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아스팔트 위 교사들 목소리에 공감하라

하성환 2023. 8. 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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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교사의 죽음은 권위주의 교육행정이 초래한 비극

[하성환 기자]

▲ 6차 추모집회 당시 세종시 최교진 교육감이 발언하는 모습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이 지난 5차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 이어 무대 위에서 발언한 것은 아스팔트 위 교사들 목소리에 공감한 결과이다.
ⓒ 하성환
지난 26일 제6차 교사추모집회에서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무대 위에서 9월 4일을 "교육공동체 회복의 날"로 선언했다. 검은 옷을 입은 아스팔트 위 교사들 목소리에 공감한 결과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서거석 전라북도교육감도 뜻을 같이하며 교사들을 지지했다.
교실에 있어야 할 교사들을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내몬 것은 누구일까? 우리 근현대 교육사 100년 이래로 이렇게 많은 교사들이 운집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수만 명에 이르는 교사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아스팔트 위에 연좌해 왔다. 그리고 몇 시간씩 울분과 분노를 담아 절규하듯이 외쳤다. 그런 모습은 우리 교육이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증표다.
 
▲ <살인적인 악성 민원 교육청이 책임져라> 펼침막 제6차 국회대로 변에 <살인적인 악성 민원 교육청이 책임져라>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뜨거운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의 절절한 외침을 대변한다.
ⓒ 하성환
2018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교사들 100명이 극단 선택을 했다. 그중 57명이 초등교사였다.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통한 사연은 파묻힌 채, 세상 밖으로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기간제 사립 초등학교 교사의 비극과 경기도 의정부시 효원초 비극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을 뿐이다. 이 사건 모두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동안 학교 일상에서 수없이 교권 침해 사안이 발생했음에도 피해 교사들은 철저히 고립됐다. 학교장, 교육청, 교육부로부터 버려진 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러곤 극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다가 하나둘 스러져갔다. 그 시기 명예퇴직도 급증했다.

서이초 비극을 계기로 수만 명 교사들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모여 외치기 시작했다. 특정 교육단체가 주도한 집회가 아니라 전국에서 슬픔과 분노로 모인 추모 집회였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교육부와 교육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교육부가 발표한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이 그 결과물이다. 학교마다 5명 내외 '민원대응팀'을 꾸려 학부모 악성 민원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교권 침해 사안을 학교장이 은폐, 축소하면 징계하겠다고도 했다. 2학기엔 시범 운영하고 내년부터 확대 적용하겠다고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직접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부 발표는 예전 권위주의 교육행정을 반복하는 모양새다. 이미 교권 침해의 경우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15조 1항에는 교육활동을 침해한 학생, 학부모를 협박죄, 명예에 관한 죄, 상해 폭행죄, 손괴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게다가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15조(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조치) 4항에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해 "교육청은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교육부 종합방안 발표에선 교권 침해 사안을 학교장이 은폐하거나 축소할 경우, 징계하겠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15조 1항에는 각급 학교 학교장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자행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알게 된 경우, 피해 교원을 보호 조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생기는 '민원대응팀' 또한 별로 색다를 게 없는 모양새다. 교육공무직을 증원해 '민원대응팀'을 꾸리겠다고 했지만 형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갇힌 학교 현실을 생각하면 별로 실효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 <현장 목소리 반영하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전하는 김선경 선생님  김선경 선생님은 18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학폭 담당 업무를 처리하면서 경찰 출신 학부모 악성 민원인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경찰, 검찰로 불려다니면서 결국 몸무게가 10kg이나 줄어드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건강을 잃은 채 오는 8월말 명예퇴직 예정이다.
ⓒ 하성환
 
▲ <민원대응팀 아웃 온라인 민원접수시스템 구축하라> 펼침막 지난 5차 추모 집회 당시, 국회대로 변에 <민원대응팀 아웃 온라인 민원접수시스템 구축하라>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는 광경.
ⓒ 하성환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은 '현장의 요구를 즉각 수용하라'고 촉구한다. 지난 6차 추모 집회에선 손팻말을 치켜든 채 절규했다.

그렇다면 현장의 요구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먹구구식으로 급조된 '민원대응팀'이 아니라 '온라인 민원 접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 교육 현실은 학교 → 교육지원청 → 교육청 → 교육부로 층층이 위계화된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교사를 공문 보고하는 말단 행정요원 정도로 보는 시각이 매우 강하다. 권위주의 교육행정 문화에 우리 교육이 100년 넘도록 찌들어 있었기에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는 교사의 고통을 외면해 왔다. 그리고 천박한 성과급제도로 교사들 간 협력 문화를 파괴해 모래알처럼 흩어버렸다.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행정 잡무와 공문처리는 그 자체로 업무 폭탄이다. 수업 연구는커녕 도저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는 환경으로 교사들을 끊임없이 내몰아온 권위주의 교육행정이 비극의 근원적 배경이다. 그런 교육 환경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인 게 2014년 제정된 '아동학대처벌법'이다. '의심만 되면' 교사들은 하루아침에 신고 대상이 돼 나락으로 떨어졌다.

서이초 교사의 비극을 계기로 드러난 수많은 교사들의 극단 선택의 근본 원인에는 권위주의 관료 행정이 엄연히 존재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권위주의 관료 행정은 21세기 학교 현장에 여전히 똬리를 튼 채, 학교의 위계질서를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다.

교육지원청이라고 이름만 바꿀 게 아니다. 실제로 교사는 교육활동의 가장 보배로운 존재이다. 그런 교육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면 교사가 오로지 교육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나 교육 현실은 정반대로 치달았다. 교사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는 문화가 아니었고, 층층이 위계화한 관료 중심으로 돌아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사들이 말단 행정요원으로 버려진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우리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학교장 → 교육지원청 → 교육청 → 교육부로 이어지는 계선조직을 해체해야 한다. 교사의 머리 꼭대기에 위치한 계선조직의 눈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걸 당장 멈춰야 한다. 그들 조직은 오로지 교사의 교육활동을 돕고 지원하는 보조 단위로 재배치해 그 존재의의를 내면에 새겨야 한다.

그래야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 그래야 또 다른 교사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지시와 통제 위주의 권위주의 교육행정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다. 서이초 교사의 비극은 그런 근원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제6차 추모 집회에서 <교사 죽음 진상 규명> 손팻말을 치켜든 장면 6만 명이 운집한 6차 추모집회는 국회대로 양쪽을 가득 메웠다.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국회 앞에서 여의도 공원까지 교사들이 연좌한 채 <교사 죽음 진상 규명>을 외치며 손팻말을 높이 치켜든 모습.
ⓒ 하성환
따라서 오는 49재 9월 4일을 앞두고 '국가공무원법'을 운위하며 징계로 겁박하는 교육부 모습은 권위주의 교육행정의 또 다른 민낯을 드러낸 부끄러운 장면이다.

교육부는 죄 없는 교사들이 죽어 나갈 때 그 사건을 은폐한 학교장에 대해 관리 감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명백히 직무 유기다. 서이초 비극을 계기로 교육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교권 침해 사안을 은폐한 학교 관료들을 징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그것이 교육부가 취해야 할 자세다.

그런 교육부 모습이야말로 권위주의 교육행정이라는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민주주의 교육행정으로 거듭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나아가 서이초 교사의 원혼을 위로하며 49재를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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