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120여 년간 재배된 벼 87개 품종 한눈에…국립식량과학원에 가다

성선해 2023. 8.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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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 좋은 쌀은 어떻게 만들까요 새 품종 개발하는 육종 전문가 따로 있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등으로 시작된 식량 부족과 이에 따른 가격 상승을 뜻하는 식량 인플레이션이 세계적으로 확산 중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를 대비해 식량 안보를 지킬 필요성이 커졌어요. 이를 위해선 먼저 우리나라가 보유한 식량 자원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겠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을 찾아 이곳의 역할과 새로운 농작물 품종을 개발하는 육종연구원에 대해 알아봤어요.

조유진(인천 부원초 6)·유정현(서울 목동초 5)·이이삭(경기도 홈스쿨링 중 2·왼쪽부터)학생기자가 전북 완주 국립식량과학원 본원을 찾아 국립식량과학원의 역할과 작물 육종 전문가에 대해 알아봤다.

사람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먹을거리를 식량(食糧)이라고 합니다.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식량과학원은 인간이 먹는 식량으로 쓰이는 작물, 가축이 먹는 사료로 쓰이는 작물, 작물 재배를 위한 풋거름으로 쓰이는 작물, 바이오 에너지를 얻는 작물 등의 품종 개량과 가치 연구, 재배 및 생산 환경 개선 등을 담당해요. 국립식량과학원 본원은 전북 완주에 있지만, 우리나라 각 지역의 환경과 기후에 맞는 작물을 연구하기 위해 강원도 춘천·철원·평창, 경북 상주·영덕, 경남 밀양, 경기도 수원, 전남 무안 등 전국에 걸쳐 부서를 두고 있죠.

유정현·이이삭·조유진 학생기자가 전북 완주에 있는 국립식량과학원의 홍보관을 찾아 이지은 농업연구사를 만났어요. 정현 학생기자가 "국립식량과학원이 설립된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죠. "국립식량과학원은 농촌진흥청 소속으로, 식량 작물의 우수 품종을 육성하고 안정적인 재배법을 확립하며 작물의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 설립됐어요. 처음에는 농촌진흥청 소속 작물시험장으로 출발해 2004년 작물과학원을 거쳐 2008년 국립식량과학원으로 개편됐죠."

우수한 식량 작물 육종과 안정적 재배법, 작물의 부가가치 등을 연구하는 국립식량과학원 전경. 국립식량과학원

식량·사료용 작물 품종을 개발하는 이유

현재 우리는 먹고 싶은 음식을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식량 부족에서 해방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보릿고개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죠.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보릿고개에 시달렸어요.

주곡인 쌀을 기준으로 한국이 식량 자급을 이룬 것은 1977년 이후에요. 1960년대 쌀 생산량은 10a(1000㎡)당 304kg 수준에 불과했고 연간 쌀 생산량은 350만톤(65년 기준) 정도로 2500만 명의 국민을 먹여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죠. 하지만 1971년 통일벼가 전국적으로 확대·보급되면서 71%에 이르는 엄청난 증산을 해내며 10a당 494kg, 연간 600만 톤(77년 기준) 생산이 가능해졌죠. 이로써 남은 쌀을 해외에 수출할 만큼 식량 자급을 이루게 됩니다.

이지은(맨 왼쪽) 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국립식량과학원의 설립 목적과 조직별로 맡은 업무를 소개했다.


더불어 벼의 품종 개발 목표도 대량 생산에서 보다 세분됐죠. 국립식량과학원 홍보관에는 쌀(벼)·밀·잡곡·감자·고구마 등 그간 국립식량과학원에서 개발한 다양한 작물이 전시돼 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작물마다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벼는 사람이 먹는 식량인 쌀을 생산하는 품종과 가축 사료용 품종으로 나뉘어요. 쌀의 경우 예찬·해들·영호진미 등 밥맛이 좋은 최고품질 쌀 품종, 눈큰흑찰·도담쌀 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거나 식이섬유 함량이 높은 기능성 쌀 품종, 쌀국수용인 새미면이나 양조용인 설갱 등 특정 용도로 개발한 가공용 쌀 품종 등으로 분류할 수 있죠.

