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치니 얻은 사우디, 클린스만호 첫 승 상대 될까

이준목 2023. 8. 2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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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13일 친선경기... 풍부한 경험 갖춘 만치니, 클린스만호에 위협될 수도

[이준목 기자]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로베르트 만치니 감독이 사우디 아라비아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다. 사우디 아라비아 축구협회는 8월 28일(한국시간) 만치니 감독의 영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4년으로 임기를 모두 채운다면 2027년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만치니는 사우디 축구협회를 통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아 엄청난 영광이다. 아시아 축구의 인기와 위상이 높아지고 있고, 새로운 국가에서 축구를 경험할수 있다는 것이 내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수락했다. 사우디 리그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대표팀의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의미"라는 소감을 밝혔다.

만치니 감독은 유럽 무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현역 시절엔 스트라이커로 이탈리아 볼로냐-삼프도리아-라치오 등에서 활약했고, 특히 대부분의 경력을 보낸 삼프도리아에서는 15년간 566경기에서 171골을 기록하며 구단 최다 출장-최다골 기록, 1989-1990시즌 세리에A 우승, 1996-1997시즌에는 올해의 선수(MVP)까지 수상할만큼 최고의 레전드로 군림했다.

지도자 경력도 화려하다. 라치오-인터밀란-맨체스터 시티-갈라타라사이-제니트 등 유럽 여러 명문클럽들의 지휘봉을 잡았다. 인터밀란에서는 리그 3회 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맨시티에 44년 만의 리그 우승(2011-2012시즌)을 선사하며 팀 전성기의 초석을 닦았다. 2018년부터는 모국인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유로 2020(유럽선수권) 우승과 A매치 37연속 무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이 메이저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15년만이었고, 유로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무려 53년 만의 경사였다. 특히 바로 직전 월드컵에서 예선탈락의 수모를 겪었던 아주리 군단을 3년 만에 우승팀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서사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에 힘입어 만치니 감독은 지난 2021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감독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만치니의 이탈리아는 지난해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하며 천당에서 지옥으로 추락하는 또다른 반전을 맞이했다. 이탈리아는 유럽 예선 C조에서 한 수 아래인 스위스에 밀려 월드컵 직행 티켓이 주어지는 조 1위 자리를 내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당시 피파랭킹 67위에 불과했던 약체 북마케도니아와의 단판 승부에서 0-1로 충격패를 당하는 '팔레르모 참사'가 벌어졌다. 이탈리아는 잔 피에로 벤투라 감독이 이끌었던 2018년 브라질 대회에 이어 '사상 초유의 월드컵 2회 연속 본선 진출 실패'라는 희대의 불명예 신기록을 세웠다.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월드컵 본선진출 실패에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일단 만치니를 유임시켰다. 하지만 위기는 계속되며 유럽 네이션스리그에서 라이벌 독일에 5골을 내주며 대패하고, 약체인 오스트리아에 덜미를 잡히는 등 들쭉날쭉한 행보가 이어졌다. 올해 시작된 유로 2024 지역예선 첫 경기에서는 3년 전 본선 결승전에서 이겼던 잉글랜드에게 경기 내용에서 압도 당한 끝에 1-2로 패하며 또 한번 체면을 구겼다. 만치니 감독을 향한 불신의 여론도 크게 높아졌다.

압박에 시달리던 만치니 감독은 결국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난 8월 13일 돌연 이탈리아 감독직 사임을 발표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지휘봉은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의 전 스승이자 지난해 나폴리의 세리에A 우승을 이끈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이 이어받았다.

만치니 감독은 사임 2주만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커리어로 최초로 아시아 무대에 진출했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외신들이 만치니 감독의 연봉이 약 3000만 유로(약 428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이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연봉 300만유로(약 43억원)를 받던 것의 무려 10배 수준이다.

만치니 감독의 행보가 주목받는 것은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클린스만호'가 만나게될 다음 상대가 바로 사우디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오는 9월 13일 영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친선경기를 가진다. 양팀은 맞대결에 앞서 한국은 웨일스(7일)를, 사우디는 코스타리카(8일)를 각각 먼저 만난다. 한국은 웨일스에서 경기를 치르고 이동하는데 반해 사우디는 뉴캐슬에서 두 경기를 모두 소화한다.

사우디는 중동을 대표하는 전통의 강호다. 월드컵 최고성적은 첫 출전인 1994년 미국 대회에서 기록한 16강이지만 이때부터 8번의 대회중 6번이나 본선에 진출했을만큼 아시아의 월드컵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우승팀인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격침시키는 깜짝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이는 해당 대회에서 아르헨티나가 당한 유일한 패배였다.

또한 사우디는 아시안컵에서는 무려 3회의 우승과 준우승을 각각 기록하며 강력한 면모를 과시했다. 내년 1월 열리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을 노리는 클린스만호에게 있어서도 사우디는 가장 유력한 경쟁자중 하나다.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말레이시아, 요르단, 바레인과 E조에 편성됐고, 사우디는 태국, 키르기스스탄, 오만과 F조에 속했다. 한국이 만일 E조를 2위로 통과하고 사우디가 F조 1위가 되면, 16강에서 조기에 만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역대 사우디와 17번 맞붙어 4승7무6패를 기록 중이며 아시아팀중 열세를 기록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례다.

양 팀의 감독인 만치니와 클린스만은 64년생 동갑이고 모두 현역시절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 세리에A 무대를 누볐고 자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경력도 흡사하다. 다만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는 빅리그와 국가대항전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만치니 감독이 우위에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2006 독일월드컵 3위를 기록한 게 최고 성적이지만 우승 경험은 없고, 클럽팀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초라한 수준이다.

만치니 감독은 이탈리아에서의 마무리가 좋지 못했던 것에 대한 명예회복과 함께, 돈만 보고 사우디를 선택했다는 의구심을 성과로서 반전시켜야 한다. 또한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한국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홈에서 열린 A매치 4경기에서 2무 2패에 그치며 아직 첫승을 거두지 못했다. 이번에는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해외 원정 경기를 치르는데 웨일스와 사우디 모두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만일 웨일스전을 이기지 못한다면 첫 승을 둘러싸고 다음 상대인 사우디전에 대한 압박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만치니처럼 풍부한 경험을 갖춘 명장의 가세는 클린스만호에 상당한 위협이 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잦은 외유와 불성실 근무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으로서는 이번 경기에서 꼭 이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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