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축구공 쫓아 뛰며 상황 파악…공정한 판정으로 경기 운영하죠
스포츠 경기에서 규칙 준수 여부나 승패를 판정하는 사람을 ‘심판(審判)’이라고 합니다. 종목에 따라 심판을 영어로 ‘Referee(레프리)’ ‘Umpire(엄파이어)’ ‘Judge(저지)’ 등으로도 부르죠. 축구처럼 경기장 내에서 선수들과 함께 움직이며 판정과 경기 운영에 적극 개입하는 심판은 보통 ‘레프리’라고 해요. 축구 경기에서 심판의 판정은 경기 결과에 중요하게 작용하는데요.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독일전에서 김영권 선수의 선제골이 그 예죠. 처음에는 오프사이드로 골 취소됐지만, 주심의 VAR(Video Assistant Referees·비디오 보조 심판) 판독 결과 골로 인정됐거든요.
일반적으로 축구 경기에는 주심, 부심 2명, 대기심 등 총 4명의 심판이 투입돼요. 주심은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같이 뛰며 모든 판정을 내립니다. 부심은 양쪽 터치라인에서 부심기(깃발)을 들고 반칙 상황 등을 주심에게 전달하며, 주심이 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 의견을 주죠. 대기심은 주·부심이 경기 중 뛸 수 없게 되면 대신 투입되며, 평상시 선수 교체·추가시간 전광판 조작과 양 팀 벤치가 과열되는 것을 막고 그 상황을 주심에게 전달해요. 각 대회 및 경기 규정과 VAR 시스템 유무에 따라 추가 및 예비 부심, 흔히 VAR 심판으로 불리는 VMO(Video Match Officials) 등이 투입되기도 합니다.
구시연·왕희재 학생기자가 축구 심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현재 프로축구 K리그2(2부리그)·WK리그(여자프로축구리그),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주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오현정 심판을 만났어요. 오 심판은 지난 8월 20일 폐막한 2023 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C조 스페인과 잠비아의 경기 주심을 맡았는데요. 이는 1999·2003년 미국 여자 월드컵 임은주 심판, 2011년 독일 여자월드컵 차성미 심판에 이어 한국 여자 축구 심판으로는 역대 3번째로 여자 월드컵 경기 주심을 맡은 겁니다. 또 2017년 대한축구협회(KFA) ‘올해의 여자심판상’을 받았고 2019년부터 4년 연속 ‘여자 스페셜 레프리’로 선정된 바 있죠.
KFA '심판 규정'에 따르면 국내 축구 심판 자격은 1~5급으로 나뉩니다. 5급 심판이 되려면 만 14세 이상, 교정시력 좌우 1.0 이상이어야 하며 KFA 심판위원회에서 상시 실시하는 축구 심판 자격증 코스에 따라 이론·체력·실기 교육을 받고 평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후 이론 평가·실전 평가·체력 측정·경기 수·포상·징계 등 급수별 승급 시험 심사를 받아 승급하죠. 5급 심판의 경우 1년 이상 활동, 최근 2년 이내 30회 이상 주·부심으로 경기 참여(그중 10회 이상 주심 경기 필수) 등을 해야 4급 승급 시험 응시 자격을 얻을 수 있어요.
남자의 경우, 5급 심판은 동호인 경기 주·부심과 초등부(U-12)경기 주심, 4급 심판은 초등부(U-12) 경기 주심과 중등부(U-15) 경기 부심, 3급 심판은 중등부(U-15) 경기 주·부심과 고등부(U-18) 경기의 부심, 2급 심판은 고등부(U-18) 경기 주·부심과 대학부 경기 부심, 1급 심판은 대학부·일반부 경기 주·부심을 맡을 수 있어요. 상위급 심판은 하위급 경기 주·부심을 할 수 있고, 여자 심판이 남자 체력측정을 통과했을 경우 남자 심판과 동일하게 경기를 관장하죠.
