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프리고진 의문의 추락사…전쟁과 '의문사' 깊은 관계
스탈린 장교 '대숙청'…나치 침공 불러와
흔들리는 푸틴 정권…우크라戰 변수로
지난 6월 자신이 이끄는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이끌고 거병해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던 '푸틴의 요리사',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킨 지 정확히 두 달 만에 전용기 추락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기체결함이 일어나지 않았던 그의 전용기가 갑자기 떨어졌고, 그가 주요 측근들과 함께 사망하면서 '의문사'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데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프리고진의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도 그가 "실수도 했다"고 언급했죠. 이에 따라 프리고진의 의문사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을 것이란 추정들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단순한 기체결함에 의한 항공사고가 아닌, 푸틴 정권에 의해 그가 제거됐을 것이란 음모론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선봉에 서면서 무능한 정부군과 자신의 용병부대를 대비시키고, 정계진출 움직임까지 보였던 프리고진은 이미 오래전부터 푸틴 정권의 제거 대상에 올라 있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1930년대 스탈린 정권이 군부를 대상으로 일으켰던 '대숙청'과 유사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대외전쟁이 장기화하면 독재자들의 권력 누수가 시작되고, 이에 따른 군사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군부 인사들에 대한 숙청을 자행하는 전형적인 정치적 패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다만 이 숙청 작업에서 유능한 장교들까지 휘말릴 경우엔, 전쟁의 참패로 이어지곤 했는데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에도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대외전쟁 도중 발생한 군부 중심 인사들의 의문사에 얽힌 역사 속 이야기들과 함께 프리고진의 죽음이 몰고 올 여파에 대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뉴스(News) : 프리고진, 반란 두 달 만에 사망…푸틴 "실수도 저질러"24일(현지시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사망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1990년대부터 그를 알았다. 그는 유능한 사업가였지만 힘든 운명을 타고났고 실수도 했다"며 "그의 유족에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는데요.
앞서 전날 러시아 재난관리 당국은 프리고진이 전용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고 밝혔죠. 러시아 당국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프리고진의 전용기는 트베리주 쿠젠키노 주변에 추락했으며, 프리고진과 함께 탑승하고 있던 10명의 탑승객은 모두 사망했습니다. 바그너그룹 공동창립자로 프리고진의 최측근 중 한명인 드미트리 우트킨도 프리고진과 함께 사망했다고 러시아 당국은 전했는데요.
특히 8월 23일은 프리고진이 군사 반란을 일으킨 지 딱 2개월이 되는 날이라 더욱 주목받았죠. 프리고진은 지난 6월 23일 바그너그룹 용병부대를 이끌고 군사 반란을 일으켰으며, 모스크바 앞 200km 지점까지 진격했다가 철수했습니다. 이후 푸틴 대통령과 회동을 갖고 바그너그룹의 본거지를 벨라루스로 옮기고 아프리카에서 용병 사업 재기를 발표하면서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용서받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었지만, 속절없이 사망했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고 한번 없던 그의 전용기가 러시아 영공에서 갑자기 30초 만에 추락해 지상에 충돌했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격추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는데요. 바그너그룹 측도 프리고진이 러시아 당국 방공망에 의해 격추됐다고 주장하면서 의구심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서방에서도 프리고진이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러시아 당국에 의해 제거됐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3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며 "러시아에서 푸틴이 배후에 있지 않은 일은 거의 없다"며 프리고진 사망의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서방 정보당국에서는 그가 지난 6월 군사 반란에 실패한 이후부터 그의 암살 가능성이 제기되곤 했는데요.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정적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에 상당수 제거됐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그 역시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암살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또한 그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과 바그너그룹의 전공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러시아 정규군의 무능과 대비시키면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자 러시아 정부 내에서도 그의 움직임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죠.
◆역사(History)1 : 중세 독일 용병대장들의 잇따른 의문사…반역 꿈꾸다 제거전쟁영웅으로 떠오르던 용병대장들이 전쟁 도중 정권에 의해 제거당하는 일은 중세시대에도 종종 발생했는데요. 아무리 충성스러운 측근이라 해도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전쟁영웅으로 떠오른 군부 핵심인가가 자신의 정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알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죠.
15~16세기 유럽에서 활약한 독일의 용병부대,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의 창립자인 게오르그 폰 프룬츠베르크(Georg von Frundsberg) 장군의 죽음도 유럽 역사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는 15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칼 5세의 명령으로 로마 교황청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는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 신자였지만, 자신이 충성을 바치던 황제의 명령에 따라 당시 가톨릭교의 성도인 로마 공격에 나서게 되는데요.
