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공유자산 기반 공생사회 [마을학 各論]
[정기석 기자]
▲ 가시리 공동목장 서귀포 가시리마을 공동목장 임대부지에 들어선 가시리 풍력발전소 |
ⓒ 정기석 |
고려시대부터 전승된 마을공동목장(조합)은 일제가 축우 수탈을 위해 만든 목축조직이다. 1933년에 읍·면별로 목야지정리계획을 수립해 실행했다. 주로 한라산 자락의 해발 200~600m 중산간 지대에 조성돼 2000년 이후 골프장, 리조트, 휴양단지 등으로 매각, 개발, 소멸되었다.
1943년 123곳에서 2022년 51곳으로 줄었들었고 전체 면적도 같은 기간 2만4432㏊에서 5062㏊로 절반 이상 줄었다. 그 중 38개소는 마을회 산하 목장조합에서 아직도 직영하고 있다. 조합의 역할은 목장 시설 유지 및 관리, 조사료 재배 등 노동력 제공을 통한 공동작업이다.
▲ 자구리 마을어장 주민들의 놀이터, 관광객의 쉼터로도 활용되는 서귀포 서귀마을 ‘자구리 마을어장’ |
ⓒ 정기석 |
제주도 마을의 공유자산은 천혜의 자원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를 비롯한 제주도민들은 마을공동목장을 제주도를 상징하는 공유자산으로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조합 중심의 목축 공동목장, 승마체험, 경관복원 등을 통한 관광체험농장 수익사업,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유치 등으로 전국 유일의 마을 공동목장을 보존하고 지원하려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마을공동목장(조합)은 일제에 의해 이식된 축산제도임에도 제주도 특유의 자연환경을 품은 오래된 목축전통이 남아있는 상징적인 공유재라는 가치가 있다. 특히 조합설립 과정에서 주민들이 토지를 조합에 기부하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마을공동 목장조합규약 등으로 민주적으로 운영되면서 명실공히 공동체 자산(community commons)으로 자리잡았다.
제주도는 마을공동숲도 특별하다. 마을숲이란 산림 조합법에 의해 산림 소유자와 현지 주민이 협동하여 구역 내의 산림을 보호하고 개발한다. 1951년부터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산림계를 대개 리(里)·동(洞)을 구역으로 설정했다. 주로 하는 사업은 산림보호, 조립사업, 임업 관련 공동시설과 임산물 공동이용 등이다.
제주도의 마을공동숲은 곶자왈의 모습으로 흔히 나타난다. '곶자왈'이란 황무지(자갈)를 뜻하는 '자왈'과 나무숲을 의미하는 '곶'이 결합된 제주도 특유의 용어이다. 한라산 동부와 서부, 북부 사면지역에는 곶자왈이라는 지대가 널리 분포한다. 곶자왈은 점성(粘性)이 비교적 큰 아아(aa) 용암류가 다양한 크기의 암괴로 부서지면서 만든 미기복(微起伏)이 많은 암괴지대를 말한다.
용천수(湧泉水)도 제주도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공유자산이다.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대수층(大水層)을 따라 흐르다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을 뜻한다. 제주도의 여러 마을들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 성산 일제동굴진지 서귀포 성산마을의 역사문화적 공유자산 ‘성산 일출봉 일제동굴진지’ |
ⓒ 정기석 |
저수지, 어장, 창고, 주택까지 주민이 공동조성, 공동관리
주로 육지에서는 마을의 수리계가 관리하는 마을공동 보·저수지가 마을을 이루는 중심적 역할과 농업의 규모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수리계는 개개의 농가가 개별적으로 저수지나 보를 축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한 마을 또는 몇 개 마을의 농민집단에 의하여 공동으로 축조하고 관리하려는 목적이다.
수리공동조직은 농업 용수의 확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한 영속적인 상호결속 아래 운영되었다. 자연스레 농촌마을 주민들 간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하고, 몇 개의 마을이 하나의 수리공동조직을 형성하였을 경우, 농민들의 연대가 한 촌락을 넘어서는 지역에까지 확대되는 고리로 발전하기도 했다.
어촌에서는 어촌계가 관리하는 마을공동어장이 가장 중요한 마을의 공유자산이다. 어촌계는 어촌 마을 공동체의 성격과 어민의 경제적 조직의 성격을 모두 가진다.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 지구별 수협의 마을별 하위 조직으로 어촌계가 조직되었다.
현실에서는 자연 마을의 구성원과 어촌계의 계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2개 이상의 자연 마을을 포괄하는 어촌계도 있기 때문에 어촌계가 가지고 있는 마을 공동체의 성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 와서 양식어업이 전개되고 어촌계 계원의 관심이 어장의 분배, 이용방식, 생산, 수입의 분배 등에 점점 더 쏠리게 됨으로써 합리적·타산적 경제조직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마을공동창고, 마을공동주택도 의미있는 마을의 공유자산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있다. 마을공동창고는 주로 작목반 단위의 공동선과장, 저장고 등으로 활용된다. 요즘에는 농어촌지역개발사업을 통해 유휴시설화된 마을공동창고를 개조해 마을카페, 마을학교, 마을극장, 마을구판장 등으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 초리마을 독다리 무주구천동과 무주읍을 이어주던 무주 초리마을의 마을유산 ‘독다리’ |
ⓒ 정기석 |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의해 소유되는 '공유지'는 봉건제의 영국에서 영주의 장원에 있는 '황무지', 즉 미개간지를 소작인들이 방목지나 땔감채취지로 이용할 수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그 사회 구성원은 공유소유권자이자 공동활용자로서 권리와 지위를 누렸다.
이처럼 들이나 숲이 포함된 땅들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공유지였다. 근세 초기의 영국에서 영주나 대지주가 목양업이나 대규모 농업을 하기 위하여 미개간지나 공동 방목장과 같은 공유지를 사유지로 만든 인클로저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15~16세기의 제1차 인클로저, 18~19세기의 제2차 인클로저로 인해 중소 농민들이 농업 노동자나 공업 노동자로 전락하기 전까지.
그런데, 인클로저 운동이 19세기를 끝으로 종료되기는 한건지 자꾸 의문이 든다. 제주도 마을공동목장의 관광지 개발, 농어촌 마을까지 침투한 도시재생사업 등은 21세기판 인클로저 운동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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