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 종교인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남재영 2023. 8. 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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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연속기고] 남재영 담임목사(대전 빈들공동체교회)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은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3조)과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2조)이 주된 골자다. <오마이뉴스>는 노란봉투법을 지지하는 시민과 사회단체들의 기고를 받아 싣습니다. <편집자말>

남재영 담임목사(대전 빈들공동체교회)

 '노조법 2·3조 개정 대전운동본부'는 지난 8일 오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안 8월 국회 통과와 대통령 거부권 저지를 위한 집중행동을 한 달 동안 진행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이 밥을 위해서 지난 여름 타는 땡볕에 농사를 지었을 농민을 생각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무개 농민 덕분에 지금까지 내가 생명을 이어왔다는 밥 한 그릇의 깨달음이 있었다. 생각을 조금 더 넓히면 오늘 내가 입고 있는 옷이나, 신발에서부터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였다.

이 사실을 깊이 통찰하면, 나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고, 그 누구의 노고에 빚지면서 '살아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를 살아가게 해준 저들이 생판 남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영혼'이라고 고백한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나를 살아가게 해준 '나의 또 다른 영혼들'을 예민한 영적 감수성으로 살피면서, 오늘도 그들에게 진 삶의 빚을 갚는 날로 살라는 말씀으로 듣는다.

1997년 'IMF'라 불린 국가부도사태가 있었다. 돌아보니 'IMF'보다 더 무서운 재앙은 그 틈을 비집고 비정규직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지금까지 온존시켜온 그 세월이었다. 그 세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법이라는 차꼬에 묶여 가혹한 차별을 강요당해왔고, 일상적으로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노동을 해왔었다. 굳이 멀리 거슬러 가지 않아도,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간부 5명을 상대로 원청이 던진 470억 원이라는 살인적인 손해배상 폭탄은 당사자들을 평생 쫓아다니면서 돈으로 고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산업현장에서 '위험의 외주화'란 말은 사실 '죽음의 외주화'이다. 생산 현장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선택적으로 강요된 죽음을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로 포장했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고(故) 김용균'은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또 냉방시설이 없는 작업장에서 체감온도 38도라는 살인적 고온에서 작업하면서 휴식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21세기판 노예노동이 아닌가. 더하여 쿠팡 본사는 사측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얼룩을 지워내듯 '클렌징'이라는 말로 배송노동자들을 간단하게 해고시키고 있다. 'IMF'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또 다른 영혼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악마적인 현실에 묶여있었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이련 현실을 그대로 두고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살아왔었고 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참담하다.

원인은 노조법에 있었다. 현재 노조법은 이미 70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후 시대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이 노조법은 오늘 노동자들의 현실에 맞게 반드시 개정해야만 한다.

노조법 2조의 개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나는 법정투쟁으로 얻어낸 노동자 지위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법안에 담아내자는 것이다.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사용자라는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사용자성도 법안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죽음의 외주화가 현실화된 노동 현장에서 실질적인 산업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청과 교섭할 수 있어야만 평화적인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조법 3조의 개정은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에 제동을 걸고, 손해배상청구를 하려면 쟁의행위로 노동자가 끼친 손해의 정도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다. 노조법 개정은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랜 희생으로 얻어낸 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노조법에 담아내자는 것이다.

더하여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해 노사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성찰하면서 산업현장을 상생과 평화의 자리로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큰 눈으로 보면 노조법 2·3조 개정은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묘약이 될 것이다. 노조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우리 종교인들에게 노조법 2·3조의 개정은 신도들이자 가족이요 '또 다른 영혼인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영혼을 품는 성사(聖事)이다. 그래서 종교인들이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종교인들은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다시 태어나게 될 것으로 믿는다. 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하게 통과되고, 더불어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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