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종이 빨대의 역습
미달' 연구 결과까지… 설득
명분 확보, 혼란 보완책 필요
카페에서 커피를 자주 마시는 편인데 종이 빨대를 쓸지 말지 늘 고민한다. 무엇보다 커피에서 종이 특유의 이상한 맛이 나기 때문이고, 빨대가 눅눅해지는 그 느낌도 별로다. 플라스틱 빨대는 이제 카페 내에서 전면 금지됐으니 환경보호와 일상의 불편 사이에서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환경부가 발표한 규제 계도기간 시한은 11월 23일이다. 그 이후 카페 등의 식품접객업장이나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쓰거나 무상으로 제공하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시한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종이 빨대를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고, 심리적 저항은 더 커지고 있다. 왜 그럴까.
일단, 종이 빨대의 효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더위를 달래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종이 맛을 느껴야 하는 경험은 불편 그 자체다. 그래도 플라스틱 폐기량이 늘었다니까 환경보호에 동참해보자는 의미로 불편을 감수했는데, 종이 빨대 사용을 납득할 수 있는 명분도 불확실하다.
넷플릭스 다큐 ‘씨스피라시’는 연간 900만t에 달하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중에 플라스틱 빨대 비중이 0.03%에 불과하다고 소개했는데 이는 미국 호주 연구자들의 계산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의 절반가량은 폐그물과 폐어구들이다. 다큐에서는 상업용 어선의 무분별한 어업활동을 제한하지 않은 채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 금지로 해양생물과 지구를 지킬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빨대가 코에 꽂힌 바다거북이 발견된 이후 촉발된 플라스틱 규제 이면에 더 큰 진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연구들은 종이 빨대가 친환경에 미달한다는 근거도 속속 제시하고 있다.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플라스틱 방수 코팅을 하는데, 재활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분해되지 않는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어 인체와 환경에 모두 해롭다는 내용이다. 이쯤 되면 종이 빨대 사용으로 지구를 지키자는 건 친환경이 아닌데 친환경인 척하는 ‘그린 워싱’ 구호일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빨대만은 정말 줄여야 한다면 파스타 빨대나 쌀 빨대 같은 생분해성 대체품은 실효성이 있지 않을까. 여기에도 자영업자들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손님들의 불만을 의식해 종이 빨대가 아닌 다른 대체품을 쓰자니 높은 단가가 고민이고 그렇다고 플라스틱 빨대를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스테인리스 빨대나 유리 빨대도 위생 문제나 파손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정부는 자영업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을까?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플라스틱도 아니고 종이 빨대도 아닌 좋은 대안은 없을까. 우리 취재에 응했던 한 교수는 환경 보호 차원에서 아예 빨대를 쓰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깨달은 바가 있어서 몇 번 시도해봤는데 얼음이 많이 들어간 음료들은 역시 마시는 게 쉽지는 않았다. 텀블러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놓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오히려 일회용 플라스틱 컵보다 환경에 해롭다는 ‘리바운드 효과’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유독 종이 빨대에 대한 저항이 심한 것은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위만으로는 부족하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부정하는 이들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이 빨대가 상징하는 플라스틱 규제 정책이 왜 민심과 괴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계도기간이 끝나기까지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특히 종이 빨대 사용 문제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부분이다. 이를 정책으로 전환했을 때 설득할 명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고, 예상되는 혼란에 대한 보완책도 추가돼야 한다. 바다거북의 코에 꽂힌 플라스틱 빨대 이미지에 갇혀 준비되지 않은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백상진 뉴미디어팀장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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