것을 계기로 기존 훈장보다 높은 대한민국장을 또 추서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으로 국민통합 및 민족정기 선양, 한국과 카자흐스탄 간의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적’을 서훈 이유로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항일무장투쟁은 이미 1962년 서훈 때 포함된 공적”이라며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과의 우호 증진이 대한민국 건국훈장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인 여운형 선생은 노무현 정부 때 두번의 훈장을 받았다. 조선인민당 창당 등 전력으로 그간 훈장을 받지 못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좌우대립의 역사 때문에 묻어둔 역사를 발굴하고 포상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뤄졌다. 보훈처(보훈부 전신)는 3차례 격론 끝에 2005년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공적엔 ‘신한청년당 지도자로서 파리강화회의(1919)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을 닷새 앞두고 열린 마지막 국무회의(2008년 2월 19일)에서 여운형 선생에게 대한민국장 추가 서훈을 의결했다. 당시 청와대는 이를 밝히지 않았는데, 2010년에서야 알려져 ‘밀실 행정’이란 비판이 있었다. 독립유공자 추천 주무부처인 보훈처가 아닌 행정안전부 추천으로 국무회의에 올라갔다는 점도 의문이었다.
또 ‘해방 이후에도 대한민국 건국 및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이라고만 적힌 공적도 독립 유공의 개념을 벗어난다는 지적이다. 독립유공자예우법은 독립유공자를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애국지사) 또는 항거로 순국한 자(순국선열)”(4조)로 규정한다.
보훈부는 향후 중복 서훈을 막기 위해 훈격(勳格) 조정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공적을 재평가해야할 경우, 추가 서훈을 하는 대신 아예 등급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박민식 장관이 지난 3월 ‘독립운동 훈격 국민 공감위원회’를 설치한 건 그 예비 단계다. 현재 국회에서도 기존 훈장의 종류와 등급을 변경할 수 있게 하는 상훈법 개정안(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돼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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