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한국 위정자에 묻는다, '당신은 세계시민입니까?'

김성훈 2023. 8. 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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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강행한 일본, 아무런 말이 없는 한국을 바라보며

[김성훈 기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기 시작하는 8월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약 5km 떨어진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에서 바라본 해안선의 모습..
ⓒ AFP=연합뉴스
2023년 8월 24일 오후 1시께,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원전 앞바다 해저터널을 통해 방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습니다. '아,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방류를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일본 정부는 오염수 안에 포함된 삼중수소의 농도를 낮춰 방류할 것이며, 이에 따라 오염수가 바닷물로 희석이 돼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해양 생태계에 어떠한 도미노적 파급효과를 줄지, 또한 그 폐해가 곧장 혹은 10년, 100년 이후로까지 어떻게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안전에 대한 대안이 없는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계획에 대해 주변국과 일본 내외부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꾸준히 규탄해 왔지만, 결국 일본 정부의 독단을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같은 시민으로서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장 악영향이 빠를 인접국가인 한국의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동조 혹은 방관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 안전성을 일본 정부를 대신해 선전하는 과도한 친절함을 비추고 있다는 점이에요.

제 주변에는 오염수 방류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고, 당장 수산물을 다루는 상인들과 관련 종사자들은 즉각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죠. 이같은 상황을 바라보며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세계시민교육을 진행해 왔던 이로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위정자들을 향해 질문하게 됩니다. 

'당신은 세계시민입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1980년대 후반부터 교통과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국가들 사이의 상호연계성과 상호의존도는 지속해서 높아져 왔죠.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면서 동시에 이번의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류와 같은 전 세계적인 위험 또한 함께 직면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지구적 문제들은 개별 국가만의 노력으로는 완전히 해소될 수 없기에 첨예한 이해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상의 세계화에 의한 결과로써 기존 민족국가 안에서의 시민과 시민의식에 대한 변화가 절실히 요구됐습니다. 국가간 경계를 넘어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global village)으로 동일하게 인식하며,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수용하며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세계시민(Global Citizenship)으로서의 태도가 현실적으로 필요하게 됐죠.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우리는 모두 필연적으로 '지구적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지구는 편의 상 'OO의 것'으로 제단돼 있지만, 사실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이죠.

물론 이러한 '누구의 것도 아님'의 가치는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말한 '공유지의 비극'과도 같이 황폐화로 귀결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모두가 함께 삼가며 지켜나가야 할 무엇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지구는 '인간의 조건'의 토대로서 배려해야 할 가장 최우선의 공공 공간입니다.

또한 이러한 공공으로서의 지구적 공간은 단순히 '나'와 '현재'에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지구에는 수많은 사람(과 생명들)이 살아왔고,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시민적인 사유를 한다는 것은 그러한 '시간성'까지 함께 고려한다는 뜻이겠지요. 이것이 내 것만은 아니기에 욕심을 내어 하나라도 더 챙겨 가려는 것이 아닌, 이것을 똑같이 사용할 다른 이를 생각해 남겨 두고 배려하는 마음과 같을 것입니다.
 
▲ 지구라는 공공의 공간 지구는 ‘인간의 조건’의 토대로서 배려해야 할 가장 최우선의 공공 공간이다.
ⓒ pixabay
 
제가 학교에 출강해 진행하는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 중에 '공정무역 초콜릿 잇기 게임'이라는 활동이 있습니다. 자율적으로 학급 친구들이 길게 한 줄로 이어서 앞사람과 뒷사람이 한 손만을 사용해 초콜릿을 쪼개어 먹는 일종의 릴레이 게임입니다. 재미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한 개의 초콜릿을 몇 번이나 앞뒤 사람이 위치를 바꿔가며 먹는지 조별로 확인하기도 합니다.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이 게임은 유한 자원에 대한 세대 간의 메시지를 고려한 활동입니다. 당연히 앞줄에 있는 사람이 초콜릿을 많이 떼어먹으면 뒷사람은 그만큼 취할 수 있는 양이 적어지겠죠. 물론 게임 시작 전 학생들에게는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뒤늦게 그 의미를 설명하며 주제를 더 강조해 전하고자 하는 교육 방법론인 셈이죠. 

하지만 그 진의를 숨겼음에도 불구하고 매 활동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몫을 명확히 정해서 다른 친구들과 큰 다툼 없이 초콜릿을 나눠 먹었습니다. 굳이 복잡하게 설정하고 조율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공성에 대한 가치의 소중함과 그 필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사태를 마주하며 엉뚱하지만 문득 한국과 일본의 위정자들도 이같이 학생들과 학급에서 어울러 세계시민교육 활동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정치적 꾀가 아닌, 먼 미래까지 돌볼 수 있는 세계시민적인 책임감이니까요. 

혹시 그들이 학급 방문을 원한다면 저는 평소와 똑같이 질문하고 수업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진정 세계시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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