KFA에 따르면 2023년 8월 21일 기준 KFA에 등록·활동 중인 축구 심판은 총 2741명이에요. KFA 심판위원회가 2022년 개인별 평점 순위와 체력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선정한 2023년 프로축구 K리그(1·2부) 주·부심은 총 61명이죠. 우수한 기량의 여자 심판들이 남자 경기에 뛸 수 있도록 한 FIFA의 권고에 따라 체력 테스트를 통과한 4명의 여자 심판도 각 리그(K리그2 주심 2명, 세미프로 K3·K4리그 주·부심 각각 1명)에 투입됐죠. 그중 K리그2 주심을 맡은 오 심판과 소중 학생기자단이 축구 심판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시연 축구 심판이 된 계기가 궁금해요.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로 활약했어요. 고2 때 부상으로 오래 재활하면서 슬럼프를 겪었죠. 더는 선수 생활을 못 할 것 같아 일반 대학에 가서 축구와 관련된 다른 길을 찾기로 했어요. 주변에 축구 심판을 하는 선후배 동료들의 추천을 받고 흥미가 생겨서 시작했는데, 축구 심판이 된 지 어느덧 16년이 됐어요. 2015년부터 국제 심판으로 활동하며 이번에 처음으로 여자 월드컵에도 나가게 돼 기뻤습니다.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 당시 심판 최종 명단에 들지 못했던 한을 풀었죠.
희재 국제 심판은 국내 심판과 다른가요.
국내 1급 심판 가운데 KFA 심판위원회가 FIFA에 추천해, FIFA의 체력·영어 테스트, 경기 분석 능력·실전 경기 평가 등을 통과한 사람만 국제 심판이 될 수 있어요. 국내 심판은 국내 경기만, 국제 심판은 국내·국제 경기에 참여할 수 있죠. FIFA 월드컵 심판은 이전 월드컵이 끝난 다음 해부터 FIFA 선발 과정을 거쳐요. 각 대륙 축구연맹(아시아는 AFC)은 대륙 내 국제 심판들을 대상으로 여러 테스트를 해서 추천 명단을 FIFA에 전하죠. FIFA는 이들을 대상으로 각종 훈련·세미나 등 테스트를 하고 대회 시작 6~7개월 전 최종 명단을 발표해요. 최종 명단에 든 심판들은 활약 여부에 따라 월드컵 본선 경기를 배정받죠. 이번 여자 월드컵에 참여한 한국 여자 심판은 저를 포함해 주심 2명, 부심 3명이에요. 주·부심만 따지면 우리나라가 미국과 함께 가장 많았죠.
시연 여러 축구 심판 중 왜 주심을 하게 되셨나요.
경기를 전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희열을 느껴서 주심을 선택했어요. 승급 응시 자격에 주·부심으로 몇 경기 소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그때 내게 어울리는 심판 포지션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죠. 1급 심판이 되면 심판 포지션을 정해야 해요. 규정상 강제하는 건 없지만, 특정 심판 포지션의 경험치를 많이 쌓아야 평가가 잘 나올 수 있어요. 만약 K리그1에서 주심이 갑자기 부심을 한다고 하면 다시 처음부터 부심 능력을 평가받아야 하죠.
희재 경기에 나서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나요.
매일 오전 체력 및 회복 훈련을 해요. 특히 달리기에 집중하죠. 선수는 공이 자기 발 앞에 올 때 뛰어도 되지만, 심판은 전후반 90분 내내 공을 쫓아가야 해요. 그래서 축구 선수 시절보다 더 많이 체력 훈련을 하고 있어요. 각 팀 경기를 비디오로 분석하며 팀 전술, 선수 성격 등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요. 팀 전술에 따라 움직이면 공이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있어 판정을 정확히 내릴 수 있는 곳에 있을 수 있죠. 선수 성격을 알면 항의 등을 할 때 문제 해결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경기장에서는 그라운드 상태와 각종 심판 장비가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요. 또 선수들처럼 경기 전 워밍업을 해 부상을 방지하죠.
