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으로 전가시키는 필수 노동
[유형섭]
열악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노동, '더티 워크'
비교적 낯선 책의 제목 '더티 워크'를 보고 흔히 말하는 3D 업종을 가리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단어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태어난 것이었다.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켜보던 독일인들에게 남다른 비윤리성이 있는 것인가를 탐구하던 미국인 사회학자인 에버렛 휴스는 나치가 선량한 사람들(독일인)의 대리인으로서 불결하고 불쾌한 일, 즉 '더티 워크'를 무의식적으로 위임시켰다는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 19 이후, 지역과 직장이 봉쇄되면서 얼마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노동에 의존해 왔는지를 알게 되며 필수 노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의료진 외에 잊히기 쉽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 「더티 워크」, 이얼 프레스, 2023 |
ⓒ 한겨레출판 |
열악한 교도소 환경, 더욱 척박한 교도관 노동의 실태
미국 플로리다주는 흉악범죄에서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교도소 수용 인원을 늘리는 징벌적 형사처벌 정책를 펼쳤다. 그 결과 1970년부터 2010년까지 플로리다주 교도소 수감자수는 1000% 이상 증가했다. 같은 시기 정신병원을 없애면서 탈시설을 유도하였으나, 정작 긴축 재정을 통해 장애급여 자격을 강화하여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이 길거리에 내버려지거나 범죄에 노출되어 감금되게 되었다. 교도소 정신병동 수감자에 대한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폭력적인 교도관들에게 학대를 당하는 문제를 저자는 여러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교도관들 또한 시민들이 죄수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비용을 내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교도관 임금은 지난 10여 년간 인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교정 사업이 민영화되며 인력은 줄고 근무 시간은 늘었다. 그 결과 교도관의 이직률이 늘고 폭력 사건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실제 교도관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주로 침체되거나 척박한 시골에 살며 선택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교도관은 고혈압, 이혼, 우울증, 약물 남용, 자살 위험률이 높았다. 뉴저지주의 한 연구에 따르면 교도관의 평균 기대수명은 58세이다. 교도관들이 처한 노동 환경이나 사회경제적 조건이 학대나 부정부패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선량한 시민이 범죄자 및 정신 장애인들을 감추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값싸게 국가나 정부에 의탁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값싼 고기, 그 뒤에 놓인 '더티 워크'
미국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60년 약 73.4kg에서 2018년 약 100.8kg으로 상승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영양학자들이 권고하는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의 두 배이며, 세계 전체 1인당 평균 육류 소비량의 두 배를 넘어선다. 미국인이 마음껏 대기업 공장들을 통해 저렴하게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정육산업이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을 주로 고용하여 돌아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텍사스주에서 열린 가금류 도축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하는 세미나를 방문하여 정육 공장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어깨, 손목에서의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 화장실 갈 틈을 주지 않아 방광염이 생긴다거나, 라인이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위생상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감염성 질환들이 발생하게 되는 등 건강상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불결하고 지저분한 일을 한다는 오래된 낙인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고통까지 잇따랐지만 이주 노동자들에게 가장 높은 임금을 주는 업무였기에 그만둘 수 없었다.
정치학자 티머시 패키릿의 <육식제국>에는 저자가 직접 소고기 정육공장에서 일을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동물을 죽이는 작업이 잔인성과 폭력이 요구되어 노동자의 감정에 상처를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직접 경험해본 결과 실제 업무는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광경이 충격적이기는 하나 기계적인 업무로밖에 보이지 않고, 오히려 소에게 충격을 주는 작업을 즐기거나 고문하는 노동자들을 목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잔혹성에 대한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지, 대가에 대해 고민 한번 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소비자에게 있는지 묻는다면 후자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지금 이 시스템은 어떤 '더티 워크'로 유지 중인가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에서 문명화란 '충격적인 일'이 은폐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였다. 앞선 노동에 대해서는 우리는 이런 노동에 대해 깊게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이가 장래 희망으로서 갖고 싶어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대중의 이익,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는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하게 되는 것인가. 어떠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주로 하게 되는 것이며, 그들이 처한 노동 환경은 주로 어떠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우리는 무의식적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위임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가 더티 워커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일을 대신하고 있음을 대면해야 한다.
저자는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티 워커와 책임을 함께 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수동적인 포지션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여러 더티 워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들을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맥락들을 잘 파악하는 듯 보이지만 결론을 항상 무지몽매한 소비자들이나 시민들을 계몽하는 것으로 끝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또한 중요하지만 정작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문제 인식은 부족하다. 아무리 가려진 노동 과정을 더 투명하게 하고, 공동체가 책임을 같이하여도 동일한 시스템 하에서는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업무를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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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형섭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8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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