가축 사료의 경우 수입산 의존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국립식량과학원은 식량 안보를 위해 사료용 작물 연구에도 힘씁니다. 사람은 벼의 알곡인 쌀만 먹지만, 가축은 벼의 잎과 줄기도 먹죠. 그래서 2016년 공개된 영우처럼 알곡뿐 아니라 벼 자체에도 영양성분이 풍부하며, 소가 먹었을 때 소화 흡수율이 우수한 품종을 따로 개발했어요.

벼는 사람이 먹는 쌀을 생산하는 품종과 가축이 먹는 사료가 되는 품종 등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120여 년간 국내에서 재배된 벼 품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재배지를 둘러봤어요. 품종 육성이 현대화되기 전인 1900년대 초반 재배하던 재래 품종 조동지부터 1971년 육성한 쌀 자급자족 일등 공신 통일벼, 2022년 수출용으로 개발한 자포니카종이지만 안남미처럼 알곡이 긴 아미쌀 등 모두 87개 품종을 봤죠. 그야말로 살아있는 벼 품종 박물관입니다.

유진 학생기자가 "최근 인도가 자국 내 물가 상승을 진정시키기 위해 쌀 품종 일부를 수출 금지했어요. 다른 나라도 인도처럼 곡물 수출을 금지하면 우리나라의 식량 가격이 폭등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이 궁금해요"라고 말했어요.

국립식량과학원 전시재배지에서는 약 120여 년 동안 국내에서 재배된 87종의 벼를 만날 수 있다.

"기후 변화와 국제 정세 등으로 곡물 가격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식량 안보의 중요성도 부각됐죠.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기준으로 제1주식인 쌀의 식량자급률은 84.6%로 높지만, 제2주식인 밀의 식량자급률은 1.1%, 콩은 23.7%, 옥수수는 4.2%예요. 쌀 이외의 식량작물의 자급률이 낮아 다른 나라에서 밀 등의 곡물 수출을 금지하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밀·콩 등의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수한 품종을 육성해 재배 기술과 함께 보급하죠."

이 연구사의 말처럼 곡물 가격 불안정이 지속되면 밀·옥수수·콩으로 만드는 음식의 가격뿐만 아니라, 가축의 사료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요. 이에 대비해 국립식량과학원은 다양한 종류의 작물을 개발해 농민들에게 보급하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홍보관에서 제빵용 밀 품종인 조경, 과자용 밀 품종인 고소, 사료용 청보리인 유연, 사료용 옥수수인 다청옥 등을 살펴봤어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열대 지역에 적응을 잘하는 벼 품종으로 개발된 아세미도 전시됐죠.

사람이 먹는 쌀, 가축이 먹는 벼 탄생 과정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작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될까요. 생물이 가진 유전적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거나 기존 품종을 개량하는 일을 육종(育種)이라 하는데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육종 중인 여러 작물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주곡인 쌀이 자라는 벼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어요. 인공교배실로 자리를 옮기자 서정환·박재령·박송희·강경민 작물육종과 연구사가 맞아줬죠.

벼의 모본에서 수술을 제거한 뒤, 부본 수술에서 나온 꽃가루를 수정하면 새로운 종자가 탄생한다.

박송희 연구사가 "육종은 쉽게 말해 새로운 씨앗을 만드는 일이에요. 사람처럼 벼에도 엄마·아빠가 있는데, 이를 각각 모본과 부본이라 해요. 밥맛·병충해 저항성 등 일정한 목표를 갖고 새로운 품종을 육종하는데, 이를 충족하는 우수한 형질을 가진 모본·부본을 인공적으로 교배해서 새로운 씨앗을 만들고, 목표로 하는 형질이 고정될 때까지 여러 세대를 반복해 유망한 계통을 육성하는 거죠. 세대 고정까지 걸리는 시간도 있고 생산력 검정, 지역 적응성 등 거쳐야 하는 시험 과정도 많아서 보통 10년 이상이 소요돼요"라며 벼의 육종 과정을 설명했어요.

