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신선식품 고를 때 이러지 맙시다

도희선 2023. 8. 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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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고르는 것은 필요하지만 예의는 지켰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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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선 기자]

늦더위로 아스팔트의 열기가 내 몸 구석구석을 불태운다. 이러다 그림자마저 진득하게 녹아내릴 것 같다. 한낮의 점령군 태양을 피해 서둘러 볼일을 끝내고 장을 보러 갔다.

생선과 두부, 계란, 우유 정도면 충분했다. 텃밭 채소 덕분에 장 볼 일이 줄었다. 텃밭이 작은 채소 가게다. 오이, 가지, 호박, 고추, 깻잎, 상추, 부추가 제철이다. 요리법만 달리하면 날마다 밥상이 풍성하다. 작물을 가꾸고 풀을 뽑는 일은 수고스럽지만 결실은 달콤하고 뿌듯하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발길은 생선판매대로 향했다. 생선구이가 먹고 싶었다. 조기를 살까 하다 빨간 고기가 눈에 뜨였다. 빨간 고기는 몸 전체가 선홍빛으로 머리의 절반을 눈이 차지한다. 동그란 눈이 마치 만화영화 캐릭터 같다. 살이 도톰하고 구워 먹으면 담백해서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다.
 
▲ 빨간고기 적어 또는 눈볼대라고 불리는 생선
ⓒ 도희선
 
손질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생선을 구경했다. 갈치가 싱싱해 보였다. 텃밭에서 따 놓은 애호박이 생각났다. 찌개를 끓이면 좋을 것 같아 커다란 갈치 한 마리를 주문했다. 옆에서 목청 좋은 직원이 "물 좋은 오징어를 싸게 팔아요"라고 외쳤다. 얼떨결에 또 "주세요"라고 해 버렸다. 냉동실에 넣어 두면 비 오는 날 전 부칠 때 유용하다. 어느새 손에는 생선을 담은 비닐봉지 세 개가 들려 있었다.
  
돌아서 나오는 데 생선 판매대 옆에 전복이 놓여 있었다. 흘깃 보니 제법 씨알이 굵어 아기 손바닥만 해 보였다. 한 팩에 예닐곱 마리나 되는 것이 버터 넣고 구우면 좋을 것 같았다. 다른 손님이 고르고 있어 뒤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오래 걸렸다.
 
▲ 전복 마트에서 판매하는 전복
ⓒ 도희선
 
가만 보니 그 손님은 스무 개가 넘는 전복이 담긴 팩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찔러보고 있었다. 바닥에 있는 것을 눌러보고, 어떤 것은 팩을 들어 올려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찔러 대고 있었다. 손가락 공격에 살아 있는 애들마저 기절할 것 같았다.

공산품을 제외한 생선, 육류, 과일 같은 제품은 손이 많이 닿을수록 신선도가 떨어진다. 같은 날 같은 시간 매대에 진열된 상품이다. 어차피 계량해서 담아 둔 물건이니 양도 신선도도 큰 차이가 있을 리 없다. 마치 내가 그 손님과 같은 행동을 한 것처럼 민망했다. 전복을 사겠다는 마음은 이미 십리 밖으로 달아났고 직원이 보기 전에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샐러드에 넣을 토마토를 사러 갔을 때다. 중년의 여성분이 토마토를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대를 가로막고 서서 미스 토마토 심사라도 하듯 일일이 들어 올려 이리 오너라 싱싱한가 보자, 저리 가거라 때깔을 보자. 요리조리 보는 것도 모자라 꾹꾹 눌러 대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빠져나온 토마토들은 선택받지 못한 서러움도 모자라 내동댕이 쳐지는 아픔을 겪고 있었다. 순간 '훅' 하고 뜨거운 불덩이가 치솟았다. 하지만 나는 소심쟁이. 마음과는 달리 뱁새눈으로 한번 쏘아보곤 퍼뜩 가까운 곳에 있는 것들로 몇 개 담아 돌아섰다.

내가 감자와 양파를 사고, 파프리카 파는 곳으로 향할 즈음에야 그녀가 저울 위에 토마토 봉지를 내려놓고 있었다. 봉지에는 그녀에게 간택받은 토마토 세 개가 담겨 있었다. 다음으로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내가 서 있는 파프리카 판매대였다. 나는 그녀가 파프리카 면접을 보기 전에 서둘러 골라 담아 발길을 돌렸다. 역시나 파프리카는 그녀의 손끝에서 오랫동안 매만져지고 있었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할 때 잘 살펴보고 고르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야채나 과일, 어패류 등은 사람의 손길이 닿을수록 신선도가 떨어진다. 일반 가게에서 역도선수처럼 들었다 놨다를 계속하면 상점 주인의 제지를 당할 수도 있다.
 
▲ 마트 마트 매대
ⓒ 도희선
 
하지만 대형마트에선 소비자가 직접 물건을 고르고 계량해서 가격표까지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원하는 상품을 마음껏 고를 수 있다. 나 역시 싱싱하고 좋은 물건을 고르고 싶지만 물건을 보는 안목은 부족하고 성격 또한 꼼꼼하지 못해 겨우 흠 없는 물건을 고르는 정도다.

옆에 다른 손님이라도 있으면 손길은 더 바빠진다.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처럼 마트에서 직접 고를 때도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비자 스스로 자신의 품격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예전에 한 방송사 개그프로그램에 '애정남'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애매한 것들을 정해주는 남자'의 약자로 실생활의 애매한 상황의 판단기준을 정해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코너였다. 개그이지만 뛰어난 재치와 유머에 '아' 소리가 절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어느 정도가 적정할까. 애정남에게 묻고 싶다. 마트에서 신선식품 고를 때 어느 선까지 허용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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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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