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보고 종교 식별돼선 안돼"...'이슬람 드레스' 등교 금한 프랑스
프랑스 정부가 교육과 종교의 분리 원칙인 세속주의 원칙을 내세워 학교에서 이슬람 전통 의상인 '아바야' 착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아바야는 목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느슨한 검정색 통옷이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27일(현지시간) 프랑스 TF1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학교에서 아바야를 입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면서 "다음 달 4일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학교장들에게 교내 아바야 착용 제한에 관한 '국가 차원의 명백한 규칙'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탈 장관은 이어 "세속주의는 학교를 통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데, 아바야는 이런 세속주의를 시험대에 올리는 '종교적인 제스처'"라면서 "교실에서는 학생을 보고 그 종교를 식별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바야는 중동 무슬림이 착용하는 전통적인 민족의상이다. 사막의 직사광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할 수 있고, 여성의 경우 몸매를 최대한 숨길 수 있다. 주로 검은색으로 사우디아라비아·예멘 등에선 여학생들이 많이 입고 등교한다.
앞서 지난 2004년 프랑스는 학교에서 표면적으로 종교적 소속을 보여주는 복장·표식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기독교를 상징하는 큰 십자가, 유대인 키파(모자), 이슬람 머릿수건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정숙한 복장에 대한 이슬람교 신념에 맞춘 길고 헐렁한 옷인 아바야에 대해선 명확한 규칙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몇 달간 학교 내 아바야 착용이 증가하면서 금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계속됐다. 우파 진영에선 아바야 착용 금지를 요구했고, 좌파 진영에서는 시민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며 아바야 착용 금지에 반대했다.
아바야 착용 금지가 결정되자 프랑스 자율노조연맹(UNSA) 전국학교장조합(SNPDEN)의 브뤼노 봅키위츠 사무총장은 "지침이 명확하지 않았는데 이제 명확해졌기에 환영한다"고 밝혔다. 우파 야당인 공화당(LR)의 에릭 시오티 대표도 "우리는 여러 차례 아바야 착용 금지를 촉구했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좌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소속 클레망틴 오탱 하원의원은 정부의 "무슬림에 대한 강박적 거부"로 평가하면서 "이번 결정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내 무슬림 사회를 대표하는 무슬림평의회(CFCM)는 "아바야 등은 복장만으로는 종교적 표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BBC방송·알자지라 등은 아바야 착용 금지가 새로운 갈등이 빚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지난 2010년 프랑스는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의 복장인 부르카와 니캅 등 얼굴을 가리는 복장 착용을 금지했는데, 당시 프랑스내 무슬림 인구 약 500만명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기반한 법이라며 크게 분노했다.
프랑스가 종교색이 강한 복장을 학교와 공공장소에서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독특한 정교분리 전통인 '라이시테(프랑스식 세속주의)' 때문이다. 프랑스 헌법에도 명시된 라이시테는 사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되, 정치 등 공적인 영역에서는 종교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원칙이다.
종교전쟁,드레퓌스 사건 등을 겪은 프랑스는 종교의 정치 개입을 경계하는 전통이 생겼고, 공화정 수립과정에서 헌법에 반영했다. 라이시테는 자유·평등·박애와 함께 프랑스 4대 정신으로 일컬어진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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