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저격한 보훈부 장관 "공산당 나팔수 기리는 시도 참담"

국가보훈부가 호남에 학도병 현충시설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광주광역시가 48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풀이된다. 6·25전쟁 당시 공산 세력에 저항한 이들을 기림으로써 정율성의 친북·친중 행적을 부각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28일 전남 순천역 광장에서 고병현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호남학도병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뉴스1

보훈부는 28일 오전 전남 순천역 광장에서 ‘잊혀진 영웅, 호남학도병들을 기억해야합니다’를 주제로 호남학도병 현충시설 건립 계획을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순천역 광장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생들이 집결해 학도병 출정식을 가졌던 장소다. 당시 순천·여수·광양·벌교 등 호남지역 17개 학교 18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혈서로 입대지원서를 쓰고 같은 해 7월 13일 이곳에서 출정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엔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고병현 옹이 참석해 박민식 보훈부 장관으로부터 ‘영웅의 제복’을 받았다. 보훈부는 앞으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해 순천역 광장에 학도병 관련 현충 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박 장관은 이날 해당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 계획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정율성을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던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라고 규정한 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공산당의 나팔수를 기억하게 하고 기리겠다는 시도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단 1원의 예산도 대한민국 가치에 반하는 곳에 쓸 수 없다”며 “호남학도병처럼 대한민국 영웅들을 기억하기 위한 예산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1950년 해병대에 입대하는 제주도 학도병 [사진 해병대]

박 장관은 또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는가에 달려있다”며 “우리는 호남의 정신과 호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끈 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 ‘호국’, ‘민주’라는 보훈의 3개 축 중 호남에서 ‘호국’ 가치를 이번 계기에 재정립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율성은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팔로군 행진곡(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해방 이후 평양에서 북조선노동당에 입당한 후 1949년 북한 군가인 ‘조선인민군 행진곡’도 작곡했다. 일제강점기 의열단에서 항일운동을 했지만 해방 후 김일성 정권에 부역한 행적이 명확하다는 평가다.

28일 오전 광주 동구 불로동 정율성 생가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적 인물을 둘러싼 이념 논란은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흉상을 놓고서도 확대하는 양상이다. 육사는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교내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서 철거·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927년 소련 공산당 가입한 홍범도 장군의 경력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국방부는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하면 공산주의 경력 등 논란이 있는 인물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게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