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만세' 임오정 감독은 왜 지옥을 꿈꾸는 소녀들에게 주목했을까

전혜진 2023. 8. 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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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단 지옥.
〈지옥만세〉를 연출한 임오정 감독. 재킷과 셔츠는 Münn by Ggumim. 팬츠는 YCH.

Q : 학교폭력에 시달려온 〈지옥만세〉의 나미와 선우는 자살을 시도하려다 가해자 채린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채린은 이들의 등장을 ‘구원’으로 여기며 반긴다. 이들은 기존 매체가 그려온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A : 홀로 영화를 만들며 고군분투한 시간이 길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아웃사이더’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외로움과 우울감이 커서 언젠가 ‘아웃사이더’ 소녀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극중 소녀들은 각자의 슬픔과 고립으로 외롭고 힘들지만, 어른들과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물하고 싶었다. 즉 학교폭력 이야기라기보다 죽을 뻔한 사람들이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Q : 기성세대로서 요즘 청소년의 감정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겠다

A :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 있다. 그들에게서 그때만 지닐 수 있는 생기와 서툰 반항심, 우울감까지 특유의 들쑥날쑥한 감정들을 느꼈다. 심지어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다녔는데, 그때 소녀들에게 혼재된 빛과 그림자를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작품에 녹일 수 있었다.

Q : 영화의 쟁점은 가해자 채린이 사이비 종교 피해자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사이비 종교와 학교폭력 간에 어떤 연결고리를 발견했나

A : 비슷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학교에서는 대학과 성적이라는 확실한 목표치를 만들고, 그 미래를 낙원으로 묘사하며 경쟁구도를 생산한다. 정작 아이들에게는 잘 그려지지도 않는 미래인데 말이다. 사이비 종교도 마찬가지로 현실이 아닌 ‘천국’ 같은 허상의 삶을 제시하고, 그곳에 닿기 위한 경쟁을 부추긴다.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건 기성세대이자 권력자들이다. 채린도 당연히 벌을 받아야 마땅한 가해자지만, 그 가치관을 주입한 건 어른들의 역할이 크다고 봤다.

영화 〈지옥만세〉 스틸 컷. 8월 16일 개봉.

Q : ‘사이키델릭 트위스티드 홀리 어드벤처’라는 수식어가 심상치 않다.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를 ‘하이틴’스럽게 풀어나가는 데 장르적 스타일에서 얻는 힘이 큰 것 같다

A : 이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렸다. 학교폭력과 사이비 종교, 하이틴이 섞인 게 새롭지도 않고 혼란스럽다고(웃음). 하지만 비주류와 아웃사이더가 주인공인 이야기이니 얌전할 필요는 없었다. 어드벤처와 크리틱이 혼재된 장르와 스타일이 형식뿐 아니라 소녀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고 생각했고, 어두워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그 안에 다채로운 빛깔이 공존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피해자로 보이는 인물들도 저마다 다른 색을 지녔다고. 이 이야기가 리얼리티가 아니라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같은 모험담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Q : 〈지옥만세〉를 두고 “많이 다뤄진 소재라 해서 낡은 소재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 있다. 영화적 철학인가

A : 소재가 낡았다는 건 꾸준히 필요한 이야기였다는 뜻이고,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건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를 새롭게 표현하고,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를 녹이는 것이 감독의 역량이다. 사이비 종교나 학교폭력이란 소재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특별하다고 혹은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해 왔기에 아직 이 문제가 남아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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