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의 미래를 묻다] 열병에 허덕이는 지구, 파국의 티핑 포인트 다가오나

2023. 8. 2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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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물리학부 교수

거칠게 말해, 지구는 일종의 생명체다. 아쉽게도, 이 멋지고 도발적인 말은 필자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영국의 화학자·지구과학자, 그리고 생물물리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이 한 말이다. 러브록은 1970년대 이른바 ‘가이아 가설’을 정립했다.

특히, 그는 1979년 출간한 『가이아: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에서 지구가 단순한 행성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한 생물·대기·대양·토양 등이 모두 밀접하게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했다. 이 범지구적 유기체가 바로 가이아다. 참고로,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 지구는 모든 것 연결된 생명체
모든 물질은 지구 안에서 순환
날이 갈수록 깨지는 탄소 균형
‘평균 1.5도 상승’ 무시 말아야

점점 더 주목받는 가이아 가설

인천 서구 경인아라뱃길에서 바라본 화석연료 발전소 굴뚝 모습. 대표적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연합뉴스]

가이아 가설은 제안된 이후로 지금까지 과학계에서 활발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가이아 가설은 기후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지구과학자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으나, 예상할 수 있듯이, 생물학자들로부터 날 선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에도 가이아 가설은 현재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가이아 가설의 핵심은 무엇인가. 가설의 핵심은 지구가 마치 생명체처럼 자기 자신의 상태, 특히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정한 온도는 생명의 필수 조건이다.

인간의 경우, 정상 체온은 대략 섭씨 36.5도다. 만약 체온이 이보다 1.5도 더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아이를 키워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체온이 섭씨 38도가 되면 난리가 난다. 아이를 병원에 데려 가야 하고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여야 한다. 다행히 대부분의 경우에 며칠 안에 끝나기는 하지만 그러는 사이 모든 일상은 무너진다.

그런데 요새 지구가 심상치 않다. 지구의 온도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7월 지구의 월평균 온도는 사상 처음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았다. 2015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200여 나라가 가입한 파리협정은 지구의 연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언젠가 한 번은 공룡 오줌이었던 물

잠깐, 여기 질문이 있다. 지구 온난화는 정말 인류가 저지른 일이 맞나. 당연한 말 같지만, 지구의 거의 모든 물질은 우주 밖으로 나가거나 우주 밖에서 들어오지 않으므로 그 안에서 순환된다. 지구 안에서 순환되는 중요한 물질로는 대표적으로 물과 탄소가 있다.

물과 탄소 순환에서 인류, 아니 생물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선, 물 순환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물 순환은 기본적으로 육지와 바다의 물이 증발해서 수증기가 되고 또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로 떨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 순환 과정에서 생물이 하는 역할은 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물은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공룡의 오줌이었다. 공룡은 크기가 컸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구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현재 마시고 있는 물은 거의 확실히 공룡의 오줌이었던 셈이다.

탄소 순환은 조금 더 직접 생물과 얽혀 있다. 탄소 순환은 기본적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유기물로 변환되고, 이 유기물을 동물이 섭취한 후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산소와 결합해 다시 이산화탄소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되는 과정을 거친다. 또 다른 탄소 순환 과정은 미생물이 동식물의 사체를 분해해 그 안에 저장되어 있던 탄소가 대기 중에 방출되거나 토양 속에 저장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를 가져오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따라서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소 순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동식물 혹은 토양 속에 저장된 탄소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이러한 균형이 급속도로 깨지고 있다. 인류는 토양 속에 매장되었던 막대한 양의 화석 연료를 채굴하여 태움으로써 그 안에 저장된 탄소를 대규모로 대기 중에 방출하고 있다. 가이아 가설에 따라 지구가 일종의 생명체라면 지구는 점점 더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이다.

막대한 땅속 탄소 끄집어낸 인류

그렇다면 앞서 말한 1.5도의 온도 상승은 정말 지구라는 환자에게 파국을 가져올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국을 가져오는 온도가 정확히 1.5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1.5도는 상징적인 의미다.

하지만 정확한 온도가 무엇이든 급격한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 현재 우리가 파국으로 넘어가는 티핑 포인트에 얼마나 가까이 근접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물리학에는 ‘상전이’(相轉移·phase transition)라는 개념이 있다. 문자 그대로 시스템의 상태가 변한다는 뜻이다. 고체인 얼음이 녹아 액체인 물이 되고, 이 물이 끓어서 기체인 수증기가 되는 각각의 단계가 바로 상전이 과정이다.

상전이가 일어날 때 발생하는 특징적인 현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시스템의 한구석에서 발생한 요동이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구석까지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다. 전문적으로 말해, 상관 길이가 발산하는 것이다. 요새 지구의 한 지역에서 발생한 자연 재난이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파국의 티핑 포인트에 너무 가깝게 다가와 있는지 모른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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