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던질 땐, 공이 얼마나 느린지를 본다
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이 ‘느림의 미학’을 실천했다. 최저 시속 104㎞의 느린 커브를 앞세워 시즌 세 번째 승리를 거머쥐었다.
류현진은 27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메이저리그(MLB)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4피안타(2피홈런) 3실점(2자책점)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MLB 평균에도 못 미치는 시속 146㎞였지만, 낙차 큰 커브와 날카로운 체인지업으로 팀의 8-3 승리를 이끌었다. 삼진 5개를 잡는 동안 볼넷은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토론토는 3연패를 끊었고, 류현진은 개인 3연승을 달렸다. 류현진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1.89에서 2.25로 살짝 올랐다.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경기 후 타자를 쥐락펴락하는 류현진의 노련미에 찬사를 보냈다. “류현진은 타자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구속에 끊임없이 변화를 줬다”면서 “그는 기술이 뛰어난 베테랑이다. 강하게 던져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안다”고 극찬했다. 이어 “류현진은 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다. 효율적인 투구를 하고, 제구력이 정말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단 하나의 아쉬움은 6회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와 464일 만의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5회까지 투구 수 60개로 막아내 2~3이닝을 더 던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내야수들의 연속 포구 실책이 문제였다. 6회 무사 1루에서 류현진이 호세 라미레스를 땅볼로 유도했지만, 토론토 3루수 맷 채프먼이 타구를 놓쳐 주자 두 명이 모두 세이프됐다. 다음 타자 곤살레스의 타구도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번엔 유격수 산티아고 에스피날이 공을 잡지 못해 무사 만루 위기를 만들었다. 분위기가 흔들리자 토론토는 결국 투수를 가르시아로 교체했다. 가르시아가 밀어내기 사구로 1점을 허용해 류현진의 비자책 실점이 하나 늘었다. MLB닷컴은 “마지막 인플레이 타구 2개는 아웃이 돼야 했다. 잘 던진 류현진에겐 아쉬운 상황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슈나이더 감독 또한 “무사 1루에서 야수들이 두 번의 병살타성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며 “류현진이 잘 던지던 중이라 교체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호투와 함께 류현진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아리랑 커브’도 또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 시즌 류현진의 커브 평균 구속은 시속 113㎞로 빅리그 최하위권(342위)이다. 최근에는 커브의 구속을 더욱 낮춰 타자들의 헛스윙을 끌어내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클리블랜드전에서 류현진의 커브 평균 시속(109㎞)은 자신의 시즌 평균보다 느렸지만, 클리블랜드 타자들은 연신 헛방망이질을 했다.
4회 마지막 타자 안드레스 히메네스에게 시속 104㎞짜리 초저속 커브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아낸 장면이 압권이었다. MLB 투구 분석 전문가인 롭 프리드먼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이 장면을 올린 뒤 “이 아름다운 시속 104㎞짜리 커브를 보라. 올 시즌 빅리그 선발 투수가 헛스윙을 유도한 공들 중 가장 느리다”며 “일반적으로 투수의 구속을 볼 때는 ‘얼마나 빠른지’ 확인하지만, 류현진이 공을 던질 땐 ‘얼마나 느린지’ 지켜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쏟아지는 찬사와 감탄에 정작 선수 자신은 담담해 했다. 류현진은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이후) 제구력을 빨리 회복한 게 나 스스로는 놀랍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을 되찾았다는 그 자체”라며 “지금 몸 상태가 무척 좋다고 느낀다. 그래서 내가 타자를 잡는 데 필요한 일들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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