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육사 내 홍범도 흉상 이전…국민은 혼란스럽다

2023. 8. 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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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육군사관학교내 독립유공자 흉상. 정부는 지난 2018년 탄피 300을 녹여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했다. [사진=연합뉴스]


국방부, “홍범도 장군 소련 공산당 활동 전력”


역사적 재평가는 객관적 사실로 공감 얻어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상임위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8년 탄피 300㎏을 녹여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만들어 육사에 설치했다. 그런데 군(軍)의 기원으로 삼았던 이들의 흉상을 이전키로 한 것이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어 생도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장소에 둘 수 없다는 이유다. 국방부는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홍범도 장군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던 1927년 소련 공산당(볼셰비키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동상을 옮기는 이유가 되는 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당시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거나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선택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은 소련 공산당으로부터도 사실상 버림받아 1937년 스탈린의 연해주 조선인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가 1943년 사망할 때까지 극장지기를 했다.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거나 북한 공산주의 건설을 위해 활동한 흔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뚜렷한 기여 없이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와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작곡한 행적으로 기념공원 설립 논란을 빚고 있는 정율성과는 구분된다.

박정희 정부가 1962년 그에게 훈장을 추서하고 정부가 지금까지 대표적인 독립유공자로 그를 꼽는 건 항일 무장투쟁의 공적을 인정해서다. 보훈부가 발행하는 ‘나라사랑 뉴스’도 지난해 8월 1일 6면 기사에서 홍범도 장군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승리의 주역’이라고 평가했다. 국방부가 그의 흉상을 청사 앞에 설치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현재의 시각으로 재단한다면 역사 교과서 전체를 뜯어고쳐야 할 수도 있다. 한국 해군의 주력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함명(艦名)이나 수십 년 된 전사(戰史) 연구 등 군내 흔적도 지워야 하는 문제다.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적행위나 허위 공적을 확인하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의 변경 없이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뒤집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특정 세력의 견해나 시각을 넘어서 국민적 공감이 필요한 일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이념 과잉’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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