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애리조나에서 무슨 일이?…'무노조 경영' TSMC, 美서 노조와 정면충돌
미 현지 노조 반발…"공장 가동 지연, 현장 관리 부족 탓"
53兆 투자 차질 우려에…주 정부·상원의원 중재 노력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 과정에서 현지 건설 노동자 조합과 정면충돌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TSMC는 반도체 공장 건설에 숙련된 인력을 대만에서 미국으로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 현지 노조에서 여기에 반발하면서 불협화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TSMC는 설립 이후 그동안 무노조 경영 기조를 이어온 만큼, 새로운 ‘노조 리스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칫 우리 돈 53조원이 넘는 TSMC의 대규모 대미 투자 전체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TSMC는 최근 애리조나 공장 건설 현장에 대만 숙련 인력을 배치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비자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WSJ는 소식통을 인용해 TSMC가 500명가량의 임시 근로자에 대한 비자를 신청했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는 "여러 기업이 (미국에서) 복잡한 반도체 제조시설을 세우고 운영해나가는 데 있어 숙련된 근로자가 필요한 만큼 이들이 미국 비자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신청할 수 있게끔 기회를 보장하려고 한다"며 TSMC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TSMC가 대만 인력을 미국으로 파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지난달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숙련 노동자 부족으로 애리조나 공장 건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초 일정에 맞춰 현지에 첨단 장비를 설치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에서 전문 엔지니어들을 파견해 현지 근로자들을 훈련하면서 첨단 장비 설치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TSMC는 인력난을 이유로 애리조나 공장 가동 시기를 당초 2024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연기하는 결정까지 내렸다.
하지만 TSMC는 이 조치 이후 큰 도전에 직면했다. 류 회장의 발언 이후 애리조나 근로자 4000여명이 가입한 노조 ‘애리조나 파이프 트레이드 469’와 애리조나 건설업 관련 노조 14곳을 대표하는 애리조나 건설업 협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 의회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TSMC의 대만 근로자 비자 요청을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TSMC가 애리조나 공장을 짓는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가 세금으로 막대한 지원금을 지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 현지에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만 근로자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지 건설 근로자들은 TSMC가 숙련된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장 관리 부족으로 공장 가동 시점을 늦춘 것을 두고 괜히 인력난 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미국 직원들은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TSMC가 공장 건설과 관련한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고 자재도 부족한데 작업 속도를 높이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직원들은 인텔 공장 건설 현장에서도 일해봤다면서 TSMC 건설 현장에서는 건축법을 위반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창립 이래 35년 이상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온 TSMC에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친(親)노조 성향인 데다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노조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점이라는 것도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TSMC는 일단 노조 측을 달래고 있다. TSMC는 이번 대만 직원 파견이 "애리조나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에서 경험이 많은 소규모 전문가 그룹을 파견해 미국 현지에 노하우를 전하게끔 해서 미국 공급망 현지화라는 더 큰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반도체 업계가 심각한 전문 인력 부족에 시달려 교육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기간 대만의 전문 인력 도움을 받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2030년까지 미국에 11만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현재 학위 수여율을 고려하면 6만7000명 정도가 부족해질 전망이다.
TSMC의 투자를 유치, 경제 성장을 모색하는 애리조나 주 정부와 상원의원 등도 중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케이티 홉스 애리조나 주지사는 지난 9일 TSMC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주 공무원이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사와 교육 등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애리조나가 지역구인 민주당 소속 마크 켈리 미 상원의원은 최근 대만 CNA와의 인터뷰에서 TSMC와 노조 지도부가 대만 인력을 미국에 투입하는 계획과 관련해 직접적이고 생산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으며 양측 모두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만에서 미국으로 파견되는 근로자는 첨단 작업을 수행하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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