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던 엄마의 민낯, 전혜진이라 가능했던 '남남' 김은미 [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㊼]
나도 김은미처럼 살고 싶다! 속이 뻥 뚫리는 그야말로 ‘사이다 캐릭터’를 만났다.
드라마 ‘남남’ 시청을 시작했을 때의 첫 느낌은 ‘배우 전혜진, 연기 잘하는 줄 알았지만, 여기까지 되는구나!’였다. 여기까지…란, 전혜진이 그냥 김은미로 보일 만큼 캐릭터 깊숙이 들어갔다는 것이고, 김은미는 전혜진이라는 배우 덕에 마치 2023년 여름 대한민국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리얼, 진짜처럼 느껴지게 캐릭터를 드라마 밖으로 빼내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데려왔다.
김은미 씨는 우리 동네 정형외과에 이직해 오기를 바랄 만큼 힘도 좋고 기술도 좋고 성격도 좋은 물리치료사이고, 딸이랑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다가 ‘찐친구’처럼 티격태격 싸우다 금세 풀어지는 좋은 엄마이고, 엄마로서 의무와 여자로서 권리는 별도라는 걸 분명히 하며 화려한 연애사를 자랑한다.
제일 부러웠던 건 은미 씨의 당당함이다. 물리치료사라고 내 월급 주는 원장 의사에게 비굴하지 않다, 할 말은 한다. 성추행 발언을 일삼는 환자에게 주눅 들기는커녕 대차게 대응하며 혼쭐을 내는데, 손끝도 대기 싫은 못된 사람임에도 교육 차원에서의 접촉을 불사한다. 내 딸이 아니어도 우리의 딸이 당하는 폭력에 주저 없이 달려들어 스토커의 목을 조른다.
하이라이트는 딸의 생부가 나타났을 때의 반응이다. 함께 자식을 키울 남편이 이제라도, 내 딸에게 드디어 아빠가 생기는구나…따위의 전통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 내 첫사랑과의 재회라는 점에 설레고, 그때 멋있었듯 지금도 멋있는데 내가 왜 내 아이의 생부라는 사실 때문에 꺼려야 하는지 억울해한다. 고민은 잠시, 이번에도 자신의 선택으로 직진한다, (박)진홍이 오빠에게!
내 목숨 노리는 범죄자를 만나도, 뒤늦게 내 딸 진희를 친손녀라며 노리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될 뻔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도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뭐 먹고 자라면 그런 어른으로 크는지 묻고 싶을 만큼 다부지고 야무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폭력적 학대를 당했고, 고등학생 때 딸을 낳아 키운 미혼모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어떠한 난관 앞에서도 기가 꺾이지 않은 그 패기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종종 하는 비유인데, 굴의 같은 맛과 향을 놓고 누구는 즐기고 누구든 못 먹는다. 똑같은 김은미 씨가 우리 눈앞에 있는데 누구는 대리만족에 못 봐온 신선함에 열광한다, 누구든 자기밖에 모르고 제멋대로 하는 이기적 인물이라며 못 마땅해하는 걸 넘어 인신공격의 표현까지 쓴다.
이런 대립의 배경엔 배우 전혜진의 기막힌 연기가 있다. 진짜 사람도 아니고, 내 엄마도 아닌데 어째서 큰 반향이 일겠는가. 나도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열광하고, 내 엄마나 가족은 절대 저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화가 난다. 내 마음을 흔드는 개성적 매력이 있다는 것이고, 그 튀는 특성이 불편하다는 얘기다.
은미 씨가 왜 불편할까. 나는 입 밖으로 뱉지 못하는 말, 나는 안으로 숨기는 욕망, 나는 겁나서 할 수 없는 일을 드러내 행하기 때문이다. 은미 씨를 왜 좋아할까. 같은 이유다.
은미 씨의 모든 걸 모든 우리의 엄마가 지녔다고 하진 않겠다. 하지만, 은미 씨의 많은 걸 우리의 많은 엄마가 이미 가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든 그러지 못하든. 엄마들은 자기의 민낯을 자주 마주한다.
종종 우리에게도 보여주는데, 우리가 못 본 척하는 건 아닐까. 엄마가 그걸 다 드러내고 살면 내가 불편할까 봐. 엄마는 지금 그대로, 자식을 위해서면 뭐든 다할 수 있고 자신의 몫은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는, 여자 아니고 사람, 사람 아니고 ‘그냥 엄마’이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바라는 건 아닐까. 급하면 입에서 ‘엄마~’부터 나오는 우리 아닌가.
본인이 바라는바, 욕망을 정확히 알고 솔직히 표현할 줄 아는 은미 씨가 우리 곁에 실감 나게 올 수 있도록 민감한 부분까지 ‘당당하게’ 연기해 준 배우 전혜진이 우리 엄마들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다른 캐스팅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체 배우가 없을 만큼, 김은미를 탄생하기 위해 그동안 연기 내공을 갈고닦았다 싶은 최고의 연기였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은미 친구 미정이로 현실감 증폭시켜 준 배우 김혜은, ‘껌 좀 씹을 때’의 친구 박지은이자 시누이로 머리끄덩이 잡을 만큼 차지고도 맛있게 분란을 일으킨 배우 우미화로 이루어진 ‘여고 동창생’ 3인방의 어우러짐이 좋았다. 특히나 우리 은미 씨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떠한 투정과 앙탈에도 아껴줌으로써 ‘중년 로맨스의 환상’을 새로이 연 배우 안재욱의 녹슬지 않은 멜로력(力)이 많은 여성 시청자를 설레게 했다.
어떻게, 시즌 2는 불가능할까요? 이제 막 시작된 진희(수영 분)와 재원(박성훈 분)의 연애담도 듣고 싶고, 남촌 파출소 식구들 얼굴도 노래방 회식도 자꾸만 보고 싶으니 말입니다. 모였다 흩어지기를 바람에 게 눈 감추듯 잘하는 박상구 정형외과 직원들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고, 우리 단골 환자분들(김영옥·이용이·양희경 분) 건강히 계신가 모르겠습니다. 일만 하느라 사랑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박상구 님(김상호 분)과 김미정 님의 풋풋한 연애도 보기 좋지 않은가 말입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멜로킹’ 조인성이 다시 멋있어졌다 [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㊻]
- ‘무빙’ 우정의 탄생-사랑의 시작, 비밀의 법칙 [홍종선의 명대사㊼]
- 억만장자의 초대, 탐정 된 ‘6대 007’ 다니엘 크레이그 [OTT 내비게이션③]
- [OTT 내비게이션➁] 3000년의 기다림, 잊고 있던 3가지 소원
- [OTT 내비게이션➀] ‘21세기 알랭 들롱’ 주드 로의 연출작 ‘Do Not Disturb’
- 날 밝은 '운명의 11월'…김혜경 '先유죄', 이재명 대권가도 타격 전망은
- '공천 개입 의혹' 명태균·김영선 구속…"증거 인멸 우려"
- 한동훈, 당원게시판 논란에 첫 입장…"분열 조장할 필요 없다"
- ‘민희진 플랜’대로 흘러가나…뉴진스, 어도어에 내용증명 초강수 [D:이슈]
- 멀티홈런에 호수비…한국야구 구한 김도영 [프리미어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