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써 내린 이야기들이 적시는 가슴

변택주 2023. 8. 2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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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습니다] <세상을 아우른 따스한 울림> 을 펴내면서

[변택주 기자]

조심스럽지만 또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번에 내놓은 책 이름은 <세상을 아우른 따스한 울림>입니다. 쉰 살이 넘도록 일기도 쓰지 않던 제가 책을 펴내겠다고 생각한 건 법정 스님 삶에 담긴 뜻을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법정 스님은 셈에 밝은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바르고 옹근 뜻을 밝혀 살아야 한다고 흔드셨어요. 얻은 것을 세상에 나누지 않으면 제구실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하시고요.

<세상을 아우른 따스한 울림>은 세상에서 얻은 것을 갈닦아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이에요. 불교닷컴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란 꼭지에 실렸던 글에서 가려 뽑아 간추린 글입니다.
 
▲ 세상을 아우른 따스한 울림  / 변택주 지음 / 큰나무 / 값16,800원
ⓒ 큰나무
     
첫 꼭지는 '대한제국 첫 페미니스트' 김양현당(여성교육운동가)를 다루며 1898년 9월 1일, 우리나라 최초 여성권리선언서인 '여성통문'이 발표되었다는 얘기로 문을 엽니다.
 
먼저 문명개화한 나라는 남녀가 일반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각각 학교에 다니며 재주를 다 배우고 이목을 넓혀 자란 뒤에 사나이와 부부지의로 평생 살더라도 그 사나이에게 조금도 절제를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지극히 공경함을 받음은 다름이 아니라 그 재주와 권리와 신의가 사나이와 같은 까닭
 
이 여성들은 이어 '찬양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회원 백여 사람이 대궐 문까지 나아가 시위하고 고종황제에게 상소를 올립니다. 조선 여성들이 올린 첫 상소문입니다. 나라에서 학교를 만들어 나랏돈으로 여성들이 배울 수 있는 길을 열라는 얼거리입니다.
 
학부에 칙령을 내리사 특별히 여학교를 세워 어린 계집아이들로 하여금 학업을 닦게 하여 대한제국도 동양문명지국이 되옵고 각국과 평등한 대접을 받게 하옵기를 엎디어 바라옵니다.
 
대한제국 첫 페미니스트 이야기를 첫 꼭지에 담은 건 높낮이 없이 누구나 고르게 떠받들지 않고서는 누리 결이 고와질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쉰한 분은 저를 비롯한 여느 사람들이 "우리가 나선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하며 머뭇거릴 때,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잖아. 나라도 나서야지" 하고 나서서 빚은 얘기예요.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주시오."
"막이 오르면 연기는 배우에게."
"나는 너와 뗄 수 없이 이어져 있다."
"보금자리는 울음도 웃음도 함께 나누는 목숨밭."
"밑지는 인생을 살 줄 알아야."
"다들 입만 있지 귀가 없어."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사고방식이 마이너스이면 결과도 마이너스."

다 몸으로 써 내린 이야기에요. 요즘처럼 말길이 막힌 때에 읽어 드리고 싶은 꼭지도 있어요. 스웨덴 총리였던 타게 엘란데르를 그린 '스웨덴 복지 상징, 인민들 집을 완성하다' 입니다.

스웨덴은 1860년부터 1930년대까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꼴인 백오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나라를 등졌을 만큼 살기 힘든 나라였어요. 그런데 1970년대에는 산유국을 빼놓고는 GDP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바탕에 타게 엘란데르가 있었어요. 69쪽에 나오는 얘기를 읽어볼게요.
 
제2차 세계대전 총성이 채 가시지 않은 1946년, 마흔다섯 살 젊은 총리가 짊어진 과제는 경제성장이었다. 싸워 이겨야만 살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벼랑 끝 사람들에게 총리가 초대장을 내민다.
"저는 목요일에 시간이 좀 나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기업대표, 노조위원장들이 모여 서먹서먹하게 나누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기업가가 채 몰랐던 노동자들이 앓는 속사정, 노동자가 알지 못했던 기업가들이 닥친 어려움을 헤아렸다.
"우리 아예 목요일마다 만나서 저녁을 같이 먹어요."
그렇게 목요일 밤마다 스물세 해 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진 이야기가 스웨덴을 바꾸었다.
 
<세상을 아우른 따스한 울림>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내가 아니면 누가? 이제 아니면 언제?" 하며 일어서서 사람 사이를 이어붙여 살려 사는 살림살이 얘기에요. 세고 익숙하고 여리고 서툴고, 넘치고 모자라고, 크고 작은 것들이 서로 받쳐주며 서로 있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남긴 발자취이기도 합니다.

쉰 살이 넘도록 일기 한 번 써 보지 않았던 제가 다섯 해 동안 글쓰기를 익혀 처음 책을 펴냈던 해가 2010년입니다. 그 뒤로 십여 권이나 되는 책을 펴낸 이따금 제게 "네 목소리는 어디에 있어?" 하며 드잡이하는 이들이 있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머리를 긁적이거나 헤식게 웃고는 해요. 제 목소리를 낼만큼 옹글게 살지 못했느니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이 있어요. 해처럼 빛을 내는 이가 멋지겠으나 해가 내뿜은 빛을 되비추는 은근한 달도 괜찮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세상을 아우른 따스한 울림>을 사서 읽은 동무 하나가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책을 읽다 보니 제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다른 사람들 삶과 목소리를 빌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고 얘기했어요. 아무튼 저는 마련이 서지 않을 때나 무슨 일을 하다가 지칠 때 뜻을 바로 세워 옹글게 사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힘이 솟구치면서 '그래, 나도 다시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세상을 아우른 따스한 울림>은 2010년에 제 첫 책 <법정 스님 숨결>을 펴낸 큰나무에서 나왔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영업부와 편집부가 있었으나 이제는 대표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도 치는 작은 회사로 출판계 현실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제가 책 소식을 알려야 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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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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