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오염수 대응 틀렸다는 文…본인은 "日 제소" 큰소리만 쳤다

유지혜, 박현주 2023. 8. 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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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대응을 공개 비판한 가운데 정작 본인이 직접 꺼냈던 ‘국제해양재판소 제소’는 실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대일 협상용 카드로도 활용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소 적극 검토" 지시하더니…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4일 본인의 SNS에 방류 반대 의견을 밝히며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아주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이 매우 클 뿐 아니라, 어민들과 수산업 관련자들의 경제적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글.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원래 본인 재임 시절 불거졌다.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공식 결정한 것은 지난 2021년 4월 13일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이튿날인 4월 14일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일본의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과 관련해 잠정조치를 포함해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적극 검토’ 지시는 사실상 제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법무부, 외교부는 몇 달 뒤 청와대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특히 법무부의 보고서에는 제소할 경우 법률 대리를 맡을 로펌 리스트까지 포함했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에서는 제소 건과 관련해 실무 부처에 아무런 후속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복수의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승소 가능성이나 전략적 손익 등을 따져봤을 때 제소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공식적으로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추가로 관련 내용이 전달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안에 보관돼있는 오염수 탱크. 연합뉴스.


'입증 책임 韓에'…사전검토 안했나


사실 국제해양재판소에 제소할 경우 일본이 충실히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았다거나 해양 환경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을 입증할 책임은 소를 제기하는 한국 쪽에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법률적으로 가능한 선택지이지만, 승소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먼저 ‘일갈’한 뒤 검토까지 해놓고선, 문재인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소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도 않았다. 국민에게 경위는 알리지도 않은 채 말이다. 사전 검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대통령 지시가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사실 검토 결과 불리하다면 제소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당시 제소 검토 지시 자체가 반일 감정에 편승해 이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정부 차원에서 이를 대일 협상에 활용하는 등 전략적 카드로 쓰려는 시도도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소식통은 “제소 카드가 실효성을 지니려면 외교적 협상과 병행해 일본 측을 움직이는 압박용 지렛대로 써야 했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론이 오염수 방류에 분노하자 불쑥 꺼냈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는 것이다. 여기엔 문재인 정부 내내 최저점을 찍은 한·일 관계 악화의 여파도 있었다.

다만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전 정부 관계자는 "일본 측 방류 계획에 맞춰 실제 재작년 말과 지난해 초 사이 제소를 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됐던 것은 사실이었고 오염수 방류 대책 국무조정실 TF 차원에서 이 문제가 검토됐으나 현실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8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회관에서 열린 섬진강 수해 극복 3주년 생명 위령제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뉴스1.


尹 정부서 다시 거론된 제소


오히려 제소 방안은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기준에 안 맞는 방류가 진행되면 국제적으로 제소하도록 외교부가 항상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한국 전문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후쿠시마 현장 사무소에 정기 방문하고, 일본 측으로부터 모니터링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 받게 됐기 때문에 오히려 제소 카드가 실효성이 있을 수 있다. 일본의 위반 행위가 있을 경우 이를 입증할 근거를 확보하기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2021년 4월 당시 오염수 방류 문제를 정치화한 건 정부·여당뿐만이 아니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제국주의적인 오만한 태도”(주호영 당시 국민의 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정부가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재판을 걸고, 중국,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손잡고 국제무대에서 일본 압박 강도를 높여야 한다”(원희룡 당시 제주지사) 등 당시 야당에서도 일본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영옥 기자


국내 정치화 사례 드물어


오염수 방류의 영향을 받는 다른 나라들을 봐도 한국처럼 사안 자체가 정쟁의 소재로 전락한 경우는 드물다. 지난 25일(현지시간) 국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안전하고 투명하며 과학에 기반한 프로세스에 만족한다"고 밝힌 미국에서도 오염수 문제는 정치적 이슈로 부각하지 않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반응도 비교적 차분하다. 필리핀이 "오염수 방류와 영향에 대한 과학과 사실에 기반한 접근을 지속할 것이고, IAEA의 기술적 전문성을 인정한다"(지난 24일,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고 밝힌 정도다.

해류의 흐름에 따라 북미 지역 다음으로 영향을 받을 전망인 태평양 도서국은 의견이 양분됐다. 호주는 "IAEA의 검토 보고서를 신뢰하고 있으며, 일본의 방류 결정 과정도 신뢰한다"고 밝혔다. 쿡 제도, 피지 등은 기존의 반대 입장에서 선회해 일본의 결정을 지지하는 반면, 솔로몬제도, 바누아투 등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를 경계하는 국가 중에서도 IAEA의 권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중국, 북한 정도에 그친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IAEA 보고서에 의문을 표했고, 북한은 IAEA가 “끔찍한 핵 오염수 방류계획을 두둔했다”고 비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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