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은의 트렌드터치] 밀당의 고수

2023. 8. 2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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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고객과 기업 사이는 흥미진진한 로맨스다.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수요자에서 소통하며 함께 채워가는 파트너가 된 고객을 위한 CX(Customer Experience, CX)의 출발점은 의외로 연애와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얼 원하는지,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는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를 떠올려보라.

「 기업과 소비자는 연인과 비슷
상대방 마음 읽는 기술 갖춰야
경영이란 결국 ‘타이밍의 예술’
적당한 긴장, 원활한 소통 필수

김지윤 기자

고객을 사랑하는 연인으로 바라볼 때 CX는 생명력을 갖는다. ‘밀당’과 같은 긴장감 넘치는 관계의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밀고 당기기’를 뜻하는 밀당은 통상 연인이 되기 전, 혹은 연인 사이 서로의 관심과 감정을 주고받는 미묘한 텐션 형성의 기술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이 단어가 놀랍게도 고객과 기업(브랜드) 사이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밀당의 예술’을 잘 구사하는 기업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흔들어놓는다.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와의 더 깊은 관계와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 기업과 고객 사이에는 제품과 서비스 그 이상의 ‘관계(engagement)’가 필요해졌다. 마찰과 유연함의 균형을 유지하며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생산적인 밀당은 고객 경험 전략에 주효한 인사이트를 준다.

첫째, 밀당의 고수는 ‘감정 분석의 달인’이다. 상대방의 미소 하나, 목소리 톤 한 마디, 심지어 눈빛 하나로도 감정을 읽고 대응한다. 이 과정에서 상호작용은 더욱 의미 있고 원하는 바에 가까워진다. CX를 잘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고객의 피드백을 분석하고, 현재 감정을 파악하며 문제점을 찾고 최적의 솔루션을 발굴해 제공해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는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밀당의 고수가 되어 고객 경험을 관리하려면 감정의 흔적들을 트래킹하고 분석할 수 있는 DX(Digital Transformation)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로 밀당의 고수는 ‘타이밍의 마스터’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언제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안다.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늦게 행동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에 미묘한 동태와 감정선을 살핀다. 이는 CX에도 해당한다. 제품 출시, 프로모션, 고객 서비스, 선제적 조치, 개인화된 AS 등의 방식과 상관관계를 고려하여 베스트 타이밍을 선택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마침 필요할 때 맞추어 필요한 것을 주는 것, 필요할지 몰랐는데 필요할 것을 미리 챙겨주는 신공은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의 니즈와 피드백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고객이 만족하는 경험을 끊기지 않게 하는 타이밍의 미학이다.

세 번째, 밀당의 고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인’이다. 밀당은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추는 혹은 일부러 맞추지 않는 일종의 테크닉이다. 그야말로 AI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인간만의 촉(觸)이자 인식작용에 따른 고유기술이다. 밀당을 원하는 소비자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재미를 추구한다. 브랜드와의 소통, 새로운 고객 서비스 경험, 소셜 미디어상에서의 티키타카 등이 모두 경험의 일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활용하여 원활하게 소통해야 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채널마다 다루는 감정의 종류가 다르다. 소셜 미디어, 앱, 이메일, 챗봇, 전화 등 다채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실시간으로 고객의 의견을 수렴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요구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진정성 있게 소통해야 한다.

밀당의 미묘함이 빛나는 CX전략은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고객 바라기’로부터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 이는 끊임없는 조율과 조정이 필요하다. 연인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조화롭게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듯 고객 경험 역시 지속적인 개선과 협의를 통해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밀당은 지나치면 독이 된다. 밀당의 본질은 애간장을 태우고 관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얄팍한 계산이 아니라 더 끈끈한 관계로 가기 위한 폭넓은 신뢰를 쌓는 것이다. 고도화된 CX는 사랑의 과정일 수도, 경쟁의 현장일 수도 있다. 뛰어난 CX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고객의 마음을 끌어안는 비밀스러운 무기가 될 수 있다. 건강한 긴장감으로 역동적이면서도 돈독한 고객 관계를 위해 부지런히 밀당하라.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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