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요즘 뭐 봐?]‘연인’, 임금보다 백성 지키는 남궁민, 안은진에 설득된 이유

김은구 2023. 8. 28.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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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금토드라마 '연인' 포스터(사진=MBC 제공)

“새야 새야 노랑새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게? ‘능군리 길채 애기씨요’라고 생각하면 짹짹짹짹, ‘다른 애기씨요’라고 생각하면 물구나무를 서 보련?” MBC 금토드라마 ‘연인’에서 길채(안은진)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에 나오는 이 장면은 여러모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꺾는 작용을 한 게 사실이다. ‘백설공주’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라니! 요즘처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에 대한 대중적 요구를 떠올려 보면 이런 시작은 위태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장현(남궁민)의 등장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지던 감정이다. 오랑캐들이 쳐들어온다는 이야기에 연준(이학주) 같은 성균관 유생들이 박차고 나가 명나라에 의리를 지키고 오랑캐를 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다. “명나라가 반드시 오랑캐를 이긴다는 보장이 있소?” 

게다가 초반 서사는 장현과 길채 그리고 연준과 은애(이다인)의 밀고 당기는 한가로운 멜로에 치중되었다. 연준은 은애를 연모하지만, 연준을 짝사랑하는 길채와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는 장현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래서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평이한 사랑타령처럼 보인 ‘연인’의 시청률은 2회 4%대로 떨어졌다. 그만큼 기대에 못 미쳤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이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이 벌어진 후 장현과 길채가 보여줄 반전과 성장의 서사를 위한 밑밥이었다는 건 3회에 이르러 금세 드러났다. 장현이 오랑캐들에 의해 남한산성에 갇혀있는 임금을 구하러 가자는 연준의 의견에 반대하며 차라리 피난을 가라고 한 건, 그가 전쟁과 오랑캐들의 실상을 알고 있어서다. 그렇게 무모하게 뜻만 갖고 전쟁에 나가는 건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 게다가 장현은 구해야 할 사람은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친 임금이 아니라, 임금이 도망침으로써 버려진 백성들이라고 생각한다.

길채 또한 전쟁이 터지면서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강인한 면모들을 드러낸다. 평시 오로지 낭군님 생각만 하던 모습 대신 은애와 종종이(박정연), 방두네(권소현)를 이끌고 피난을 가며 생존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다. 길채의 생존 투쟁과 그 길채를 비롯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칼을 뽑아 든 장현의 변신은 그래서 초반의 그 한가로운 모습에서의 반전 효과를 더욱 극대화해 보여준다. 시청자들이 장현과 길채에 점점 빠져들게 된 이유다. 

특히 ‘연인’에 시청자들이 설득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지금의 시대정서와도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극들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장선 영웅 서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나라 같은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는 역사적 영웅들보다는 서민들을 위한 영웅에 더 공감하게 됐다. 장현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임금을 구하자 나서는 연준과 대비된다. 한 마디로 ‘임금님보다 내 임’이 더 소중하다는 게 이 사극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다. 그래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연인’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할 터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와 래트 버틀러를 닮은 길채와 장현은, 병자호란이라는 참담한 전쟁 상황 속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면서 생존하기 위한 자신들만의 전쟁을 벌인다. 물론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 같은 작품에서 그려진 것처럼 이 병자호란 상황에서 최명길(김태훈)과 김상헌(최종환) 같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신하들의 대립과 백성을 지키기는커녕 제 한 몸 지켜내지도 못하는 무능한 왕 인조(김종태)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장현과 길채 같은 평범한 연인들이 이토록 힘겨운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하는 그 원인으로 다뤄진다. 

우리가 흔히 ‘국뽕’이라고 하는 표현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드러내는 것처럼, 나라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사라진 시대다. 갈수록 생존경쟁은 치열해지고, 외교문제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흘러가며, 갖가지 사건들이 매일 같이 터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지금의 대중은 나라에 대해 그리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 이른바 ‘각자도생’해야 겨우 생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현실 아닌가. 나라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연인’의 장현과 길채가 그려가는 서사에 지금의 시청자들이 설득된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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