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철없는 아내’의 자랑질
지난해 7월 일이다. 중국 SNS에 짧은 글이 하나 올랐다. 내용은 이랬다. “우리 남편 올해 29살이야. 그런데 월급 8만2500위안(약 1500만원) 받아. 우리 집 얼마나 부자인지 알겠지?”
자랑질이었다. 그는 소득증명 원본을 찍어 첨부했다.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그 나이에는 월급 5000위안(약 90만원) 받기도 어려운 게 현실인데, 이게 말이 돼? 도대체 어느 회사, 누구야?” 네티즌들은 소득증명서에 있는 회사 직인을 찾았고, 그의 남편이 투자은행(IB)인 CICC(中金公司) 직원이라는 걸 밝혀냈다.
1995년 설립된 CICC는 ‘중국의 골드만삭스’로 통하는 최고 수준의 IB다. 차이나텔레콤·알리바바 등 굴지의 기업을 중국 국내외 증시에 상장시키기도 했다. 많이 버니 월급도 많다. 지난해 이 회사 직원의 평균 연봉은 약 115만 위안(약 2억원)에 달한다. 남편의 수입은 연봉으로 환산하면 99만 위안으로 회사 평균보다 적었다.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네티즌의 공격에 시장 논리는 금방 허물어졌다. “시진핑(習近平) 정치의 핵심 가치인 공동부유가 왜 금융업계에서는 통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CICC는 남편을 해고해야 했다. 임금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따를 수밖에 없다.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해 말 임금을 20~30% 스스로 깎았다. 그 많던 보너스도 사라지고 있다.
업계는 ‘자랑질’ 사건 이후 사정 당국의 금융 분야 반부패 조사가 부쩍 늘었다고 보지만, 사실은 더 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중국은 지난 3월 국가조직을 개편하면서 당(공산당) 산하에 중앙금융위원회를 신설했다. 행정부(국무원)가 갖고 있던 금융기관(회사) 통합 관리 기능을 당으로 이관했다. 당이 돈 흐름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이다.
당은 근력을 과시한다. 올 상반기에만 고위 금융계 인사 87명이 불려가 부패 관련 조사를 받았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도하고 있다. 핵심 중간 관리급 직원들은 베이징으로 가 1주일 동안 ‘사상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생들은 시진핑 사상을 읽고 감상문을 써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걸리면 옷 벗어야 한다.’ 업계는 잔뜩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국가의 힘은 점점 시장을 압도한다. IT 플랫폼·부동산 분야의 민영기업을 넘어 ‘자본주의 첨병’이라는 투자금융 회사도 그 힘에 빨려간다. ‘철없는 아내’의 자랑질은 그 흐름을 재촉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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