모본에서 수술을 제거하는 모습. 수술을 완벽히 제거하지 않으면 교배해도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서정환 연구사가 육종 중인 벼의 모본·부본을 보여주며 "벼꽃은 수술 6개, 암술 1개로 이뤄져 있어요. 벼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꽃의 꽃가루가 스스로 암술머리에 붙어 열매·씨를 맺는 자가수분을 해요. 그래서 인공교배를 하려면 모본에서 벼꽃이 피기 전에 왕겨의 1/3 정도를 가위로 자른 뒤 수술, 즉 꽃가루주머니를 모두 제거해야 해요. 이러한 행위를 제웅(除雄)이라 합니다"라며 벼의 인공교배 과정 중 일부를 시연했죠.

제웅을 할 때는 핀셋으로 수술을 제거하는데요. 그 양이 많으면 진공흡출제웅기로 자동으로 뽑아냅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 연구사의 지도에 따라 진공흡출제웅기로 모본의 수술을 제거해 봤죠. "수술은 노란색이에요. 제웅이 끝난 뒤 혹시나 노란색이 보이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해요. 수술을 완벽히 제거하지 않으면 교배해도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죠."(서) 제웅을 마친 벼는 모본·부본·연구자 이름과 작업 날짜를 적은 종이봉투를 씌워 다른 꽃가루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세대단축온실에서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인공교배 후 자라고 있는 벼를 보여준 박송희(맨 오른쪽) 연구사.

벼는 빠르면 오전 10시, 늦으면 오후 2시까지 꽃이 피어요. 이때쯤 모본에 수정할 꽃가루를 품은 부본도 꽃이 피겠죠. 부본의 꽃가루를 채취해 모본의 암술에 잘 묻혀주면 수정되어 교배된 종자가 모본에서 자라죠. 이렇게 인공교배를 마친 여러 품종은 인공교배실 옆 세대단축온실에서 돌봅니다. 온실에 가니 박송희 연구사가 7월 20일 교배한 벼를 볼 수 있었죠. 자연적으로 성장한 벼의 낱알과는 달리 인공교배한 벼의 낱알은 껍질 중앙에 제웅의 흔적이 남아있어요.

목표에 부합하는 형질을 가진 모본·부본을 교배시켰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벼는 생물이기 때문에 자라면서 크기·생산성·질병 저항성 등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많이 생겨요. 예전에는 원하는 형질이 고정될 때까지 오랜 시간 인공 교배를 반복해야 했지만, 요즘은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달로 일정 부분 예측할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이 과정을 알아보러 유전육종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연구실에는 각종 실험 장비들이 설치돼 있었는데요. 강경민 연구사가 "식물도 사람처럼 체세포 안에 유전자의 본체인 DNA가 있어요. 여러분은 전기영동 기술과 자외선반응기를 이용해 8개의 샘플 중 키다리병에 강한 DNA를 가진 벼를 찾는 실험을 해볼 거예요"라고 설명했죠.

강경민(맨 왼쪽)·박송희(가운데) 연구사가 유정현 학생기자에게 전기영동 기술을 활용해 벼의 DNA 조각을 크기별로 분리하는 기술을 설명했다.

전기영동이란 양극(+)과 음극(-)을 가진 전기영동장치와 전류가 잘 흐르도록 돕는 전해질 용액인 버퍼, 균일한 한천 입자들이 박힌 필터처럼 생긴 겔(gel)을 이용해 DNA를 크기별로 분류하는 기술이에요. 벼 키다리병은 벼가 정상적으로 자란 벼보다 1.5배 크게 자라는 병으로, 웃자란 벼는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게 되며 심하면 말라죽기도 하죠.

박송희·강경민 연구사가 육종 중인 8개 계통의 벼잎에서 키다리병 저항성 유무 정보가 담긴 DNA를 추출한 시료를 보여줬어요. 이 시료는 벼잎에서 DNA를 추출한 후, 검출을 원하는 표적 물질을 증폭하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을 통해 준비했죠.

이이삭 학생기자가 육종 중인 8개의 벼잎에서 추출한 키다리병 저항성 유무 정보가 담긴 DNA 조각들을 전기영동 기술을 활용해 크기별로 분리했다.

