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수영 선수의 뉴스위크 기고글이 던진 파장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신필규 2023. 8. 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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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소수자의 권리 향상을 위해, 필요한 이 사람들

[신필규 기자]

"스포츠계 여성으로서 저는 여성 스포츠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적 학대와 괴롭힘, 불평등한 임금과 자원, 여성 리더십 부족입니다. 트랜스젠더 소녀와 여성은 이 목록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성 스포츠는 트랜스 여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이 차별로부터 보호 받고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을 때 더 강해집니다."

커밍아웃 한 트랜스젠더 여성 수영 선수인 리아 토마스의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디비전 1 여성 챔피언십 출전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 2022년 2월 미국, 바로 그 달에 300여 명에 이르는 미국 대표팀 및 국제 수영 선수들과 다이빙 선수들이 NCAA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리아 토마스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트랜스젠더 선수들에게도 평등한 경기 참여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수영 선수인 에리카 설리번은 그 300명 중 한 사람이었다. 설리번은 커밍아웃 한 레즈비언 수영 선수로 2021년 도쿄 올림픽에 미국 국가대표로 참가해 은메달을 따며 유명세에 오른 선수이다.
 
 커밍아웃 한 레즈비언 수영 선수로 2021년 도쿄 올림픽에 미국 국가대표로 참가해 은메달을 딴 에리카 설리번.
ⓒ 연합/AFP
 
리아 토마스를 지지했던 에리카 설리번의 행보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해 3월 설리번은 미국의 시사 주간지인 <뉴스위크>에 '리아 토마스와 같은 트랜스젠더 선수들을 지지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설리번은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경기 참여에 문제가 없음을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했으며 레즈비언인 자신이 온전히 포용되었던 것처럼 리아 토마스 또한 마땅히 같은 환대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두에 인용한 글은 바로 에리카 설리번이 기고한 글의 일부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소수자 위해 목소리를 내기

<뉴스위크>에 공개된 에리카 설리번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가 매우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임이 느껴진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여전히 장래가 촉망 받는 국가대표 선수라는 지위는 설리번이 자신감 있게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토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영국의 성소수자 매체인 <핑크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런 설리번도 처음에는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도 괜찮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아니라 시스젠더(자신의 성별정체성과 출생 시 부여된 지정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여성인 자신이 트랜스젠더 공동체를 옹호하기 위해 앞장서는 것이 맞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아한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신념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주장하는데 주저할 이유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에리카 설리번의 입장이 된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서한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대형 주간지에 글을 보내는 건 다른 일이니 말이다. 자신이 당사자라면 거침없을 수 있다. 자기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리고 원래부터 계속 글을 쓰며 누군가의 권리를 옹호하던 일을 해오던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충분히 어색한 기분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필요가 없는데 자기까지 너무 나서는 건 아닌지 고민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당사자에게 향해야 마땅할 여론의 주목을 자신이 가져가는 건 아닐지 걱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선수들에 대한 공격이 점점 거세지자 에리카 설리번은 결심을 굳혔고 <핑크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앨라이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리아 토마스가 2022년 3월 18일 애틀랜타 조지아 공대에서 열린 NCAA 수영 및 다이빙 챔피언십 여자 200m 자유형 결승전에서 수영을 마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정체성과 지향을 넘어 연대하는 사람들, 앨라이

에리카 설리번이 언급한 '앨라이'라는 개념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충분히 확산되진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앨라이는 동맹·연합을 뜻하는 얼라이언스(alliance)의 줄임말이다.

초창기에 이 단어는 성소수자 당사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지지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 개념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콩코드 아카데미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이 학교의 교사이자 커밍아웃 한 동성애자인 케빈 제닝스가 다른 교사들을 모집하여 동성애자·이성애자 동맹을 형성한 것이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제닝스는 이 동맹을 통해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나섰다고 한다.

앨라이가 비당사자인 성소수자 인권 지지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현재 이 개념은 보다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가령 2016년부터 시작된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나는 앨라이입니다' 캠페인은 성소수자 비당사자뿐만 아니라 당사자들도 앨라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소수자들도 서로 다른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동성애자 남성인 내가 트랜스젠더 여성의 앨라이가 될 수도 있고 양성애자인 누군가가 젠더퀴어의 앨라이가 될 수도 있다. 에리카 설리번이 레즈비언으로서 트랜스젠더 수영 선수들의 앨라이가 되고자 했던 것도 좋은 사례이다.

성소수자의 앨라이들이 더 늘어나길 바라며

언젠가 인터뷰에서 한 기자분이 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 시민들의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입장이 이전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는데 왜 사회적 변화는 이렇게 더딘 것이냐고. 나는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단단하게 잘 뭉쳐져 있고 많은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여론조사에서 차별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공통의 견해를 가졌지만 흩어져 살아가는 개인들이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절대적인 수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까지 앨라이라는 개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행동하지 않는 게 아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함에도 때로 적절한 역할과 위치가 주어지지 않아서 방황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에리카 설리번이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닌 자신이 나서는 게 맞는지 질문했던 것처럼. 이때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호명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공통된 입장을 가진 정치 집단을 만드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최초의 앨라이로 지목되었던 사람들도 단순히 입장만을 가진 게 아니라 동맹을 형성하고 행동에 나섰던 점을 생각해보자.

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앨라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서 성소수자의 인권증진을 위한 공동의 행동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침 이를 위한 캠페인이 준비되어 있기도 하다. 내가 활동가로 소속되어 있는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는 기존의 '나는 앨라이입니다' 캠페인을 확장하여 9월 한 달을 '앨라이 먼스(Ally month)'로 지정하고 더욱 많은 수의 앨라이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적당한 계기가 없어서,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내가 나서도 되는 일인지 고민이 되어서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기회에 앨라이로서 자신의 역할도 찾고 동료들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관련기사]
그 수영 선수는 정말 부당하게 1등을 했나 (https://omn.kr/240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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