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의 시련, 마무리는 아직 시기상조였나
[이준목 기자]
▲ 정철원 |
ⓒ 두산 베어스 |
두산의 신임 '클로저' 정철원이 새로운 보직을 부여받은지 불과 2주 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과감하게 정철원의 마무리 전환을 밀어붙인 이승엽 감독의 판단력도, 여름들어 악화된 뒷문 불안에 고전하고있는 두산 베어스의 가을야구에도 동시에 물음표가 붙었다.
두산은 2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SSG 랜더스와의 시즌 11차전에서 5-8로 패배하면서 2연패에 빠졌다. 시즌 성적은 54승 1무 53패(.505)가 됐고, 4연승을 달린 KIA 타이거즈와 순위를 맞바꾸며 6위로 내려앉았다.
두산은 SSG와의 3연전 첫날 곽빈의 호투와 타선의 폭발로 10-1의 대승을 거두며 팀 4연승을 달릴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26일 경기에서 2점 차의 리드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8회 역전을 허용하며 5-7로 패하면서 분위기가 꺾였다.
27일 경기에서는 SSG가 도망가면 두산이 3번이나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10회에 또다시 뒷문이 무너지며 내리 3실점을 내주고 주저앉았다. 어쩌면 가을야구 진출의 고비가 될 수 있었던 시점이었고, 위닝시리즈에서 스윕까지도 가능했던 시리즈였기에 두산으로서는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2연패 동안 믿었던 필승조가 연이어 무너진 것이 패배로 직결됐다. 26일에는 5-3으로 앞선 8회초에 등판한 박치국이 하재훈에게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그라운드 홈런)과 전의산에게 솔로홈런을 잇달아 내주며 단숨에 3실점으로 역전을 헌납했다.
심지어 마무리 정철원은 2경기 연속으로 흔들렸다. 26일 경기에서 정철원은 5-6으로 끌려가던 9회초에 1사 만루의 위기에서 전의산에게 밀어내기 볼넷으로 쐐기점 1점을 헌납했다. 정철원은 결국 마무리임에도 강판되었고 후속 투수인 최원준이 최준우를 병살타로 잡고 이닝을 끝냈지만 이미 상대에게 승기가 넘어간 뒤였다.
그럼에도 이튿날인 27일 이승엽 감독은 5-5 동점 상황이던 연장 10회초 1사 2루 위기에서 김명신에 이어 다시 정철원을 투입하며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정철원은 첫 타자 박성한을 1루수 땅볼로 처리하면서 2사 3루 상황에서 전날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한 전의산에게 좌중간 적시타를 얻어맞아 실점을 허용했다.
정철원은 다음 타자 하재훈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폭투까지 저지르며 2사 2, 3루의 위기에 몰렸다. 그리고 김성현에게 좌전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으며 점수차는 5-8로 벌어졌다. 이어 9번타자인 이흥련까지 볼넷으로 내보내며 위기가 이어지자 이승엽 감독은 끝내 정철원을 마운드에서 강판시키고 김유성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정철원은 이날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3피안타 1볼넷 2실점이라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단순히 구원 실패를 떠나, 밀어내기 볼넷-폭투 등 2경기 연속으로 팀의 주전 마무리 투수로서 가장 최악의 모습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연패 이상으로 두산이 받은 타격은 가볍지 않다.
정철원의 부진이 두드리지기 시작한 것이 마무리 보직 전환 시점부터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 15일 기존의 마무리였던 홍건희에서, 정철원으로의 보직 교체를 단행했다. 정철원은 그동안 홍건희의 앞에 배치되어 셋업맨 역할을 주로 수행해왔다.
정철원은 2018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20순위로 두산에 입단하여, 김태형 전 감독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지난 2022년 처음 풀타임 1군으로 올라서며 필승조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꿰찼다. 정철원은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저돌적으로 뿌리며 데뷔 시즌 최다 홀드(23홀드)라는 대기록을 수립했고 생애 단 한 번 뿐인 신인왕까지 수상했다. 2023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생애 첫 태극마크까지 달며 승승장구했다.
정철원이 언젠가는 두산의 클로저를 맡을만한 재목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 투수에게 다소 일렀던 마무리 전환과, 그것도 시즌 중 갑작스러운 보직 교체가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독이 된 모양새다.
정철원은 전반기까지만 해도 39경기에서 40.2이닝을 소화하며 5승 2세이브, 11홀드, 40⅔이닝, 평균자책점 3.76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8월 들어서는 8경기 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7.00으로 투구내용이 급격히 나빠졌다. 특히 마무리 보직 변경 이후 등판한 최근 5경기에서는 4.2이닝간 평균자책점이 무려 9.64까지 치솟았다.
두 번의 세이브가 있었지만 그다지 안정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특별한 부상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보직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불과 몇 주 만에 철벽 셋업맨에서 배팅볼 투수로 전락했다. 현재 시즌 성적은 49경기 5승 3패 5세이브 11홀드, 자책점 4.35다.
이는 그만큼 마무리가 얼마나 압박감이 크고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는지 보직인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승엽 감독은 정철원의 고전에 "마무리라는 직책이 힘들다. 뒤에 투수가 없으니까. 다음 이닝이 있다고 생각하면 투수들도 마음이 편해진다. 부담감보다는 정철원을 비롯하여 투수들의 컨디션이 대체로 좋지 않다"며 정철원을 감쌌다. 동시에 이승엽 감독이 당장은 정철원의 보직 재교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발언으로도 해석된다.
이승엽 감독의 해명처럼 현재 두산 불펜 투수들의 컨디션이 난조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두산의 8월 팀 불펜 평균자책점은 5.03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정철원 외에도 기존 마무리인 홍건희가 11경기 1패 2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5.59에 그쳤고, 박치국이 12경기 2승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5.11를 기록하는 등 필승조 투수들이 모두 5점대 이상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지금으로서 정철원보다 딱히 더 구위가 좋은 투수도 없고, 2주도 안되어 보직을 또 교체하는게 투수들에게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위험도 있다.
문제는 두산이 현재 가을야구 진출의 최대 고비에 직면해있으며 남은 경기수가 그리 많지않다는 것이다. 두산은 현재 36경기를 남겨두고 있으며 KIA(40경기)-NC(38경기)보다 남은 경기수가 가장 적어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두산이 시즌 한때 11연승을 달리며 5강 경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타선도 타선이지만 마운드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한번쯤 페이스가 떨어질 시기가 찾아올 것은 예상되었지만 하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고비에 찾아왔다는 게 뼈 아프다. 정철원과 필승조 투수들이 스스로 이 고비를 이겨낼 수 있을지, 아니면 이승엽 감독이 또다른 변화를 선택하게 될지 앞으로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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