스포이드 역할을 하는 피펫으로 8개의 시료와 DNA 조각의 크기를 재는 자의 역할을 하는 마커를 겔에 넣고, 전기영동장치에 전류를 공급합니다. DNA 구성 성분 중 하나인 인산은 음(-)전하를 띄기 때문에 전류가 흐르면 DNA가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죠. 자석이 같은 극은 밀어내고, 다른 극은 서로 끌어당기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쉬워요. 겔은 필터처럼 생겨서 길이가 짧은 DNA 입자일수록 긴 입자들보다 방해를 덜 받아 양극으로 빨리 이동합니다.

이렇게 분류한 DNA 조각은 맨눈으로는 잘 안 보여요. DNA 조각이 들어있는 겔을 자외선 반응기에 넣고 전자기파인 UV를 쐬어야 눈으로 DNA 조각들을 관찰할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8개의 DNA 조각이 든 겔을 자외선 반응기에 넣자 유난히 길이가 긴 2개의 DNA 조각이 보였습니다. 이건 키다리병 유전자가 있다는 뜻이죠. 이지은 연구사가 "원래 이런 결괏값을 보려면 벼를 재배한 뒤 키다리병 균을 감염시켜 저항성이 있는 개체를 일일이 선별해야 해서 오래 걸렸지만, PCR·전기영동장치·자외선 반응기를 활용해 DNA를 분석하면 시간이 단축되죠"라고 설명했어요.

조유진 학생기자가 DNA 조각들이 들어있는 겔을 자외선 반응기에 넣고 전자기파인 UV를 쐬며 관찰하고 있다.

이렇게 인공교배와 질병 저항성 실험까지 마친 벼는 밥을 짓는 데 사용하는 품종일 경우 밥맛도 테스트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식미평가실로 자리를 옮겨 밥맛 검정에 도전했죠. 박송희·강경민 연구사가 다섯 가지 종류의 쌀로 지은 밥이 담긴 접시와 평가지를 나눠줬어요.

"접시 중앙에 있는 쌀을 비교군으로 해서 접시 가장자리에 있는 1부터 4까지 번호가 매겨진 쌀의 향·윤기·색깔·찰기·질감·밥맛을 평가해 보세요. 그리고 어떤 쌀이 비교군과 동일한 쌀인지 알아내면 됩니다. 연달아 다른 종류의 쌀을 맛보면 맛과 향이 입 안에서 섞일 수 있으니 한 가지 쌀을 맛본 뒤에는 물을 마시고 다른 쌀을 맛보세요. 이렇게 밥맛 검정을 할 때마다 각 시료의 전반적인 결과를 취합해 평가란에 총평을 표시하면 됩니다."(박)

밥을 짓는 데 사용하는 벼 품종은 밥맛도 테스트한다. 검정기준은 향·윤기·색깔·찰기·질감·밥맛 등이다.

천천히 신중하게 하나하나 맛을 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3번이 비교군과 동일한 품종이라고 입을 모았어요. "정답이에요. 비교군은 다른 품종들에 비해 쌀알이 1.3배가량 크고 밥을 지었을 때 윤기가 돌고 밥맛이 좋다는 특징이 있는 신동진이에요. 3번 쌀밥도 신동진으로 지은 것이죠. 1번은 삼광이라는 품종인데 쌀알이 맑고 투명하며, 찰기가 적당히 있고 부드러운 식감을 지녀 밥맛이 우수해요. 둘 다 농민들에게 보급해서 좋은 결과를 거둔 대표적인 품종이죠. 2번은 추청, 4번은 영호진미라는 품종이에요."

이삭 학생기자가 "신품종은 어떤 과정을 거쳐 농민들이 재배하게 되나요?"라고 물었어요. "각 도 농업기술원 및 국립종자원과의 협력을 통해 종자를 증식해 농민들에게 보급해요."(박)

목표로 하는 형질을 고정할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는 인내심과 쌀밥의 향·윤기·색깔·찰기·질감·밥맛을 가려내는 섬세한 미각까지.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과 안보를 위해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는 농업연구사는 어떤 직업인 걸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벼 인공교배 과정 중 하나인 제웅, 전기영동 기술을 활용한 벼 DNA 분석, 품종별 밥맛 검정 등 벼 육종 전문가의 업무 일부를 체험했다.