칼 5세는 그의 용병부대에 제대로 된 지원금조차 지급하지 않았고, 다른 귀족들이나 상인들도 가톨릭의 본산지인 로마 교황청 공격에 대한 투자를 꺼렸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영지, 재산은 물론 집에 있던 식기들까지 다 팔아치워서 원정 비용을 댔지만, 로마 진격 도중 자금이 다 떨어지고 말았죠. 분노한 용병들은 그의 통제를 벗어나 로마를 약탈해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고 맙니다. 이 사건은 서양사에서 로마약탈이란 뜻의 '사코 디 로마(Sacco di Roma)'라는 용어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의도치 않은 로마의 파괴로 큰 충격을 받은 프룬츠베르크 장군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하고, 이후 독일로 이송돼 얼마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전해지죠. 합스부르크 가문에 매우 충성스러운 장군이었지만, 속절없이 버림받게 됐습니다.
약 100여년 뒤인 1634년에도 독일의 용병대장이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데요. 그는 17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의 명장으로 알려진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Albrecht von Wallenstein)이란 인물이었습니다. 보헤미아 일대의 소영주였던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용병대장으로 10만명 이상의 대군을 지휘하기도 했지만, 암살되며 생을 마감한 인물인데요.
그는 황제로부터 용병부대를 운용할 지원금을 받는 대신, 점령지에 대한 조세권을 받아 무자비하게 점령지역을 약탈한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그렇게 끌어모은 돈으로 대규모 용병부대를 운용하면서 큰 전공을 세웠고, 보헤미아와 그 일대를 중심으로 계속 자신의 영지를 확대했죠.
그의 최후는 매우 비참했는데요. 그는 점차 황제와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자 아예 반란을 준비했다가 사전에 들키게 되면서 오히려 황제의 역습을 받게 됩니다. 황제에게 매수된 휘하 용병들이 역으로 반란을 일으켜 결국 침상에서 부하의 창에 맞아 숨졌죠.
◆역사(History)2 : 군대 간부 75% 죽인 스탈린…나치 독일 침공 불러와2차 세계대전 직전의 러시아에서는 당시 소련의 집권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이 장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숙청에 나서면서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나치 독일과의 초반 전쟁에서 소련군이 참패한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요.
스탈린은 1937년~1938년 사이에 대숙청을 벌였는데 당시 150만명 이상이 체포되고 70만명 이상이 처형됐다고 합니다. 그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두 숙청하고 강력한 독재정권을 구축하기 위해 벌인 정치적인 작업이었죠. 그는 비밀경찰 4만여명을 동원해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인물들을 사정없이 제거해나가기 시작하는데요.
이 숙청 대상에는 당시 군부 주요 인사들이 많이 포함돼있었다고 합니다. 전체 소련 군부 장교 중 75%가 넘는 1000명 이상의 장교가 처형됐다고 하죠. 알 수 없는 이유로 처형되는 사람들도 많았고, 의문의 죽임을 당한 장교들도 셀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각 전선의 지휘관을 모두 잃은 소련군은 대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 와중에 1941년, 나치 독일이 기존 소련과 체결했던 불가침조약을 깨트리고 동부전선 전체에 걸쳐 침공해오자 소련군은 정말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결국 소련은 성인 남성 2000만명 이상의 인구가 희생된 끝에 가까스로 나치 독일의 침공을 이겨내고 전승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지만, 이때 발생한 극심한 인구 감소와 성비 붕괴는 아직도 러시아 사회와 인구 성장이 정체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시사점(Implication) : 정정 불안 심해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전 변수 될까이번에 발생한 프리고진의 급작스러운 의문사가 앞으로 어떤 여파로 번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당장은 구심점을 잃은 바그너그룹이 해산되거나 혹은 푸틴 대통령의 직접 지휘체계로 바뀌면서 전투 동력을 크게 상실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프리고진의 반란을 전후로 반푸틴 세력에 대한 색출이 심화하고, 일부 장성들이 지휘권을 잃거나 체포되면서 공포 분위기가 심화하고 있죠. 이것이 러시아군의 사기를 크게 꺾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당장 내년 대선을 앞둔 푸틴 대통령은 정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반대 세력 숙청을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크라이나가 이러한 러시아의 정정 불안을 타고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 러시아에 또 어떠한 정치적 혼란 상황이 발생할지 모를 상황인 만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의 불안감도 한동안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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