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비판한 김윤아, 이토록 비난받아야 하나
[하성태 기자]
'RIP(Rest in peace) 지구(地球)'.
밴드 자우림의 보컬인 김윤아가 지난 24일 지구에 애도를 보내는 해시태그와 글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적고 있다. 같은 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을 시작한 것을 두고 개탄하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블레이드러너 + 4년에 영화적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방사능 비가 그치지 않아 빛도 들지 않는 영화 속 LA의 풍경,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 (김윤아 24일 인스타그램 글)
김윤아는 또 같은 날 엑스(X·옛 트위터)에도 "중학교 과학, 물의 순환. 해양 오염의 문제는 생선과 김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국한되지 않는다"라며 "생선을 앞세워 최악의 해양 오염 사태는 반찬 선택 범위의 문제로 한없이 작게 찌그러진다"고 적었다. 이는 오염수 방류 문제를 국내 어민들의 생계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게 너무 통탄하고 한국정부 모두 참담하다. 일본 오염수 퍼지는 것 좀 보세요... 재난영화 따로 없음. 우리가 자연에게 해준 게 뭐있냐 인류멸망 얼마 안 남았다. 바다→ 비 → 해양생태계 뿐 아니라 땅도 오염돼…
지금 바다 생물 못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산소 생산량 중 70~80%를 내주고 있는 게 해조류와 녹색플랑크톤으로 알고 있는데, 얘네 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통해서 쉽게 죽을 수 있는 애들이라(환경에 취약함) 우리 질식사 할 수도 있어.
보수유튜버, 논객이 불지피고 언론이 받아쓰고
▲ 김윤아 JTBC <비긴어게인2>에서 세월호 추모노래 '강'을 부르고 있는 김윤아. |
ⓒ JTBC |
언론이 주목했다. 언론들은 27일 오후 3시까지 35개, 네이버 뉴스 검색 기준 150개에 육박하는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드라마 <모범택시>의 배우 장혁진 또한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소셜 미디어 글을 게재했다 삭제하면서 김윤아와 같이 언급되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 상에선 김윤아의 글을 '선동'으로 치부하는 글들이 눈에 띄게 늘어갔다. 김윤아의 팬을 자처하면서도 김윤아를 공격하는 계정들까지 등장했다. 정부와 여당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여론을 두고 가짜뉴스와 괴담·선동 등으로 규정한 것과 같은 논리라 할 수 있었다.
연예매체뿐 만 아니라 일간지들까지 김윤아의 주장을 기사화하는데 기름을 부은 것은 바로 구독자 147만을 자랑하는 보수 유튜브 채널 '신의 한수'와 전여옥 전 의원이었다. 먼저 '신의 한수'는 지난 25일 라이브 영상에서 일본 외무성에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현재 이들의 반일선동으로 한국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는 한일 양국간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국익을 해치는 인물로 분류될 수 있고, 앞으로 일본 땅을 밟아서는 안 되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우림의 김윤아, 배우 장혁진 이 두 인물에 대해 일본 외무성 차원에서 일본에 대한 영구 입국금지 조치를 위해주시길 바랍니다."
갖가지 이슈에 글을 쓰고, 언론들이 이를 받아쓰는 일종의 스피커나 정치적 사이버렉카 역할에 충실한 전여옥 전 의원은 지난 25일과 26일 '김윤아는 문재인이 롤모델?', '김윤아는 누구 사생팬?'이란 글에서 "일본 먹방러 김윤아와 2023년 후쿠시마 지옥 김윤아는 진짜 같은 사람인가. 제2의 문재인이 목표인지, 제2의 청산규리가 롤모델인지 몹시 궁금하다"고 적었다.
과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거론하는 동시에 과거 광우병 사태 당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 고초를 치렀던 배우 김규리에 김윤아를 빗댄 것이라 할 수 있다.
▲ 24일 오후 1시 30분께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모습. |
ⓒ 교도통신=연합뉴스 |
극우보수 유튜브 채널이 일본 외무성에 영구 입국금지 조치를 요청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그야말로 선동에 가까운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튜버 채널들이 시청자들의 슈퍼챗 후원을 빌미로 구독자들의 입맛에 맞춘 자극적인 주장을 일삼는다는 사실은 유튜버 생태계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그럼에도 일본 외무성에 공개서한을 보냈다며 구독자들을 자극하는 행위는 아티스트 개인에 대한 공격을 뛰어넘는 도 넘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전 전 의원의 경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장 자체도 문제거니와 조회수 장사를 위해 전 전 의원의 주장을 퍼 나르는 기사들을 양산하는 적잖은 매체들의 보도 행태가 더 큰 문제라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논리가 다양하게 퍼진 뒤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나 '일반 누리꾼'들에게까지 깊게 각인된다는 사실이다.
과거 광우병 사태때나 현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사태 모두 개인의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정규 교육을 받은자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상식에 해당한다. 이를 괴담이나 선동으로 규정하고 입에 담지 못할 공격이나 조롱의 표현을 퍼붓는 것 자체가 정치 논리의 희생양을 자처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김윤아도, 국민 그 누구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할 자유를 누려야 마땅하다. 괴담과 선동이 아닌 정당한 주장을 막을 권리는 국가도, 아니 그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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