유진: 벼·밀 등 작물을 육종하는 전문가는 농업연구사와 같은 개념인가요.
박송희 연구사(이하 박): 농업연구사는 작물 육종가가 택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예요. 농업연구사는 공무원의 직급 중 하나로, 작물 육종가 외에도 여러 직렬이 있죠. 부서에 따라 재배 기술이나 병해충을 연구하기도 하고, 저희처럼 육종 연구를 수행하는 부서도 있어요. 작물 육종가는 공공기관 외에 대학·종묘 회사 등 민간 부문에서 근무하기도 해요.

이삭: 농업연구사가 되려면 대학교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해야 하나요.
박: 농업 관련 학과를 전공하면 좋아요. 농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분야가 다양하기에, 본인 적성에 맞는 과를 선택하면 됩니다. 하지만 농학과 관련 없는 학과를 전공해도 해당 직렬의 시험에 합격해 공채로 입사하면 농업연구사가 될 수 있어요. 다만 업무와 전공이 다른 경우 개인적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죠.

정현: 새로운 품종을 육종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박: 최근 기후변화와 식량 안보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어요. 따라서 작물의 재배 안정성이나 수량성 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와 더불어 소비자의 선호도 역시 중요한 육종 목표 중 하나입니다.

유진: 그간 개발한 벼 신품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품종을 꼽는다면요.
박: 저는 공채로 입사해 2022년 근무를 시작했어요. 한 품종을 개발하려면 약 10년 정도 소요되기에 아직 개발한 품종은 없어요. 다만, 같은 연구실에서 저의 멘토이신 박사님이 개발한 참동진이 기억에 남아요. 앞서 여러분은 밥맛 검증에서 신동진으로 한 쌀밥을 맛봤죠. 참동진은 신동진의 흰잎마름병 저항성을 개선한 품종이에요.

서정환 연구사: 벼에 치명적인 전염병인 흰잎마름병은 주로 벼 잎에 난 상처에 세균이 감염돼 발생해요. 코로나19에 여러 변이가 있듯 흰잎마름병도 국내에서 발병이 많은 네 가지의 변이가 있는데, 신동진은 그중 세 가지 변이에 저항성이 있어요. 신동진의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흰잎마름병 네 가지에 저항성이 있는 품종이 참동진이죠.

우리나라 주곡인 쌀은 용도별로 다양한 품종이 벼 육종 전문가들에 의해 개발됐다.

이삭: 농업연구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과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요.

박: 다른 선배님들께 여쭤보면 아무래도 본인이 만든 품종이 많이 보급됐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하는 일을 잘해내고 계속 발전해 간다면 저도 그런 순간이 오겠죠. 아무래도 벼를 연구 재료로 하다 보니, 더운 여름에는 밖에서 일하는 게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순간은 금방 지나고 쉬이 잊히는 편이라서 좋은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죠.

정현: 만약 쌀이 부족해지면 우리나라 재배 환경에서 대체종으로 어떤 작물이 적절한가요.
강경민 연구사: 현재 국내 재배되는 식량 작물은 벼 외에도 밀·보리·감자·고구마 등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여름 강수량이 높아서 물에 젖거나 잠겨도 잘 버티는 벼가 농업 환경에 적합해요. 식문화 역시 쌀 중심이죠. 그러니 앞으로도 벼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용도로 개발된 작물부터 새로운 품종을 육종하기 위해 땀 흘리는 농업연구사들의 이야기까지.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우리나라 식량 개발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아봤는데요. 기후 변화와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식량 주권 확보가 중요해진 시기이니만큼 우리에게는 어떤 작물이 있으며, 이들이 미래에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밥맛이 좋은 쌀 품종 7

「 우리나라 주곡인 벼는 지역별 재배 환경에 맞게 개발됐기 때문에 종류가 매우 다양해요. 지역별로 밥맛이 좋다고 알려진 품종은 무엇인지 개발 순서대로 알아봅시다.

국립식량과학원


오대(1980)
강원도 오대산에서 따와 오대벼라고 이름을 지었다. 중부 중산간지, 중부 평야지, 산간 고랭지에 알맞은 품종으로 강원도에서 주력으로 재배한다. 쌀알이 약간 큰 편이며 고슬고슬한 식감이다.

국립식량과학원

신동진(1999)
개발 당시 재배면적 1위였던 동진벼의 단점을 보완해 품질 특성이 우수하고 수량이 많아 신동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라도의 주력 벼 품종으로, 쌀알이 굵고 밥을 지었을 때 윤기가 돌며 밥맛이 좋다.