시연 올바른 판정에 대한 부담감은 어떻게 극복하나요.
경기 중 판정을 잘못 내린 걸 깨달아도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요. 계속 마음에 두면 보상 심리가 생길 수 있거든요. 저도 관중 입장에서 오심이 나오면 아쉽고 화가 나요.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지만, 심판은 자신의 판정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해요. 심판은 좋은 소리보다 싫은 소리를 더 듣는 직업이니까요. 오심에 대한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죠. 왜 내가 그런 판정을 했는지, 판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각하는 게 좋은 심판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시연 축구 심판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선수 때는 팀에서 훈련했는데 축구 심판을 하면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하는 걸 혼자 다 해야 해요. 그게 힘들어서 주변 심판 동료들이나 심판을 꿈꾸는 친구들과 훈련하거나 훈련 방법도 공유하죠. 앞으로도 제 경험과 노하우들을 후배들에게 나누려고 해요. 후배들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죠. 축구 심판은 KFA 소속이지만 실상은 프리랜서예요. 월급이나 연봉이 아니라 경기(게임)수당을 받죠. 주심의 경우 K리그1 1게임당 약 200만원, K리그2는 약 100만원 정도예요. 주심은 경기 배정에 따라 한 달에 많아야 2경기 정도 뛰어요. 그래서 경기가 없는 날에는 직장을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심판도 있죠.
희재 축구 심판을 하며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경기를 마치고 양 팀 감독들이 ‘수고하셨다’고 한마디 했을 때예요. 그 말은 경기 판정에 불만이 없다는 뜻이거든요. 심판이 그라운드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정도로 경기가 물 흐르듯 진행됐다면, 심판이 경기를 잘 운영했다고 생각해요.
시연 축구 심판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높은 경기 규칙 이해력과 누구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판정이에요. 경기 집중력도 중요해요. 경기마다 페널티킥·골 득점·퇴장 여부 등 승부를 가르는 판정이 나오거든요. 판정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위치나 각도에 있지 않으면 상황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 경기 집중하려고 해요. 경기 중 착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장비를 통해 부심·대기심 등 다른 심판들과의 소통도 잘해야 하죠. 주심이 보지 못하거나 애매한 반칙 상황에서 다른 심판들의 의견이 필요하거든요. 심판진의 호흡이 척척 맞으면 경기도 그만큼 잘 진행된답니다.
희재 축구 심판이 꿈인 소중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라면 축구 심판에 도전해 보길 바라요. KFA나 KFA 산하 시·도협회에서 상시 신인 심판(5급) 자격증 코스를 열어요. 기본적으로 중요한 건 체력 훈련, 경기 규칙 이해예요. 추가로 어린 친구들은 영어를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국제 경기를 하다 보면 외국 심판·선수·관계자 등과 영어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국제 심판이 꿈이라면 영어를 배우는 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저는 평소에 축구를 좋아하고 유명 축구 선수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 취재가 더 기대됐죠. 즐겨보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오현정 심판님을 만나게 돼 꿈만 같았어요. 특히 오 심판님이 심판 물품들을 직접 가져오셔서 같이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웠죠. 축구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선수 못지않은 체력 훈련, 정확한 판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 축구 경기를 볼 때 심판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 같아요.
구시연(서울 월촌초 6) 학생기자
오현정 심판님과 인터뷰하며 축구 심판이라는 생소한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오 심판님이 축구 심판이 된 계기가 인상적이었죠. 부상 때문에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없다고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은데, 포기하지 않고 멋진 축구 심판이 되셔서 기뻤어요. 저도 제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들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왕희재(서울 마포초 5) 학생기자
」
글=박경희 기자 park.kyunghe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오현정, 동행취재=구시연(서울 월촌초 6)·왕희재(서울 마포초 5) 학생기자, 자료=대한축구협회, 장소협조=풋볼팬타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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