국립식량과학원


삼광(2003)
도열병 등 벼가 취약한 주요 3대 병에 강해 삼광이란 이름이 붙었다. 중부 평야지, 남부 중간지에 알맞은 품종으로 충청도가 주 재배지다. 찰기가 있어 밥맛이 뛰어나고 외관이 맑고 깨끗하며 투명하다.

국립식량과학원


영호진미(2009)
영남과 호남에서 우수한 밥맛을 인정받아 '영호진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부 평야지에 적합해 경상도 지역에서 주력으로 재배한다. 밥에 윤기가 많고 식어도 찰지고 부드러운 질감이 유지된다.

국립식량과학원


예찬(2017)

신품종선정심의회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예찬이란 이름이 붙었다. 충남 이남 평야지 및 남서 해안지에서 재배하기 적합하며, 쌀알이 맑고 투명하고 단백질 함량이 낮아 찰진 식감이다.

국립식량과학원


해들(2017)
해들은 '해'와 벼가 자라는 '들'이란 뜻으로, 가을 햇살에 잘 여문 햅쌀이란 의미다. 중부 평야지에 적당한 품종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주력으로 재배한다. 단맛과 함께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국립식량과학원


참동진(2020)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 중인 신동진의 대체 품종으로 전라도 평야지와 서남부 해안지에 적합하다. 신동진의 우수한 밥맛 등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흰잎마름병 등에 훨씬 강하다.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식량은 우리 생활에 아주 밀접하고 중요한 것이라 국립식량과학원 취재를 기대했어요. 뉴스에서나 보던 연구실에 직접 가보니 신기했죠. 연구실에서 전기영동장치와 자외선반응기로 벼의 DNA를 관찰하는 체험을 했는데, 연구사님들이 결과를 보고 대학생들보다 잘했다고 하셔서 뿌듯했어요. 국립식량과학원 야외에 있는 전시재배지에도 가봤는데 수많은 종류의 벼가 있어서 웅장하고 놀라웠어요. 그중 최근에 개발된 품종을 보니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쌀이 계속 변화하고 종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홍보관에서 본 국내산 곡식으로 만든 음식들은 다양하고 정말 먹음직스러웠어요. 이런 맛있는 식량들이 미래에 구하기 힘들어진다면 슬플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소중한 식량을 생각하게 된 뜻깊은 취재였습니다.

유정현(서울 목동초 5) 학생기자

최근 환경 문제도 심각해지고, 가뭄도 자주 발생해서 우리나라 농업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지만, 정작 우리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하지만 국립식량과학원 취재에서 종자 개량과 여러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농업은 계속 이어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농업연구사님들이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힘써주고 있어서 안심됐어요. 국립식량과학원의 곳곳을 둘러보며 우리나라가 이런 좋은 연구 설비와 종자까지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이이삭(경기도 홈스쿨링 중 2) 학생기자

우리가 먹는 식량을 주로 연구하는 국립식량과학원에 갔어요. 이번 취재로 벼 품종 육종에 대한 여러 과정을 살피고, 인공 교배를 하는 과정도 체험했죠. 벼꽃 안에는 수술 6개와 암술 1개가 있어요. 수술에서 꽃가루가 나와서 암술에 닿으면 수정돼 열매를 맺죠. 서로 다른 형질을 가진 두 개의 벼를 수정하려면 모본에서 수술을 제거한 뒤, 부본의 꽃가루를 털어 서로 수정시켜야 해요. 엄청 더운 날씨에 햇볕 아래서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힘들 것 같았어요. 전시재배지에서 여러 종류의 벼도 구경했는데, 품종마다 고유의 식감과 맛이 있다고 해요. 그리고 사람이 먹는 품종 외에도 가축이 먹는 사료용도 있어요. 저는 쌀이 나는 벼의 종류가 몇 가지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국립식량과학원에 취재하러 오길 잘한 것 같아요.

조유진(인천 부원초 6) 학생기자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국립식량과학원, 동행취재=유정현(서울 목동초 5)·이이삭(경기도 홈스쿨링 중 2)·조유진(인천 부원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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